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14 오랜만에 긴자
어제와 오늘 동경 날씨는 맑고 상쾌한 바람이 분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에 걸맞은 날씨이다. 기온은 낮아도 참 좋은 날씨였다. 어제는 어머니날이라, 와타나베 엄마를 만나기로 했다. 마침, 엄마 친구가 긴자 야마하 홀에서 콘서트 하는 날이라, 나도 정말로 오랜만에 긴자에 갔다.
긴자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어머니날에 날씨가 좋아서 사람이 많을 줄 알았다. 사람도 관광객이 많고 일본 사람들은 그다지 없다. 한산한 느낌이다. 아무리 명품 가게가 줄지어 있고 쇼윈도에서 명품들이 빛나도 사람들이 없으면, 이상하다. 사실, 어제 쇼윈도 안에 물건들이 빛나는 것과 사람들 분위기 갭이 상당해서 당황했다. 길거리도 차가 못다니는 보행자 천국을 만들어 놨지만, 봄빛이 찬란한 대낮인데도 겨울 석양에 해가 넘어가는 것처럼 을씨년스러웠다. 아마도 이 게 지금 현재 동경 분위기인 것이다. 사람들 옷차림도 많이 초라해졌다. 그래도 ‘긴자’인데, 사람들은 긴자에 나올 때 특별히 챙겨 입는다.
나도 긴자로 콘서트에 가는 거라, 보통 때 노동하러 갈 때 입는 옷을 입으면 좀 초라하게 보일 것 같아서 신경을 썼다. 엄마 체면도 있고, 엄마 친구들이 봐도 걱정을 할까 봐… 엄마 친구들도 나이를 먹어서 눈이 잘 안 보여서 나를 '예쁘다'라고 보는데…
엄마 친구는 마림바(목금)라는 악기를 연주하고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일본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사사를 받는 도제 형식으로 키워진다. 엄마 친구도 작곡, 연주 등 어릴 때부터 유명한 선생님께 사사를 받아서 구니다치 음악대학을 나왔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분야에서 연주활동을 하면서 제자를 키운다.
그 전에는 제자들을 데리고 외국으로 연주여행을 했었다. 이럴 때는 악기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어제 회장에서 엄마에게 악기는 어떻게 하는 거야? 작은 이삿짐센터에서 날라다 주는 게 있단다. 어제 콘서트는 엄마 친구와 그 제자들이 발표회를 하는 것이다. 이런 게 어제로 19번째라고 한다. 20번까지는 할 예정이다. 그 외로, 프로가 된 제자들과 같이 하는 콘서트도 매해 두 번 정도는 한다. 나는 발표회 밖에 간 적이 없다.
어제 무대를 봤더니, 엄마 친구 손자가 무대에 섰다. 엄마 친구랑 얼굴과 체격이 닮았다. 마림바를 연주하고, 나중에 피아노를 쳤다. 초등학교 3학년인데 벌써 산토리 홀에서 연주를 했단다. 그 아이는 5살 때부터 음악수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제는 자신의 스승인 젊고 유망한 피아니스트와 같이 무대에 섰다. 엄마 친구는 손자가 자신이 하는 음악을 해서 행복해한다고 했다.
마지막 부분에 엄마 친구가 연주를 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왔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평소 때 얼굴과 전혀 다르다. 그리고 조명으로 70세가 넘은 얼굴도 나이가 안 보인다. 나는 그 게 재미있어서, 옆에 앉은 엄마에게 “마마가 다른 사람 같아”, “그럼, 예술 간데” 당연한 듯이 엄마가 대답한다. 평소에는 방글방글 웃기만 하는 전혀 ‘주부’ 같지 않은 세상모르는 부잣님 마나님 같은 엄마 친구였다 오래 해왔는 데도 긴장감이 역력하다. 연주할 때도 평소와 전혀 다른 얼굴이다. 그러면서,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음악가로서 활동을 하는 데 중점을 둬서 생활을 해왔단다.
엄마는 음으로 양으로 친구의 음악가 활동을 도왔다. 어제도 엄마가 재즈를 배우러 다니는 교실에서 만나는 분들이 많이 와주셨다. 엄마가 한 분, 한 분께 조그만 과자를 드리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내가 엄마 대신 과자를 가지고 가서 인사를 한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엄마 친구는 엄마가 여기까지 관객 동원을 위해서 신경을 쓰는지 모를 거다. 그래도 야마하 홀이 80% 정도 채워진, 성황리에 끝났다. 연주시간이 세 시간 반으로 좀 길어서 도중에 돌아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옆에 앉았던 엄마 친구도 어머니날이라, 아들네 가족이 저녁을 먹으러 온다면서 돌아갔다.
나랑 엄마도 간단하게 식사를 하려고 보니까, 아는 데는 만석이라 못 들어가고, 백화점 식당가에 가서 ‘모단야키’라는 걸 먹었다. 나는 백화점 식당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엄마가 재미있어하니까, 같이 먹었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지만, 별로 맛이 없었다.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엄마가 정말로 그 걸 먹고 싶었는지, 아니면 가격이 저렴한 걸로 골랐는지 아리송하다. 나는 이 엄마랑 25년 가깝게 사귀어도 사실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
둘이 식사를 마치고 아버지가 야구 보러 갔다 와서 기다린다고 서둘러서 시부야에 와서, 아버지에게 드릴 사시미를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여기 엄마와 아버지는 사이가 좋다. 어제 나는 그 얘기를 하면서, “엄마, 내 동창을 봐도 사이좋은 부부가 거의 없어, 이혼은 안 해도 아주 슬프게 사는 커플이 대부분이야, 엄마랑 아빠는 굉장히 행운인 거야”. “그 시대는 여자가 일을 할 수도 없고, 주부가 돼야 했잖아,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지”. “ 내 동창들을 보면, 일을 하고 안 하고 가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엄마는 결혼하기 전에 정치가였던 친정아버지 비서를 했었다. 아버지와는 선을 보고 결혼한 거다. 엄마는 일을 했어도 참 잘했을 것 같다.
오랜만에 밖에서 본 엄마가 예전 같지 않았다.
전날 미장원에 가서 고데를 하고 왔는데도…
엄마가, 나도,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