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9 종다리는 갔다
오늘 동경은 어제 태풍 종다리가 지나고 다시 맑은 날씨가 되었다. 어제와 그저께 밤에 비가 많이 왔다. 그동안 보름 넘게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는 날씨가 계속되어 솔직히 태풍을 기다렸다. 태풍보다 태풍이 몰고 오는 비를 기다렸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지난 금요일로 종강을 하고 학기가 끝났다. 주말부터 여름방학이 시작되지만 여름방학이라기보다 아직 학기말이 덜 끝났다. 채점을 하고 평가, 점수를 입력하면 여름방학이 되는 것이다. 지난주는 모든 강의를 끝내고 학기말 리포트를 받았다. 학생들은 마지막 강의 때 평소처럼 감상문을 쓰는데 이번 학기로 끝나는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헤어지기가 아쉽다고 선생님 강의를 들어서 좋았다고 한다. 자신들 세계관이 많이 달라졌다고 앞으로도 선생님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열심히 노력하겠다고도 한다. 평소에 늘어졌던 학생들도 심각하게 열심히 마음을 다해서 편지를 쓰듯 감상문을 쓴다. 나도 학생들과 친해져서 말을 편하게 할 무렵이 되면 학기말이라, 학생들과 헤어지가 아쉽다. 이번 학기에는 유독 학생들이 선생님과 헤어지는 것이 섭섭하다는 말이 많아서 나도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폭염으로 인해 나도 학생들도 너덜너덜해져 힘든 상황이라, 마지막까지 긴장했다. 이 무서운 날씨에 쓰러지면 큰 일 난다. 금요일에 종강하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은 해방감이 아니라, 학생들과 헤어진 생각에 마음이 헛헛했다.
친한 선생이 와서 "우리 직업은 참 이상해, 학생들과 친해질 만하면 맨날 헤어져, 그런 것도 질리네, 헤어지지 않는 관계가 그립다"라고" 했다. 선생들의 헛헛한 마음은 어디서 위로를 받아야 하나? 수다를 떨었다.
집에 가까운 역에 와서 살 것도 없으면서 마트를 휘젓고 다녔다. 마트라도 휘젓고 다녀야, 헛헛한 마음이 달래질 것 같아서다. 마트에서 살 것이 없었다. 집에 일찍 돌아왔으니까, 야채를 사러 나가야지. 요즘은 매일 야채를 사러 나갔다. 살 것이 없어도 야채를 보러 갔다. 가는 길에 전날 밤에 만든 쌈장을 나눠줄 병에 든 것을 들고 갔다. 야채를 사러 갔더니 베개를 해도 좋을 정도로 큰 오이와 닮은 야채를 두 개나 샀다. 지난번에 살짝 절여서 먹었더니 아삭아삭 맛있었다. 베개를 할 정도 크기니까, 먹을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산 것이다. 대책이 없다. 가방에 넣고 무거운 짐을 지고 오면서 힘들고 땀을 흘리면 헛헛한 기분이 좀 가실 것 같아서다. 돌아오는 길에 아는 집에 들러서 쌈장을 전했다. 아주 반가워하면서 자기네가 거둔 감자를 줬다. 마당에서 토마토도 따서 줬다. 좀 전에 방울토마토를 사서 씻지도 않고 걸으면서 먹어 치웠지만 나무에서 익은 토마토는 맛있다. 냄새부터 다르다. 아는 집 아이는 몇 달 사이에 훌쩍 컸다. 내년에는 초등학교에 들어간다고 어른스럽게 말을 한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도 순간이구나 싶었다.
어제는 순전히 태풍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날씨가 선선할 것 같아 오랜만에 밥을 하려고 현미를 씻어서 불렸다. 어제는 밥하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생선전을 부쳐서 데친 양배추에 쌈을 싸서 먹었다. 그동안 밥을 잘 먹지 않다가 먹었더니 위가 팽창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밥을 먹는 자체가 평소에 먹는 음식의 몇 배를 먹는 것이었다. 거기에 된장찌개를 끓이거나 생선전을 부치는 것도 꽤 많은 재료와 다양한 조리도구를 쓴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꼈다. 요리를 한다는 자체가 꽤 부산한 움직임이었다. 그래도 날씨가 선선해서 괜찮았다. 마음의 헛헛함을 채울 길이 없으니 배라도 채우는 것이다.
어제 저녁 4시 반에 피난 준비를 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내가 사는 지역은 대상이 아니었지만 방송을 들었다. 태풍이 밤에서 새벽에 지나간다는 예보였는데 오후에 지난 모양이다. 집에서 창문을 통해서 봤더니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 작은 숲이 요동을 쳤다. 비도 옆으로 날리고 난리가 났지만, 내가 사는 곳 창문 밖 나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작은 숲까지가 태풍권이었나 보다. 비는 왔지만 바람은 불지 않았다. 눈 앞에서 작은 숲이 요동을 치는 걸 보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작은 차이로 태풍이 지나는구나.
지난 목요일에 옥수수를 18개나 샀다. 이번 시즌 옥수수를 많이 먹지 못한 것 같아서 많이 산 것이다. 처음에 여섯 개를 삶았더니 먹기 전에 옥수수가 쪼그라 들어서 다음에는 네 개씩 삶아서 먹었다. 옥수수를 먹으면 쓰레기가 급격히 많아져서 귀찮다. 하지만 맛있는 옥수수가 나올 철이 아니면 옥수수를 먹을 일도 없기에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오늘 저녁으로 18개 산 옥수수를 다 먹었다. 옥수수는 신선해야 맛있기 때문에 많이 사면 안된다. 사면 가능한 한 빨리 먹어야 맛있다. 이번에 먹은 걸로 2018년 옥수수 시즌은 끝난 것이다. 옥수수야, 안녕! 때가 되면 다시 만나자!
오늘은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고 최고기온이 33도까지 올라갔지만, 창문을 열고 지냈다. 지난주 너무 더워 청소를 제대로 못해서 이번 주는 청소를 꼼꼼하게 했다. 아침에 베란다에 물을 뿌리고 솔질을 해서 씻는 걸로 시작해서 창문도 닦았다. 걸레질도 두 번씩 해서 기분이 좋다. 이틀 동안 내린 비로 습기가 많지만 비가 와서 반가웠다.
종다리가 지난 저녁에 느낀 것은 모기가 왕창 생긴 모양이다. 모기향을 피웠는데도 불구하고 모기가 나를 물어뜯는다. 아주 작은 모기들도 정신없이 날아다닌다.
종다리는 비를 뿌리고 지나갔다. 보름이나 계속되던 무서운 폭염을 한풀 꺾어 준 것 같아 고마웠다. 살다가 태풍을 기다리고 태풍에 감사하는 날이 올 줄 몰랐다. 그만큼 폭염이 무서웠다. 종다리는 살짝 비켜서 비를 몰고 와서 폭염을 물리치고 떠났다. 고마워, 종다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