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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기시다 정권

사람 죽는 폭염에 절전하라는 일본 정부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 29도라고 했는데 아침 8시경에 벌써 29도가 된 걸 보니 30도가 넘을 것 같다. 낮이 되어 최고기온이 31도라고 나온다. 어제도 최고기온이 29도로 지내기가 수월했다.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3일까지 연속 8일간 최고기온이 35도가 넘는 폭염이 계속되었다. 동경 부근에서 최고기온 40도가 관측되는 날이 며칠이나 될 정도로 무서운  폭염은 6월에 전대미문이었다. 그런 날을 지내다가 어제는 기온이 내려간 것만으로 너무 행복한 하루를 지냈다.

 

어제 아침에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에 부설된 가게에 야채를 사러 갔다. 가는 길에 마치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은 것처럼 파닥거리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나이 먹은 아줌마가 다른 사람이 보는데서 파닥거리다가는 동네에서 머리가 이상하다는 소문이 나서 경계대상이 된다. 뒤에 나보다 훨씬 나이를 먹은 아줌마가 있어서 먼저 인사를 했다. 기온이 내려가서 살 것 같네요. 정말로 미친 더위였어요. 그랬더니 같은 마음이었는지, 글쎄 말이에요 하고 돌아온다. 내가 그냥 미친 사람이 되지 않아 다행이다. 가는 길에 버섯이 나는 곳도 봤지만 버섯은 없었다. 어제 비가 조금 왔으니 며칠 있으면 버섯이 날지도 모른다. 

 

언덕 위 가게에 갔지만 지난 금요일에도 야채가 별로 없었는데 어제도 야채가 보충되지 않은 상태라 살 것이 없었다. 그래서 가게에 물었다. 언제 야채가 가장 많이 있느냐고 했더니 휴일 뒷날은 야채가 별로 없단다. 거기에 야채가 많이 모이는 시간은 10시경이 돼야 한다고 한다. 결국, 야채를 하나도 사지 못했다. 거기에 아까 인사했던 아줌마가 있어서, 어머 같은 곳에 왔네요. 다른 길로 오셨나 봐요. 인사하고 돌아오는 길은 많이 걸어도 나무 그늘이 많은 길로 왔다. 목적이었던 야채를 사지 못해도 쾌적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집에 돌아와서 그동안 대충 했던 청소를 하기로 했다. 창문으로 시작해서 매일 물을 뿌리던 베란다에 집안도 걸레질을 두 번씩 해서 뽀드득 소리가 나게 청소했다. 걸레도 빨래를 돌리고 널었다. 알게 모르게 모인 쓰레기도 정리해서 버리고 하려고 들면 소소하게 집에서 할 일이 끝이 없다. 그러다 보니 친한 이웃과 산책할 시간이 되어 전화해서 가까운 공원에서 만났다. 날씨가 서늘하다고 살 것 같다고 둘이 수선을 피웠다. 그래서 어제는 좀 많이 걸었다. 2시간 걷고 마지막에는 코스트코 상품이 있는 가게에 들러서 현미를 사고 호주스러운 색감의 컨테이너를 몇 개 샀다. 집에 와서 봤더니 뉴질랜드산이었다. 호주가 그리워서 나도 모르게 사고 말았다. 집에는 컨테이너가 넘쳐 나지만 새로 산 만큼 정리해서 버릴 수 있는 건 버릴 생각이다. 어제는 그냥 산책하고 싶을 때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느껴졌다. 

 

어제는 에어컨을 켜지 않고 선풍기만으로 지낼 수 있었다. 폭염으로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지낼 수 없는 날은 방에 암막커튼을 치고 실내를 어둡게 해서 에어컨을 켜고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지낸다. 에어컨을 켜서 땀을 흘리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답답해서 숨이 막힐 것 같다. 어제는 오랜만에 일을 쉬고 산책을 오래 해서 잠 잘 때도 얼음 베개가 없었지만 모처럼 잠을 푹 잘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청소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 산책을 하고 잠을 잘 잘 수 있다는 평소에는 당연했던 일을 당연하게 할 수 있다는 게 참 소중하다. 사람이 죽어가는 폭염이 계속되는 환경에서 살다 보니 소소한 일상을 지낼 수 있는 일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진다.

 

어제부터 기온이 내린 것은 너무 기쁜 일이지만 태풍이 규슈를 향해서 오고 있다니 기온이 내려가고 비가 오는 걸 마냥 기뻐할 수도 없다. 이번에는 규슈와 서일본에는 맹렬한 폭우가 내린다고 한다(https://news.yahoo.co.jp/articles/eddb3e21ec800696aa7b1a37f0f463359793393f). 태풍을 동반한 맹렬한 폭우라는 의미는 자연재해를 동반하고 있기에 피해 입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말이다. 정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날씨에 좌우되는 생존을 걸고 서바이벌하는 것 같다. 

