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25 봄비 오는 날
오늘 동경 날씨는 아침에 안개가 자욱하더니, 가랑비가 되었다.
아침을 먹고 났더니, 비가 그쳤다. 점심을 일찌감치 해 먹고 책과 자료를 챙겨서 학교도서관을 향했다. 요새 집에서 먹는 점심은 고구마와 당근, 부록콜리, 연근 등을 삶아서 먹는 거다. 필드웍을 나가서 비축한 뱃살과 하루빨리 이별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산책을 해서 소화활동이 왕성하게 돕는다. 산책을 하고 자면 우선 부기가 빠져서 좋다. 어젯밤에도 벚꽃이 많이 피어 있는 강가를 따라서 걷고 왔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뱃살이 싹 빠졌다. 비록 하루도 안가지만,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라 좋다.
학교에 갔더니, 오늘이 졸업식날이라, 캠퍼스가 난리가 났다. 졸업식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느라, 여기저기에 기모노를 입을 여학생들이 있고 남학생들도 정장을 입고 있다. 계단을 올라가려는 데, 한국말이 들려온다. 내가 뒤돌아보며, 한국 유학생이냐고 물어봤다. 올해 대학에 들어오는 신입생이란다. 어디에 사느냐고, 내가 가까운데 산다며 연락처를 알려줬다. 그리고 내가 안 쓰는 그릇과 냄비 등이 있다고, 커텐도 있는 데, 혹시 필요하면 주겠다. 어제 왔다면 이불이 있냐고, 당장 잠을 잘 수 있겠냐고 했더니, 한국에서 이불을 가져왔단다. 옆에 있었던 사람이 언니라고 엄마도 같이 와서 입학식까지 있을 거란다. 커텐도 한국에서 가져왔는 데, 너무 크다고 작은 게 있으면 달라고 한다. 여기는 창문 규격이 있어서 규격 사이즈라고, 어쨌든 한번 집에 와서 보고 필요한 걸 가져가라고 했다. 갖고 있는 지도에 집을 표시해 줬다. 나에게는 까마득한 후배라서 반가웠다. 어디까지나 일방적인 관심이지만.
날씨가 비도 오고 추워져서, 정말로 괜찮겠냐고, 지금 있는 데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설비는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집에 남는 방도 있고, 매트레스 이불 등 여분이 있어서 우리 집에 와서 지내도 된다고 걱정을 했다. 상대방이 당황할까 봐, 내가 이상한 사람은 아니에요.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거든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하는 사람이라, 이러는 거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가끔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도 받거든요. 완전, 영락없이,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좀 더 했다가는 유괴범이나, 간첩을 포섭하는 사람이 될 거다.
외국인등록증을 만들러 간다기에 길을 알려주고 헤어졌다. 가까운 데서 쇼핑 할 곳을 알려주고, 쇼핑하는 요령도 알려줬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만 사고, 다른 것들은 나중에 천천히 사, 마트에도 요일에 따라 싸지는 게 있으니까. 그리고 도서관에서 여성학 교재를 확인해서 정하고, 필요한 책을 좀 찾아서 읽다 보니 금방 오후 6시가 되었다. 책을 읽다 보면 시간이 후다닥 지나간다. 밖이 어두컴컴해서 나와보니 비가 온다. 우산을 안가지고 가서 점퍼 후드를 뒤집어쓰고, 책은 타올로 감아서 젖지 않게 싸맸다.
아까 그 아이네는 비가 오고 추워졌는 데, 정말 괜찮을까, 갑자기 신경이 쓰이고 걱정이 된다. 일본이 기온은 그다지 낮지 않아도 난방이 부실해서 의외로 춥다. 나름대로 추위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냥 둬야지, 여기서 좀 더 걱정했다가는 오지랖이 지나쳐서 스토커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언니랑 엄마가 같이 왔다는 데, 내일은 벚꽃이 예쁘게 피어있는 벚꽃길로 산책을 안내해 줄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정말로 스토커가 될 것 같다. 내가 위험하다.
저녁은 아까 학교도서관에 갈 때 산, 싱싱한 시금치 한 단을 데쳤다. 싱싱한 당근도 하나 데쳤다. 거기에 잔멸치를 넣고 식초를 살짝 쳐서 산뜻하게 먹었다. 웬지 단것이 당겨서 흑설탕과자도 좀 먹었다. 커피도 한잔 마셨다. 오늘은 추우니까, 일찌감치 목욕을 하고 침대 속에서 책을 읽어야지…
오늘도 동백꽃이다. 같은 나무에 흰색과 빨간색 꽃이 핀다. 적당히 예쁘게 색이 혼합된 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