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동경은 오전에 흐렸다가 낮부터 맑은 날씨가 되었다. 최고기온 18도, 최저기온 12도로 기온은 그다지 낮지 않지만 아침부터 맑은 날씨로 햇살이 들어오지 않아서 집이 따뜻하지는 않았다. 보통은 기온이 내려가는 밤에 담요를 두르고 있는데 오늘은 오전부터 담요를 두르고 앉아 있었다.
오늘 드디어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 명단이 공개되었다.
http://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7
나는 이제야 겨우 공개된 희생자 명단을 세 번 찬찬히 봤다. 처음에는 한 명 한 명 이름을 보지 않고 한 장의 그림처럼 봤다. 두 번째는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면서 봤다. 가만히 이름을 보고 있으면 여성이 더 많은 것 같아 여성으로 보이는 이름을 세어 봤다. 외국인을 제외해도 여성이 반 이상이 되는 것 같다. 대부분이 젊은 여성들일 텐데 아무런 인연이 없는 나도 희생자 명단을 보고 참사에 대해 조금 더 실감이 나고 눈물이 났다. 이제야 겨우 희생자의 이름을 알 수 있게 하는 건 희생자에 대해 애도조차 할 수 없도록 은폐했기 때문이다. 그런 은폐는 희생자의 삶이나 유족들의 슬픔을 공유하고 참사 유족들끼리 연대해서 의지할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하는 '폭력'이다. 국가에서 애도기간을 강요했지만 유족들과 다른 사람들이 슬픔을 공유하지 못하게 차단해서 유족들을 고립시켰다. 희생자나 유족들은 많은 위로와 치유가 필요한 '피해자'이지 죄를 짓고 세상의 눈을 피해야 할 '가해자'가 아니다. 희생자의 이름을 숨겨서 애도조차 하지 못하도록 막는 세력은 무엇인가? 이제 시작이다. 희생자가 살아온 인생을 알리시길 바란다. 희생자가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아닌 한 명 한 명 소중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고 중요한 가족 구성원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친구가, 동료가, 아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유족들이 주위에 제대로 알리지도 못하는 입장에 처하도록 고립시키는 건 심각한 폭력이 아닐 수가 없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날 동경대학에서 '파친코'에 관한 심포지엄이 있어서 기본적으로 온라인 참가였지만 나는 대면으로 신청해서 참가했다. 동경대학에 간 것도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이 계절에 가면 은행나무 열매가 많이 떨어져 밟혀서 냄새가 진동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봤더니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져 조금 밟힌 자국이 있었지만 청소를 해서 냄새가 진동하는 일은 없었다. 회장에 갔더니 예상과는 달리 성황이어서 놀랐다. 마침 같은 팀에서 일하는 교수님도 있어서 같은 열에 앉아서 봤다.
전 날까지 몸이 힘들었는데 심포지엄에 대면으로 참가한 것은 기조강연을 하는 텟사 교수와 만나고 오랜만에 다른 발표자 얼굴도 보기 위해서였다. 텟사 교수와 인연이 20년이 넘었고 그동안 호주 국립대학에도 자주 가서 세미나를 했다. 원래는 다른 친구들도 만나러 호주에 갈 생각이었지만 내가 과연 호주에 갈 수 있을지 모르기에 동경에 왔을 때 만나 두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당일 아침 페이스북에 텟사 교수 생일이라고 떴다. 나는 생일과 상관없이 준비했던 약소한 선물을 가지고 갔다. 생일이라는 걸 당일 아침에 알아도 다른 선물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파친코'라는 책과 드라마, 재일동포를 주제로 이렇게 장시간 심포지엄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나는 '파친코' 원작을 읽지 못한 채 심포지엄에 참가해서 발표를 듣고 옆에 앉은 아는 교수님과 의견을 교환했다. 회장에서 이전부터 잘 알고 있는 발표자와도 만나서 근황을 전했다.
그렇게 장시간 열린 심포지움이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핵심적인 부분까지는 다루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내가 재일 제주도 사람을 연구해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내가 느끼는 점에 대해서 회장에서 발언을 했더라면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산통을 깨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당일의 기록으로 내가 느낀 점을 남기려고 한다.
드라마 '파친코'에서 제주도 출신 고한수와 평양 출신 선교사 백이삭은 대립적이며 주인공인 선자와 아들인 노아에 대해 정반대인 인물로 묘사된다. 먼저 고한수는 잘생긴 매력적인 남성이지만 '나쁜 남자'이며 돈은 많아도 선자에 대해서 가부장적 남성성을 앞세워 지배하려는 인물로 나온다. 아들인 노아에 대하는 부분에서도 '힘의 논리'를 주입시키려는 걸로 보인다. 선자에 대해서도 무책임한 남성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에 대해 백이삭은 혼전임신으로 곤경에 처한 선자와 결혼해서 오사카로 이주해 구출하는 '구원자'로 나온다. 오사카에서도 경제적인 능력은 약하지만 좋은 남편에 노아에게도 바람직한 아버지로 나온다. 사회적인 활동을 보면 고한수가 야쿠자인 반면 백이삭은 존경받는 목사이다. 고한수가 자신의 공동체를 위해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잘 몰라도 백이삭은 조선인 노동자에게 민족주의를 상기시키고 사회주의 운동에 참가하는 리더로 묘사된다.
