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05 플라멩코 가수
오늘 동경은 맑고 바람이 부는 날씨였다. 기온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젯밤에 꺾어온 자스민 꽃 향기가 난다. 오늘은 한시에 아줌마가 놀러 오기로 해서 그전에 대충 일을 마쳐야 한다. 아침부터 유리창을 깨끗이 닦고, 베란다도 씻어내고 집청소를 해서 걸레질을 꼼꼼히 했다. 좁은 집이라도 구석구석을 청소하다 보면, 꽤 시간이 걸린다. 아줌마가 오기 직전까지 땀을 흘리면 청소를 하고 손빨래를 해서 널었다. 이맘 때면, 겨울옷을 집어넣고 여름옷을 꺼낸다. 집도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꾸는 데, 기온이 낮아서 못했다. 유리창을 깨끗하게 닦으니 창밖이 아주 클리어비전으로 보인다. 역시 유리창 청소를 하길 잘했다.
어제도 오전에 다시 벼룩시장에 가서 옷을 좀 건졌다. 벼룩시장 가격 치고는 좀 비쌌지만, 괜찮은 옷이라, 그냥 샀다. 그리고 편할 것 같은 여름 샌들도 하나 샀다. 작년에도 같은 옷을 내놨던 할머니를 만나서 수다를 떨었다. 그 할머니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옷을 싸게 해 줬다. 멋쟁이 할머니로 자기가 입던 옷을 가지고 나오셨다. 돈을 쓰다 보니 다 써서 시내에 갈 교통비밖에 안 남았다. 낮에 집에 돌아와서 세탁기를 돌렸다. 그리고 벼룩시장에서 사 온 옷을 손빨래해서 널었다.
오후 늦게, 고마바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서울에서 사 온 영양제와 김, 화장품들을 가지고 갔다. 엄마에게는 좀 비싼 손수건을 사서 갔다. 벚꽃이 필 때 꽃놀이를 하는 데, 아버지가 몸이 편찮아서 캔슬을 했다. 엄마도 다리가, 무릎이 아프다고 한다. 연휴라고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손자는 축구시합 때문에 시즈오카에 원정을 갔단다. 떠드는 아이가 없이 어른들만 모였으니 좀 심심하다.
저녁을 먹고나서 아버지와 일본과 한국 문제에 관해 토론이 한바탕 있었다. 나와 아버지가 말을 시작하니 다른 가족들이 자리를 뜬다. 나도 아버지 말을 조금 듣고서는 부엌으로 나갔다. 아버지가 모처럼 일장 연설을 하는 데, 나까지 나가면 서운 할 거라, 그냥 들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다운이 된 다음은 장소를 바꿔서 엄마와 나, 그 집 딸이 앉아서 엄마와 아빠의 노후, 상속에 관한 말을 했다. 엄마가 무릎이 아파서 마음이 약해졌나 보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가 싫다고 자기는 노인홈에 들어간다고 했다. 노인홈을 알아보니 엄마가 생각하던 곳이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계획을 바꿔야 하는 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정말로 엄마가 무릎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 있다. 한국에서는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을 많이 한다고 안심을 시켜도 수술을 하기가 싫은 거다. 돌아오는 길에 집에 많이 피어 있던 자스민 꽃을 좀 꺾어왔다. 그 집 딸과 내가 밤 11시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을 탔다. 메다이마에에서 우리 집으로 오는 급행전철을 갈아탄다.
전철을 타니 휴일 늦은 시간이라, 전철 분위기가 좀 다르다. 눈 앞에 몸집이 있는 외국인 남자가 셔츠를 가슴에 난 털이 보일 정도로 풀어헤치고 서있다. 캔맥주와 술안주인 땅콩을 한 손에, 다른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보고 있다. 휴대폰에 정신이 팔려서 자기가 내릴 역에 못 내렸다. 갑자기 그 걸 알고는 당황한다. 다음 역까지는 10분 걸린다. 눈 앞에 있는 나에게 묻는다. 메다이마에를 지났냐고, 지났다고. 다음 역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10분이 걸린다. 거기서 내려서 갈아타고 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아직 전철이 있다고 안심시켰다. 나는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 수다를 떨 때 매실주에 담겨 있었던 매실을 몇 개 먹었다. 그 걸로 살짝 취한 상태였다. 그러더니, 앞에 있던 외국인이 갑자기 나에게 사무라이 같은 사람이라고, 아주 강한 사람이란다. 내가 한국 사람인 줄도 모르고, 일본에서는 사무라이 같다는 게 칭찬이다. 그 게 재미있어서 웃었다. 사람들이 그런 말을 잘한다고.
그러면서 자기는 스페인 카디스에서 온 플라멩코 가수란다. 야마나시에서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를 마쳐서 돌아오는 길이란다. 카디스는 간 적이 없다고 했더니, 카디스는 아주 아름다운 남쪽 바닷가라면서 참치가 잡힌단다. 큰 참치가 잡히면 일본으로 보낸단다. 합기도를 아주 오랫동안 했었다고 그래서 나를 보고 아주 강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단다. 구름 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아서 이런 말을 한단다. 내가 원하는 건 다 잘될 거란다, 단지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고. 나는 재미있어서 듣고 있었다. 어차피 다음 역에서 둘 다 내릴 거다. 일본에 와서 13년이 되었다는 데, 일본말이 유창하지 못하다. 내가 스페인에 갔을 때 들은 플라멩코는 엔카(트롯, 뽕짝)더라고 했더니, 예, 맞아요, 플라멩코는 엔카예요. 그 남자가 대답을 할 때, 전철이 역에 도착했다. 그와 나는 각기 다른 전철을 갈아타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