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코상의 결혼식
2011/10/15 미카코 상의 결혼식
요즘 동경 날씨가 가을인데도 불구하고 후덥지근하다. 가을날씨가 아니다.
오늘은 미카코 상의 결혼식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보통 결혼식은 정말로 가까운 사람들만 참석한다. 그리고 같은날 결혼 피로연을 한다. 결혼 피로연에도 초대장을 보내고 답장을 받아서 참석자의 좌석까지 지정되어있다. 피로연은 보통 3시간정도 걸린다.
미카코 상이 그전에 결혼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러 왔었는데 오늘은 결혼식과 피로연을 한 것이다. 말을 듣고보니 미카코상 부모님이 37년전에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결혼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단다.
결혼식과 피로연을 명치기념관이라는 데서 했다. 나도 오랜만에 이런 자리에 나가느라 좀 긴장했다. 요즘 일본은 그 전과 달라서 많이 느긋해졌다고 하지만 갖추어야 할 격식은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초대장이 오면 답장을 보낸다. 그리고 축의금도 짝수가 아닌 홀수 금액으로 넣어야 한다. 보통은 3만 엔이다. 좀 더 가까우면 5만 엔 등 관계에 따라 다르다. 많이 넣어도 상대방에게 답례를 해야 하는 부담을 주기 때문에 상식적인 선이 무난하다. 축의금을 넣는 봉투도 금액에 따라 달라진다. 금액이 적으면서 너무 호화로운 장식 봉투를 써도 안되며, 금액이 많으면 그만큼 봉투도 호화스러워야 한다. 봉투에 넣는 것도 속에 작은 봉투에 넣고 그 걸 다시 장식이 달린 봉투에 넣는 것이다. 물론 자기 이름도 써야 한다. 장식 봉투는 다시 후쿠사라는 보자기에 싼다. 후쿠사는 경사와 조사에 쓰는 게 다르지만, 보라색은 경조용을 겸해서 쓸 수 있다.
나도 친구 어머니가 실크로 염색해서 내 이름을 새긴 걸로 마련해주셨다. 그 걸 꺼내서 축의금 봉투를 싸서 핸드백에 넣었다. 파티에 가는 핸드백은 왜 그렇게 작은지 별로 들어가는 게 없다
피로연을 시작하기 전에 정원에서 신랑 신부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던 비도 멈췄다. 그리고 피로연이 시작되었다. 신랑 신부는 고등학교 때 클래스메이트였는데 작년 동창회 때 재회해서 사귀기 시작한 것이다. 양가는 집도 같은 동네로 아주 가깝다. 그래서 그런지 양쪽 집안 분위기도 차분한 게 비슷하다.
내 자리는 신랑 신부가 않은 연단에서 가까운 앞자리였다. 앉는 자리도 신랑 신부와 관계에 따라서 정해져 있다. 신부 쪽 가장 상석은 직장 사람들이고 그다음이 내가 앉았던 테이블이었다. 내 옆에는 오른쪽에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앉아있었다. 신랑과 신부를 엮는 역할을 하신 분이다. 그 선생님 클래스에서 두 커플이 탄생했단다. 둘 다 유명한 진학교 출신이다. 진학교 출신들은 유명대학에 들어가는 게 당연하다.
피로연 분위기는 차분히 그리고 양쪽 집안 분위기답게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음식도 완전 일본음식이었다. 결혼식에 몇 번 갔지만 이렇게 순전한 일본음식은 처음이었다.
신랑 신부는 처음에는 일본 전통의상을 입었고 다음은 드레스를 입었다. 신부가 입었던 드레스는 신부 어머니가 37년 전 결혼식 때 입었던 드레스란다. 신부 언니가 결혼할 때도 입었고 이 번에는 신부가 입은 것이다. 드레스 색도 예쁘고 참 잘 어울렸다.
피로연이 끝나서 답례품까지 받고 돌아왔다. 나에게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보자기에 싼 답례품을 넣은 것 같다.
나는 정원에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신랑 얼굴을 처음 봤다. 참 착하고 순하게 생겼다. 미카코 상에게 마음고생을 시키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행복하고 좋은 가정을 꾸려갈 것 같아서 좋았다. 미카코 상은 좋은 아내가 될 거고 좋은 엄마가 될 사람이다. 15년 가깝게 알고 지낸 내가 보증을 할 수 있다. 신랑도 좋은 남편이며 좋은 아빠가 될 것 같다. 인연이라는 게 있나 보다.
정말로 좋은 피로연이었다.
오늘 피로연에서 일본의 중류층, 그것도 건전하고 건강한 보수파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신선했다. 실은 일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핵심적인 사람들 모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