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22 대설경보
오늘 동경은 아침에는 흐렸다가 가랑비가 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눈이 조금씩 내리더니 점점 눈이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시작은 미미했으나, 대단한 눈으로 발전했다. 오늘은 동경에 4년 만에 '대설경보'가 내린 날이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봤더니 최고기온이 3도에 최저기온이 1도라서 추운 날이다 싶었다. 최저기온으로 보면 이번 겨울 가장 추운 날이다. 창밖을 봤더니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다닌다.
오늘은 월요일로 도서관에 가는 날이다. 도서관에 가는 길에 농가 마당에도 들러서 야채를 볼 생각이다. 요즘 마트에 가도 신선한 야채도 없거니와 시원찮은 것들이 비싸다. 도서관에서 돌아올 때는 무인 판매하는 곳에도 갈 예정이다. 다음은 마트에 가서 식량을 보충할 생각이다. 날씨가 추워서 도서관에 가는 걸 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늘까지 반납할 책이 두 권있다. 요새 종강 시즌이라, 기분이 싱숭생숭해서 우울하다. 일본 사회 분위기도 조용히 '혐한'의 회오리바람이 다시 불고 있어서 더욱더 음침하다. 동경에서 드물게 눈이 오는 날 상쾌하게 산책을 해야지. 일기예보를 보고 '대설경보'라고 해도 현실감이 없었다. 어느 정도가 '경보'가 되는 거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챙겨서 나간 것이다.
요즘 정신이 좀 나갔다. 지난 수요일에 비가 와서 분명히 우산을 들고나갔는데 정작 큰비가 오는 오후가 돼서 우산을 찾았지만 아침에 가방에 넣은 우산이 없었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그냥 비를 맞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 일이 있어서 오늘은 준비를 했다. 옷을 껴입고 살짝 제정신이 아니었을 때, 싸다고 산 눈이 올 때 신는 신발이 있다. 동경에 살면서 언제 눈이 온다고 이런 신발을 샀는지? 정말로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웠다. 처음 본 신발이 싸서 산 것이다. 눈이 올 때를 대비해서 산 것이 아니라, 따뜻할 것 같아 산 것이다.
오늘은 드디어 그 신발을 신을 때가 온 것이다. 신발을 신고 가다가 좀 커서 끈을 동여맸다. 집에서 나갈 때는 우산을 쓰고 눈이 약간 온 정도였다. 주위에는 걷는 사람도 다니는 차도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도서관에 도착했더니 아는 직원이 인사를 한다. 이렇게 궂은 날씨에 왔냐는 것이다. 오늘 반납할 책이 있어서 왔다고 했다. 도서관에 새로 온 책 중에 읽을 만한 책이 그다지 없었다. 가져간 책에서 메모할 것을 메모하고 책을 읽다가 창밖을 보니 눈이 펑펑 와서 하얗다. 오늘 눈이 많이 와서 5교시 수업을 휴강한다고 전철 운행이 중단되거나, 연착이 되니 일찍 집에 가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내가 누군가? 같은 도서관에 다니면서 놀기를 30년 이상이나 한 사람이다. 사노라니 별별 날씨가 다 있었다. 태풍이 몰아치는 빗속을 가방에만 비닐을 감고 나는 그냥 비를 맞으며 걸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집에 빨리 가라는 안내를 들은 적은 별로 없다. 학교에 남아 있으면 안 된다고, 남아 있을 수가 없으니까 일찍 집에 가라고 한다. 나도 일찌감치 도서관을 나설 예정이었다. 신발은 도서관에 오는 길에 성능을 확인했다. 나는 눈길을 걸을 일이 적어서 미끄러질까 봐 눈길을 걷는 것이 두렵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이상한 곳에 힘을 줘서 미끄러지지 않아도 아주 피곤해진다. 이 신발은 전혀 미끄러지지 않았다. 눈보다 얼음 위를 걸을 때가 더 안정감이 있었다. 눈길을 안심해서 걸어도 되는 신발이다.
도서관을 나왔더니 눈이 많이 쌓여서 발이 푹푹 들어간다. 항상 걷는 나무가 많은 곳은 길이 분간이 안될 정도로 눈이 쌓였다. 20센티 이상 쌓였다. 눈이 내려앉은 나무가 예쁘다. 눈발이 내렸지만 사진을 찍으면서 걸었다. 무인판매에 가서 봤더니 배추가 있어서 샀다. 잔돈이 모자라서 60엔을 외상 한다고 메모를 남기고 가방에 넣었다. 다음에 마트로 향하려다 생각하니 오늘 눈이 이렇게 쌓였는데 안 가도 될 것 같았다. 가다가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가 다시 마트로 향했다. 오늘 같이 눈이 많이 오는 날에 '작은 모험'을 할 일이 내 인생에 언제 다시 생길지 모르는 일이다. 오늘은 성능이 좋은 신발도 신었겠다, 달리는 것이다.
마트에 갔더니 정말로 평소에 비해 손님이 적었다. 두 세명 밖에 없다. 이런 날씨에는 집에 가만히 들어앉아서 지내는 것이 상책이다. 동경은 눈이 잘 오지 않아서 눈에 약하다. 생선이나, 육류도 일찌감치 가격이 내려간다. 내가 사는 과일이나, 육류는 가격이 내려갈 대상이 아닌 모양이다. 과일을 많이 사고 식초와 달걀 등을 사서 가방에 넣었다. 짊어지고 손에도 들었다. 다른 손에는 우산을 들었다. 정말로 눈이 많이 오긴 왔다.
눈이 오면 겨울의 살풍경한 모습이 감춰진다. 평소에 볼 수 없는 나뭇가지의 자태가 드러난다. 나뭇가지에 눈이 내려서 꽃이 핀 것처럼 예뻐진다. 집 주변은 완전 '겨울나라'가 되었다. 눈이 많이 와서 가로등도 일찌감치 켜졌다. 눈이 온 풍경과 어우러져 특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집에 와서 '대설경보'를 확인했더니, '주의보' 보다 위로 '중대한 재해가 일어날지도 몰라서 위험하니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경보'였다. 동경도 산 쪽에는 20에서 40센티 눈이 쌓인다고 한다. 3교시로 수업을 끝낸 대학도 있었다. 동경은 대설로 인해 하늘과 땅에서 교통이 마비되어 있다.
나는 '대설경보'가 내린 와중에 '위험한' 것도 모르고 눈 오는 날 신는 신발을 신고 좋다고 발발거리며 쏘다닌 것이다. 우울함을 떨쳐내기 위해 '작은 모험'을 한 것이 작은 것이 아니었다. '대설경보'가 내린 날 주위 풍경이 예뻤다. 덕분에 기분전환이 되었다. 신발이 중요하다, '작은 모험'에도 장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