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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벚꽃의 계절 2019-2

어제 벚꽃을 보러 다녀온 이야기다. 평일에 버스를 타고 가거나 전철역에서 걸어가는 곳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꽃구경을 하는 사람이 적었다. 눈 앞에 나이 드신 노인들이 무리 져서 천천히 걷는데 옆에 돌보는 사람이 있어서 봤더니 요양원에서 꽃구경을 나왔나 싶었다. 그래도 열 명이 안된다. 할머니가 옷을 차려입고 꽃구경을 나온 것 같은데 바로 뒤에서 자동차가 스치듯 지나간다. 옆에서 황급히 할머니에게 차가 지나간다고 했지만 할머니 동작이 느리다. 그래서 팔을 잡아당겼다. 나중에 버스 정류장에서 말을 걸었더니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면서 연신 미안하다고 한다. 나는 할머니가 단장을 하고 꽃구경을 나온 모습이 보기가 좋아서 인사를 했는데 할머니는 미안하다고 해서 인사를 한 내가 미안해지고 말았다. 

 

요즘 동경에서 보면 사람들이 괜히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 있다. 예를 들어 아기를 데리고 전철을 타는 여성에게 매서운 눈초리와 너무 친근감 넘치는 사람들이 동시에 있다. 자신이 낳은 아이니까, 아이에 대해서 완전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아이가 전철에서 떠들거나, 유모차를 끌거나 아이를 데리고 타는 것에 대해서도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아침에 러시아워에 유모차를 끌고 전철을 탔다면 주위 사람에게 민폐인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붐비는 시간대에 유모차를 끌고 전철을 타는 일 자체가 거의 없을 것이다. 전철에서 어쩌다가 아기가 울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것이 엄마 탓은 아니다. 그래도 엄마라서 괜히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아기 엄마라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에게 '혐오'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기 엄마는 아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죄인처럼 행동하게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의 '저출산'문제를 더욱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에 사회가 일조하고 있다. 아기를 데린 엄마에게 배려는 못할 망정, 죄인 취급을 하다니 인간이길 포기한 것 같아 믿을 수가 없지만 사실이다. 터무니없는 이유로 약자를 향한 '혐오'가 활개를 친다. 그래서 약자는 먼저 방어선을 친다.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미안하다면서...... 나이를 먹은 것이 죄가 아니다. 사회가 나이를 먹은 사람들에게 죄책감이 들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미안해 하지는 않는다. 할아버지들은 당당하고 떳떳한데 왜 할머니들은 미안해해야 하나? '혐오'가 약자를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아기 엄마나 할머니도 '여성'이라서, 상대적으로 약해서다. '여성'이라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닐 텐데, 마치 '죄'인 것 같다. 

 

일본에서 벚꽃구경은 추운 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는 축제다. 이 계절이 되면 사람들 인사가 벚꽃이 언제 필 것 같다거나,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기예보에서 '장마전선'이 아닌, 벚꽃의 '개화'예보가 전해지는 '벚꽃 전선' 소식을 기다린다. 일본이 아무리 우울해도 계절은 변하고 벚꽃은 필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듯 추운 겨울의 '우울'을 훌훌 털어 버리고 벚꽃처럼 와르르 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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