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12 옛 친구
어제 동경 날씨는 아주 추웠다.
아침에 집을 나갈 때는 몰랐는데 밖에 나서고 보니 가랑비도 오고 추웠다. 평소에는 따뜻한 스카프를 하고 나가는데 어제는 별로 따뜻하지 않은 진달래색 큰 실크 스카프였다. 그 스카프를 펼쳐서 우산 대용으로 쓰고 학교에 갔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는 대학원생과 같이 전차에 타서 말을 하다 보니 12월 중순 날씨란다. 교실은 조금 전까지 냉방이였는데, 어제는 난방이 들어있었다. 근래는 사계절이 아니라 이계절로 축소 경향이다.
수요일에 출신대학에 강의를 갔다.
점심을 먹고 교내서점에서 잡지를 뒤적거리다가 도서관에 가는 중에 아는 직원을 만났다. 옛날 유학생이 왔었는데 내 근황을 물었다고 연락처를 알려줄 테니까 연락을 해보라는 것이다. 나도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어 메일을 했다.
오랫만입니다.
대학에 갔더니 아무개 씨가 연락처를 주시더라고요.
반갑네요.
어떻게 지내세요?
다음날 답장이 왔다. 답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너무도 변함이 없어서다.
오랫만입니다.
메일을 보고
눈물이 났습니다.
반갑군요.
저는 지금 무슨 대학에서 일합니다.
옛날 제 결혼상대 사진을 보인 적이 있었죠.
1991년 그녀와 선을 보고 결혼했습니다.
지금은 큰딸이 대학 2년, 둘째 딸이 중학 2년, 장남이 내년 4월 초등학교에 들어갑니다.
꼭 답신을 주시고,
자세한 연락처를 알려주세요.
이 친구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유학생으로 내가 학부 학생일 때 대학원생으로 박사논문을 쓰고 있었다. 그 친구 지도교수가 내 지도교수와도 가까운 사이며 내 지도교수 연구를 참고로 하던 사람이다. 그러나 특별히 가깝거나 친근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는 가까운 친구가 별로 없었나 보다. 가끔 전화로 통화하는 나를 아주 가깝고 친한 친구로 여긴 것 같다. 90년대까지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 친구는 논문과 씨름을 하다가 인간과 대화를 하고 싶을 때 가끔 전화를 해왔다. 나는 걸려오는 전화를 반갑게 받고 하는 말을 들어줬다. 이 정도는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번은 라마단이 끝났다고 캔터키 후라이드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해서 사다 준 적이 있다. 그 정도뿐이었다.
박사논문을 마치고 내가 있어서 박사논문을 쓸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정말로 오해다.
그 친구에게 당황한 일이 있었다. 전화통화를 하던 중 어쩌다가 돈이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나 보다. 그 친구가 자기 저금통장을 내게 가져다가 쓰라고 했다. 그는 국비유학생이었다. 자기가 모은 돈을 전부, 일본에 있는 전재산, 100만 엔이 넘는 큰 돈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고 당황했다. 물론 돈을 빌릴 일도 없었다.
남에게 저금통장 보이는 거 아냐,
돈 꿔달라면 어쩌려고.
그 게 참 오래도록 인상적이었다. 영혼이 순수한 사람이었다.
박사논문을 마치고 자기가 결혼할지도 모른다면서 선 볼 상대 사진을 봐달라고 사진을 보여줬다. 나에게 어떠냐고 묻는 것이었다. 아주 예쁘고 똑똑하게 보이는 사람이었다.
괜찮은 것 같은데,,,
그래, 네가 괜찮다면, 괜찮겠다.
그러더니 학위를 받고 ILO에 취직했다. 나는 대학원에 가고, 그는 결혼을 했다. 결혼 후에도 한 번쯤 통화를 했다. 부인과도 말을 했다. 부인이 웃으면서 자기 남편이 나를 좋아했었단다.
그래요, 저는 몰랐어요. 그리고 둘이서 깔깔대고 웃었다.
통화한 인상도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었다. 행복한 것 같았고, 그 후는 연락이 없었다.
그 게 전부였다. 어쩌면 나는 그에게 특별한 친구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몰랐지만 말이다.
내가 있어서 자신이 박사논문을 쓸 수 있었다는 오해를 한 걸 보면, 그의 기억에는 아직도 내가 특별한 친구인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연락이 되어 반가운 눈물이 나올 정도로 반가웠다. 20년이나 지났는데, 그의 영혼은 아직도 순수한 가 보다.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