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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제주도 사람들/'파친코'와 재일 제주도 사람들

'파친코'에서 보이지 않는 제주도 역사, 4세대 B섬사람들 -8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 26도로 흐린 날씨였다. 집에서 있다가 오후 늦게 산책을 나갔더니 후덥지근해서 전형적인 장마철 날씨였다. 오늘도 먼 공원에 가면서 가는 길에 오디를 땄다. 공원에서는 부추를 좀 잘랐다. 그걸 보고 있던 사람이 부추가 필요하면 자기네 밭에서 나눠준다고 해서 따라갔다. 부추가 아주 굵어서 조금 얻었다. 그리고 난 뒤에서 공원에서 부추를 잘랐다. 공원에서 부추를 자르는 곳이 경사져서 바람이 잘 통해서 시원하다. 거기에 부추가 새로 난 것이라서 더 파릇파릇하다. 오늘 낮에 강된장을 만드는데 처음 만들다 보니 물을 좀 넉넉하게 넣고 야채에서 물이 나와서 된장찌개가 되고 말았다.

 

공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금 지천으로 핀 수국을 꺾어 왔다. 앞으로 당분간 수국이 내 방을 장식할 것이다. 수국의 계절, 장마철이 왔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고토부키에 남은 B섬사람들 이야기다. 그중에는 일시귀국했지만 한국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간 사례도 있고 귀국했지만 한국에 적응이 쉽지 않은 다른 사례도 있다.

 

 

큰 파도의 시작과 끝남- B섬사람들을 중심으로

5. 고토부키초(일본) 남은 B섬사람 -2

 

B섬사람들이 고토부키초 체재가 10년을 경과하고 아이가 태어나 성장함에 따라 그들의 생활기반도 안정되어 갔다. 생활기반은 경제적인 측면만이 아니다. 그래서 도일 제주도인 4세대도 다른 세대처럼 정주할 것으로 보였다. 재류자격이야 어떻든 그들은 일본 생활에 아주 잘 적응해서 일본 이외에서 사는 걸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익숙해졌다. 한국에 돌아가 새롭게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그들은 이미 일본에 올 때처럼 젊지도 않고 가정을 꾸리고 가족이 생겨서 책임져야 할 일도 많기에 혼자 마음대로 하기도 어렵다. 그동안 일본에서 길면 15-20년이라는 시간이 경과해서 고토부키초에서 결혼하고 가족을 형성해 가족을 양육해야 할 책임을 가진 입장이 되었다. 아무리, 불법체류로 그들의 생활이 유동적이라고 해도 간단히 생활 근거지를 옮길 수는 없다. 그 정도로 일본에 익숙하고 뿌리를 내리고 말았다. 그런 한편, 일본에서 살아온 15-20년을 뒤돌아보면 그들은 한국에서 왔지만 거의 일본인 이 되었다. 그건 국적이나 혈연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살아온 나날 쌓아온 것으로 그들이 일본 생활에 적응한 정도를 나타낸다.

 

일본에 완전히 적응하고 만 케이스, 과잉 적응한 케이스를 소개하자. 일본인과 결혼해서 합법적인 재류자격을 얻었다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일본인과 결혼했지만 노후가 불안하다고 제주도 가족에게 돌아가서 살 것을 모색하기로 했다. 일본에서 음식점에서 일하고 음식점을 경영한 경험을 살려서 제주도 음식점에서 일하면서 실상을 파악해 그 후는 가족의 협력을 얻어 자신의 음식점을 시작할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가족이 소개한 음식점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그것은 일하는 음식점에서 다른 종업원이나 주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일본에서 하는 방식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 간섭하면서 일본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 연속이었다. 그런 일로 자신이 일하는 음식점만이 아니라, 같이 사는 가족에게도 강요해서 안팎으로 문제가 되었다. 가족의 소개로 일하는 가게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본인만이 아니라 가족에게도 피해를 준다. 제주도의 인간관계는 좁다. 그녀는 일본에는 일본에서 하는 방식이 있고 제주도에는 제주도 나름의 방식이 있는 걸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일본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본에서 일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한국이나 제주도에 대해 일본인이 가진 우월감(차별의식)까지 몸에 배고 말아서 제주도에 가서 드러난 것이다. 항상 일본을 비교대상으로 삼아도 주위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든다. 그래서 다시 제주도나 한국에 적응해서 노후 생활을 구축할 유연성을 잃고 말았다. 결국, 자신의 고향이지만 가족과 친족 간에 문제를 일으킨 그녀는 있을 곳이 없어지고 말았다. 동거하는 가족의 인내도 한계에 달해 그녀가 일본에 돌아간다고 할 때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일본에 있으면 노후가 불안하다고 몇 년이나 고민한 끝에 결정한 제주도 행이었다. 자신이 태어나 30년 이상 살아온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곳에서 적응하지 못했다. 그만큼 그녀의 일본 생활에 적응이 강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 유동적으로 유연한 이동을 하는 생활에서 고정적인 것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래서 그녀는 돌아갈 장소를 잃고 말았다. 제주도에서 살아본 결과 그녀는 일본 이외에서 사는 것이 어렵다는 걸 알려준다.