나는 원작을 읽지 않았지만 제주도 사람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고한수와 백이삭을 배치했는지 궁금하다. 특히, 제주 4.3 항쟁과 관련해서 생각하면 평양 출신 선교사 백이삭은 제주도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던 '서북청년단'을 상기시키는 인물로, '서북청년단'의 또 다른 얼굴이다. 평양 출신 기독교 신자이며 독립운동을 한 형이 있는 인텔리 청년 백이삭이 볼 때, 고한수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아니, 고한수로 대표되는 제주도 사람들은 어떻게 보였을까? 오사카에서 주위에 있던 조선인은 다름 아닌 재일 제주도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주한 곳이 재일 제주도 사람 커뮤니티였기 때문이다. 거기에서도 백이삭은 무지한 조선인을 '교화'시키는 인물, 민족주의를 고무하며 사회주의 운동에 참가해서 조선인을 일깨워 나가는 인물로 묘사된다. 백이삭은 혼전 임신한 선자와 결혼해서 그녀를 '구원'한 것처럼 조선인 재일 제주도 사람들에 대해서도 '구원'할 대상으로 삼는 구도가 보인다. 만약, 작가가 제주 4.3 항쟁을 알면서 이런 구도를 쓴 것일까? 하는 상상을 하면 소름이 끼친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제주도 사람들을 '구원'받아야 할 대상으로, 백이삭으로 대표되는 평양 출신 기독교 신자가 마치 '구세주'인 것처럼 폭력적인 관계가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파친코'는 기본적으로 미국 드라마이기에 미국이라는 거대한 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제주 4.3항쟁에 미국이 음으로 양으로 개입된 것과 같은 구조이다.
제주 4.3항쟁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제주도 사람들에게 '서북청년단'을 연상시키는 백이삭이 마치 '구원자'인 것처럼 묘사된다면 정말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 '파친코' 촬영을 오사카에서 한다고 들었다. 부디, 내가 상상한 것이 기우에 그치길 바랄 뿐이다.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날 동경대학에서 있던 심포지엄에 참가하고 뒤풀이도 갔다. 모처럼 장시간에 걸친 심포지엄이었지만 내가 연구했던 분야가 겹치고 발표자도 아는 사람들이라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이런 일은 정말로 드물다. 뒤풀이에서는 텟사 교수 맞은편에 앉았지만 장시간 집중해서 일을 하고 난 뒤라 매우 피곤할 것이라서 주로 옆에 앉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뒤풀이를 하는 자리에서 출판 준비를 하고 있는 재일 제주도인 1세의 생활사에 관한 안내도 배부했다.
집에서 가까운 역에 도착한 것은 11시가 넘었다. 집에 와서 컴퓨터를 켜고 딴지일보 자유게시판을 열고 실시간으로 이태원 참사 뉴스를 접하게 된다. 이태원 할로윈 축제에서 '압사' 50명이라는 게 나온다. 아니, 이태원 할로윈 축제는 알겠는데 '압사'라니? 나는 '압사'라는 말 자체를 별로 들은 적이 없다. 테러가 발생한 것도 아니고 '압사'라니 무슨 일인가? 이게 현실이라는 건가? 도대체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서도 비현실적이었다. 내가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게 아닌가? 하면서도 밤 1시 넘도록 올라오는 글을 계속 보고 있었다. 내가 뭔가 잘못 보고 있는 거지, 지금 이 세상, 서울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본 뉴스를 확인하느라고 야후 재팬을 봤더니 관련 뉴스가 신나게 올라오고 있었다. 너무 이상하다. 우선, 잠을 자자. 내일 아침에 보면 자세한 내용을 알 수가 있겠지. 영문을 모른 채 잠자리로 갔다.
다음날 희생자가 더 늘었고 '압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아이고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구나. 내 주변에서 생각하니 큰 조카 아이들이 호기심에 이태원 할로윈 축제에 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생각을 하니 살이 떨린다. 조카에게 전화해서 아이들이 이태원에 간 건 아니지? 했다. 아이들이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아이고, 정말 다행이다, 다행이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저녁에는 아는 친구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하고 말미에 딸이 이태원에 간 건 아니지? 하고 물었다. 가지 않았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내 가족과 친구 자식들이 이태원에 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조카아이들 친구 중에 희생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친구 딸이 아는 친구가 희생자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조카아이들이나 친구 딸이 평소에 이태원에 놀러 가는 일은 없다. 하지만 할로윈 축제에 구경거리가 있다고 호기심에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일이다.
일본인 희생자 중 한 명을 같이 일하는 팀 학생이 이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라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떤 위로의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직접 아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동경에 살아도 한 다리 건너면 희생자와 알고 있는 사이였던 것이다. 한국을 좋아하던 학생이 한국에 유학 가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가 되다니? 부모의 심정이 어떨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나도 대학에서 오래 학생을 가르치던 입장이라서 내가 아는 학생이 참변을 당했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내가 아는 학생이 아니어도 학생의 아는 친구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장학금 받게 추천장을 써준 학생이 현재 유학 중이기도 하다. 남의 일이 아니다. 젊은 세대에게 할로윈 축제는 큰 행사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렇기에 이태원 할로윈 축제에 갔다고 특별하거나 유별난 사람들이 아니다. 누구나 이태원에 갈 수가 있다. 누구나 희생자가 될 수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늦었지만 오늘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이 발표되었다. 희생자 한 명 한 명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유족과 슬픔을 나누고 위로를 전하는 것이 애도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 아무 죄도 없는 젊은이들이 무참하게 희생된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충격적인 날이 잊힐 것 같지가 않다.
무수한 별이 빛나는 것처럼 보이던 부추꽃이 희생자와 겹쳐서 사진을 다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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