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04 절전하는 도서관에서
오늘은 오랜만에 날씨가 맑고 참 좋았다.
어제저녁에는 같은 단지에 사는 선생 동생들이 후쿠시마를 지원하는 콘서트를 한다고 같이 가자고 한다. 근데, 네팔 아이가 온다고 해서 못 갔다.
네팔 아이는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왔다. 언제 올지 몰라 집 주위에서 맴돌다 보니 산책도 제대로 못하고 화가 났다. 그래서 먼 길을 와 준 네팔 아이에게 짜증을 부린다. 집에 쌀이 없어서 네팔에서 가져왔다는 길쭉길쭉하게 생긴 쌀도 가지고 왔다. 나는 그 전날 카레를 큰 냄비로 하나 만들어놨다. 네팔 아이가 놀러 온다고 해서 먹을 것도 많다. 그것도 먹으려면 한 시간 늦은 게 계획에 많은 차질이 있다.
정말로 오랜만에 밥을 해서 둘이서 경쟁하듯이 카레를 먹었다. 그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그러나 코스로 저녁을 준비했기에 샐러드도 먹어야 했고, 과자를 먹고 커피를 마시고, 후식도 복숭아, 키위, 계절 감귤로 우선 마감을 했다. 둘 다 배가 터질 것 같다.
잔소리를 한다.
한 시간 늦게 와서 먹을 걸 다 먹어야 하니까, 무리가 가잖아, 약속시간 지키라고.
수다를 떨다가 산책을 나간 게 밤 10시였다. 산책을 하는 내내 둘이서 떠들고 집에 들어오니 밤 11시가 넘었다. 그 시간에 자기네 집에 전화한다고 컴퓨터를 켜라고 한다. 결국 전화는 연결이 안 돼서 통화를 못했다.
그다음은 자기 여자 친구 얘기를 한다. 사진도 보여주면서,
여자 친구는 예뻐?
예 저한테는 예뻐요. 근데 다른 사람이 보면 예쁜지 어떤지 몰라요.
자기 눈에 예쁘면 되지 뭐.
각 자가 자기 할 일들을 하다가 각 자가 다른 방에서 잔다. 아침에 일어나서 알바를 가야 하는데 그 전에는 내가 깨워야 일어났다. 그런데 내가 호주에 가서 없는 사이에 지진이 나서 혼자 고생을 하다 보니 조금 철이 들었나 보다. 자기대로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서 준비를 한다. 그래도 내 집에 왔다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지 아침에 자기가 못 일어나면 깨워달라고 한다. 오늘 아침에는 내가 항상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 요가를 하고 아침 준비를 하다 보니 일어났다. 아침을 챙기는 사이에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일을 갔다. 철이 들어가는 것 같다.
오랜만에 날씨가 좋아서 아침부터 바쁘다. 이불들을 밖에 널어놓고 빨래를 돌리고 나서 날이 더워지기 전에 학교도서관에 갔다.
이 달 20일 까지 7월 초 오키나와에서 발표할 원고를 써내야 한다. 필드웍을 하고 나서 시간이 좀 지났기에 다른 자료들을 좀 봐야 한다. 자료를 점검하고 도서관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보고 일을 하려고 시간을 충분히 잡고 나갔다. 그런데 도서관이 지난주와 같이 도서관 안이 덥다. 2층은 실내온도가 30도 정도이고 4층은 28도였다. 걸어가서 흘린 땀에다 땀이 더 난다. 서있는 데도 졸음이 쏟아진다. 그래서인지 학생들도 별로 없다. 4층에서 여기저기를 걸어 다녀 그중에 시원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밀폐된 방에서 28도, 책상에 앉아서는 도저히 집중이 안된다. 빨리 일을 마치고 도서관을 나가야겠다. 그래도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갔는데 도저히 안된다. 3시간 정도로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하고 싶은 일을 절반도 못했다.
밖에 나온 시간은 오후 2시 쯤이다. 햇볕이 따갑고 덥다. 학교에 갈 때는 밖이 덥게 느꼈는데 도서관 안이 덥다 보니 밖이 한결 시원하게 느껴진다. 참 화가 난다. 대학도서관은 쾌적하고 무궁무진한 보물들이 굴러다니는 보물창고, 신나는 놀이터였는데, 쾌적하지 않다 보니 보물 찾기도 귀찮아진다. 학교 식당이 도서관보다 더 시원하다는, 뭐야 학생들에게 공부하지 말라는 거냐고?
일본에서는 인간들의 인내력을 요구하는 사항들이 수없이 많다. 우선은 무조건 참아야 한다. 참다가 보면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들은 병에 걸린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참고 있다는 걸 잊는다. 참고 견디고 있다는 걸 인식하면 괴로우니까. 현실도피를 한다.
그런데 참아야 하는 게 있고 참아도 해결이 안 되는 게 있다. 사실은 참아서 문제가 해결이 된다면 일본에는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속이 뒤집혀서 책을 빌리고 또 신청을 하고 나왔다. 그 길로 헌책방을 갔다. 헌책방에서 요즘 재미있게 읽는 작가 책을 5권 샀다. 더운 날씨여도 바깥이 훨씬 훨씬 쾌적하다.
도서관은 단지 책을 보관하거나 책을 빌려주는 장소가 아니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트래이닝하는 장소이다. 운동선수가 매일매일 스트레칭을 하고 자신의 필요한 운동 메뉴를 하듯이 나에게는 책을 읽는 게 숨 쉬는 것이요, 매일 하는 스트레칭이나 산책과 같은 것이다. 즉 근육인 것이다. 근육은 매일매일 움직여줘야 한다. 근육이 약해지면 체력이 약해져 간다. 물론 정신도 같이.
즉 전체적으로 교육에 관한 생산력, 사회적 효율이 떨어진다. 이건 참는 걸로 해결이 안 된다.
절전이 필요하다면 해야겠지, 그러나 절전도 가려가면서 해야 한다. 도서관에서 학생을 내놓는 것 같은 절전은 정말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는 걸 좀 알았으면 한다.
이 사회는 왜 자신들 스스로가 자신들 목을 졸라가는지, 그러면서 숨통이 막혀 괴로워하는지 모르겠다.
웃긴다.
참다 보니,
숨 쉬는 것도 참다 보니 몸에 산소가 부족해서 머리 따로 손따로 발 따로 어떻게 몸 전체가 연결이 안 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