 

이 케이스는 다시 일본에 돌아오지만 가족과 주위 사람들을 복잡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가족 중에도 일본을 왕래하고 일본에서 일한 경험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출가한 사람들이 일본에서 어떤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본인도 음식점에서 오래 일했으며 그야말로 일본 엔과 한국 원의 임금격차로 일본에는 한국보다 일자리가 많아서 일본에 와서 일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일본의 방식에 따르지만, 일본의 방식이 모두 합리적이라는 것은 아니며, 일하는 곳에 따라 맞는 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는 제주도 나름의 방식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일본에서 일하는 중 일본인에게 차별당하는 일도 결코 적지 않다. 그런 것에는 여기는 일본이고 일하러 왔으니 어쩔 수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 걸 일본에서 온 동향인이 재현하면 가족이라도 참을 수가 없다. 본인은 무의식 중에 하는 일이라서 전혀 악의가 없다. 일본인이 차별의식이 없다면서 자연스럽게 차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경과를 거쳐 일본에 돌아온 그녀는 다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지만 장래에 대한 전망은 경제적/심리적으로도 매우 힘든 상황이다.

 

여기서 2005년 시점에 B섬사람들 대부분 귀국하거나 귀향해서 고토부키초에서 볼 수가 없다. 정확히 하면 1 케이스만 남았다. 먼저 쓴 것처럼 장기체재로 인해 일본에 적응한 B섬사람들과 제주도 사람들이 고토부키초에서 돌아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일본에서 새로운 세대를 구축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1992년 앙케트 조사 응답에서 보면 앞으로 어느 정도 일본에 체재하고 싶은가라는 설문에 대해, 응답의 선택지의 하나였던 앞으로 쭉 일본에 있고 싶다를 선택한 응답이 하나도 없었다. 그 이전에 불경기로 고토부키에 일자리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설문에도 그대로 고토부키에 머무른다3.8%에 불과하고 70%귀국한다도 답하고 있다 23). 그들은 앙케트에서 이미 자신들의 의사를 전하고 있었지만 연구자는 그걸 그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연구자의 해석에 바이어스가 걸려 있었다. 당시는 조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이대로 체재가 장기화하면 결과적으로 정주하게 된다”고 했다. 그런 시점은 각주에서 볼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 관한 서명에서도 읽을 수가 있다.

 

B섬사람 중에 일본에 정주하게 된 2 케이스는 일찍이 불법체재에서 합법적인 재류자격으로 변경했다. 배우자가 일본인과 일본 국적 대만인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1 케이스만 남고 고도부키초에서 B섬사람들이 다 떠났다. 그동안 B섬사람들을 관찰했던 나도 믿기지 않을 정도여서 그 결과를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200611월에 실시한 면접조사에서 담담하게 대답했다. 원래, 기한을 정해서 일본에 있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일본에서 귀국하려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중요한 시기에 자신이 선택한 결과 현재 일본을 떠났다고 한다. 예를 들어, 면접조사 케이스 9는 고토부키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고토부키를 대표하는 얼굴의 하나였다. 당시 회사에서는 오래 같이 일하기를 희망해서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받을 수 있는 상대, 일본인이나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가진 사람과 결혼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그 후에도 자신이 원하면 합법적인 재류자격을 받아 일본에서 살 수도 있었지만 자신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귀국하기 전에도 그가 고토부키에서 일하는 한편, 부인도 고토부키에서 가라오케 스낵을 경영했다. 부인이 경영하는 가게에는 그녀가 오래 일했던 가게 바로 옆이었다. 불법체재라고 해도 일본에서 생활이 안정된 편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쭉 일본에 있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귀국한 그들 부부는 1년 이상 지났지만 아직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경우 일본병이 심각해서 낫지 않는다고 한다. 앞으로 한국사회에 적응해서 일하는 것은 힘들다고 보고 있다. 이런 판단은 귀국하기 전부터 알고 있던 일이다. 그리고 일본병도 잘 낫지 않는 현실이다. 일본병은 일본에서 장기간 생활했던 사람이 귀국해서 한국에 적응하기까지 시차 적응을 하는 것과 같은 과정을 겪는다는 의미에서 쓰는 말이다. 보통은 1년이라고 하지만 개별적인 케이스에 따라 한국에 적응하기까지 기간이 다르다고 한다. 현재 상황은 자신들이 선택한 결과라고 인식하고 있다. 둘이 고토부키초에 대한 말을 하다가 그러고 보니 그의 아이 둘 다 고토부키초에서 태어났다는 것에 대해, 그는 아이들의 고향은 고토부키초라고 한다.

 

어제 찍은 수국 사진이다. 수국을 도마뱀이 침대처럼해서 자고 있는 걸 찍었다. 수국 위에서 바람에 흔들려 가면서 자고 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흔들리는 수국을 침대로 쓰다니 도마뱀이 머리가 상당히 좋고 미적 감각도 뛰어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