 

 

 

지난주 동경에서 가장 더웠던 날은 지난 금요일이었던 것 같다(https://news.yahoo.co.jp/articles/89137bff5d810e79ddc2e4e2ea59d8445730ece6). 나도 식료품을 사러 나갔다가 무사히 돌아왔지만 집에 도착해서 35도가 넘으면 밖에 나다니는 건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알았다. 7월 1일 동경에서만 열사병으로 구급차에 실려간 사람이 301명으로 올해 처음 하루에 300명이 넘었다고 한다(https://news.yahoo.co.jp/articles/7f6748d43ad6001f3653a8715b4870f4910ff54e). 연령별로 보면 80대가 74명으로 가장 많으며 188명이 60대 이상으로 62%를 차지하고 있다. 6월에 열사병으로 구급차를 탄 사람은 속보치로 1,517명으로 과거 10년에서 최고라고 한다. 그중 사망자는 17명으로 과거 10년에서 최고라고 한다. 동경에서 오래 살다 보면 폭염이 단순한 더위를 넘어 사람이 죽겠구나, 열사병으로 구급차에 실려가는 사람이 늘겠구나 하는 예감이 든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런 예감은 뉴스를 통해서 검증이 된다. 중증 열사병은 후유증도 심각하다고 한다(https://news.yahoo.co.jp/articles/ab7d1c3ae5098988a1870cc88f0fa9fe4c3c3eb4). 

 

자연재해를 포함한 모든 재해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는 사람은 상대적 약자가 된다. 동경의 폭염에서도 열사병으로 실려가는 사람들 연령대를 보면 알 수 있다. 주위에서 봐도 고령자들이 에어컨을 잘 켜지 않는다고 한다(https://news.yahoo.co.jp/articles/9a91f7d3625df30a782f91f9452c46df067ce72f). 나는 고령자에 속하지 않지만 나도 에어컨을 가능한 켜고 싶지 않은 편이다. 나는 일을 할 때 에어컨이 켜진 곳에서 하기 때문에 집에서는 가능한 에어컨을 켜고 싶지 않지만 지금은 더운 시간에 집에서 지내야 하기에 실온 30도가 되면 에어컨을 켠다. 일본에서 에어컨을 켜지 않는 이유가 더위를 '참는다'는 식으로 견딘다고 한다. 재작년 열사병으로 사망한 사람 90%가 집에서 에어컨을 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전해 사망자를 보면 낮보다 밤에 집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는 일본에서 이런 걸 보면 정말로 마음이 복잡해진다. 일본에서는 많은 것에 정신승리라고 할까, 정신론을 대입한다. 그래서 더위도 정신을 무장해서 이겨내야 한다는 의식이 잠재적으로 강한 것 같다. 특히, 나이를 많이 먹은 세대가 그렇다. 거기에 고령자는 더위를 잘 느끼지 못하기에 열사병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실제로는 뉴스에 나오거나 통계에 잡히는 것보다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을 걸로 본다. 인간관계가 적은 독거노인이 많아서 열사병으로 구급차를 탈 수 있으면 다행인 편이다. 열사병으로  '고독사'를 해도 금방 발견되지 않기에 그런 경우를 포함하면 사망자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오늘 뜬 속보를 보면 동경도에서 올해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71명이나 된다고 한다(https://news.yahoo.co.jp/articles/6379f88097bc034909892ec29ee67061da76d93b). 일본 전국이 아니라, 동경도에서 나온 사망자가 71명이나 된다니 놀라운 숫자다. 아마, 지난 일주일 동안이 아니었을까?  참고로, 작년 1년간 열사병 사망자가 39명이었으니 올해는 벌써 작년의 2배나 되는 셈이다. 연령별로 보면 80대가 29명, 70대가 22명으로 사망자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건물 내에서 사망한 66명 중 에어컨이 없는 케이스가 14명, 에어컨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은 케이스가 43명으로 전체 사망자 80%가 에어컨을 켜지 않아서 사망했다고 할 수 있다. 에어컨이 없어서 켜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에어컨이 있으면서도 켜지 않아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경우를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 폭염에서는 정신이 몽롱해지기 때문에 자신의 감각을 믿지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그렇기에 최고기온이 어느 정도 올라가면 무조건 에어컨을 켜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본 정부는 사람이 죽어가는 폭염에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절전을 강조했다. 갑작스러운 폭염으로 전력소비가 늘어 전력이 핍박하다는 경보도 계속 발생했다. 올해 들어 가장 더웠던 날, 아마 열사병으로 가장 많이 사망한 날이 아닐까? 같은 날에 오늘부터 '절전 기간'이라고 절전 캠페인에 참가하면 2천 엔에 상당하는 포인트를 준다고 했다(https://news.yahoo.co.jp/articles/8ec66211949c2b9abc90e4e4a05382f30281b6f7). 어제 다른 기사를 봤더니 72%나 되는 사람들이 절전 캠페인에 참가할 의사가 없다고 한다. 나도 2천엔 받으려고 절전 캠페인에 참가할 의사는 없다. 그렇다고 절전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평소 생활에서도 절전을 한다. 하지만, 그야말로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운 폭염 속에 살면서 절전을 생각해서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면 정말로 목숨 건 절전이 된다. 나는 일본 정부가 폭염과 동시에 절전을 강조하는 걸 보고 고령자가 열사병으로 많이 죽겠구나 했다. 일본에서는 정부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절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올해는 전기요금이 급등해서 절전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정부에서 이런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하면 그렇지 않아도 더위를 참고 견디는 고령자가 에어컨을 켜지 않아 열사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정말로 비정하게 사람을 죽이지 말고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캠페인을 벌여주길 간곡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