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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노인이 잠식한 일본

오늘 동경은 오전에는 잔뜩 흐리고 바람도 세게 불었다. 점심에는 햇볕이 나다가 저녁에는 다시 찬바람이 부는 날씨다. 시모키타자와에서 약속이 있어서 그전에 고마바 집에 들러서 선물을 놓고 오려고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갔다. 고마바 집에 들러서 우편함에 미얀마에서 산 커피와 과자를 놓고 나왔다. 가까운 빵집, 빵이 맛있기는 한데 좀 비싸다. 빵집에서 가장 저렴한 포카차를 하나 샀다. 유학생 회관 앞에 있는 선로를 건너면 고마바 공원이다. 공원 입구에 벚꽃이 피어 있었다. 아직은 여기도 이른 감이 있고 벚꽃이 많지 않다. 시모키타자와까지 걸어가는데 시간이 넉넉히 남아서 공원을 가로질러 가기로 했다. 날씨가 춥고 빗방울도 살짝 비치는 가운데 꽃구경을 하는 사람이 조금 있었다. 공원 한가운데 벚꽃나무 아래서 사람이 많이 모여서 꽃구경,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니까, 외국인이 많이 보였다. 유학생들인가?

 

포카차를 먹으면서 시모키타자와를 향해 걸었다. 가끔 걸었던 길이라, 대충 감각으로 길을 안다. 작고 큰 변화를 볼 수가 있었다. 새로운 건물을 지은 곳도 있고, 주차장을 했던 곳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가는 길은 마찬가지였다. 가장 큰 변화는 동네 분위기였다. 예전부터 한적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한적함을 넘어섰다. 분명히 부자동네에 좋은 집과 건물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녹슬어 가는 느낌이었다. 선로변에 유채꽃도 피어서 예쁜데도 그렇다. 

 

고마바에는 동경대학 캠퍼스가 있고 공원 옆에 국제고등학교가 있고 시모키타자와로 가는 길에 초등학교도 있다. 고마바에서 두 정거장 가면 시부야로 사람들이 와글와글, 특히 봄철 대학 입학 시즌을 전후로 피크가 된다. 그 시기에는 시부야를 피해서 다녀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시모키타자와도 젊은이에게 인기가 있어 젊은이들로 붐비는 거리로 유명한 곳으로 평일에도 학생들이 많이 다닌다. 지금 일본에서 가장 귀중하다고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의 에너지가 충만한 구역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기가 아주 부족했다. 나이를 너무 많이 먹은 느낌이 이기고 만다. 아이고, 세상에 여기까지 이렇다니.

 

나는 오랜만에 그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감정이 당황스러웠다. 일본이 고령화라고 하지만, 여기서 그런 느낌을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고령화라는 것은 노인들이 많이 보이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는 걸 느꼈다. 심각하구나. 하지만, 어쩌랴, 일본 스스로가 선택한 길인 것을 어쩔 수가 없다. 일본에서 동경, 동경에서도 중심, 그것도 주변에 젊은이가 모이는 부자동네에서 이런 쉰 느낌이라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일본에서 이런 곳에서 까지 고령화를 느낀다면, 일본은 노인들에게 정치적으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완전히 잠식당하고 말았다는 걸 의미한다. 여기에서 나이를 먹은 사람, 노인들이 잘못한 것은 없다. 고령화는 노인들 탓이 아니다. 단지, 나이 먹은 사람들 숫자가 너무 많고 구체적인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영향력이 크다는 것뿐이다. 국가가 노인에게 잠식당하고 말았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초고령화' 국가 일본, 동경의 현주소다. 꽃구경을 가도 노인밖에 없다. 어쩌다 가끔 젊은 사람이 보이면 이상할 정도다. 평일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주변에서 낮에 보이는 사람은 주로 노인이다. 

 

나는 외국을 자주 다니며 사회를 관찰하는 사람이다. 선진국, 중국의 경우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선진국은 '고령화'가 당연한 추세다. 하지만, 선진국에 가서 거리에서 일본처럼 노인들을 많이 보는 경우는 없다. 외국에 갔다가 동경에 돌아오면 거리에 점점 노인이 많아지는 걸 느끼다가 이제는 거리에 노인이 태반이 되고 말았다. 개강을 하고 학교에 가면 젊은 대학생들과 동료들을 보면 이런 느낌을 잊겠지만, 해마다 새삼스럽게 길거리에 노인이 많다는 걸 느낀다. 사람들이 나이를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고령화가 아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을 절실히 느낀다. 고령화가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태만이 문제라고 본다. 

 

시모키타자와에 가서 지인과 만나 둘이서 빈테지 숍에 가서 내가 옷을 좀 사고 지인은 가방을 두 개 샀다. 오늘은 오랜만에 시내에서 입을 만한 옷이 있어서 쇼핑을 좀 많이 했다. 입기만 하면 본전을 뽑을 것이다. 가끔 이럴 때도 있어야지. 

 

사진은 고마바 공원 벚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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