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항자의 대부? G목사님!
2010/10/24 밀항자의 대부? G목사님
아까 블로그를 올리고 나서 산책을 다녀왔다.
전화가 와서 창가에서 전화를 받다가 달이 보였기 때문이다.
전화하는 친구에게 보름달인 것같아 보름달이냐고 물으니 거기서는 달이 안 보인단다. 내가 사는 곳이 산동네라 달이 잘 보인다. 밖에 나갔더니 공기가 쌀쌀하다. 일주일 만에 깊은 가을이다.
달밤에 체조하는 체질이라,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왔다. 우리 동네는 공원에 둘러싸여 있다. 공원을 몇 개 도느냐에 따라 산책코스가 달라진다. 보름달이 뜨는 날은 특별히 달이 멋있게 보이는 포인트가 추가된다. 공원을 세 군데를 살짝 돌았더니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오늘은 달밤인데다가 토요일이라 약간 긴 코스를 돌았다. 산책코스는 단풍이 들면 사진을 찍어 올리고싶다.
오늘밤 달이 보름달이였나요?
약간 살짝 깎인것 같던데?
어제가 보름달이었나?
이쿠노로 돌아가자.
대한 그리스도 교회 총회(KCCJ)에 갔다. 92년에 교회에 다니시는 분을 소개받은 적이 있어서 들린 것이다. 사실, R선생은 연령을 짐작하기 어려워 지금도 계실 줄 몰랐다. 은퇴하셔도 사무실에 가면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같아 들려본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본인이 계셨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전에 인터뷰했던 분들의 안부를 확인했다. 돌아가셨다는 걸 진즉 알고 있었지만 확인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다가 G선생을 알지? 그러면서 묻는다.
예, 알지요, 안녕하시지요? 이번에 찾아뵐려고 하는데. 사실 의논드릴 일이 있었다.
G선생、돌아가셨어, 2년 전에 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셨어.
무슨 얘기를 하시는지? 잘 모르겠다. 3년 전에 만났을 때 아무런 이상도 없었는데. 그 후 얼마없다 돌아가셨다니, 믿을 수가 없다.
암인걸 알고 6개월 후에 돌아가셨어.
아무래도 실감이 안 난다. G선생님은 언제까지나 살아계실 줄 알았는데,,,
말이 안 나온다. 죽음은 갑자기 오는구나.
사실, 3년 전에G선생님을 만난 건, G선생께서 나를 수소문해서 호주에 있는 나에게 에히메대학에 있는 친구가 메일로 G선생님이 나를 찾는다고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때 나는 왜 나를 찾을까? 선생님이 아프셨나? 선생님이 돌아가실때가 되어 그 전에 나에게 제공해 주셨던 자료를 주실려고 그러나 하고 제멋대로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에 왔던 길에 고베에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히가시오사카에 있는 교회까지 만나러 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나한테 살아있는 동안은 연락을 하라고 하셨다. 변함없이 건강하신 것처럼 보였다. 그 때는 암인걸 아직 모른 때였던 것이다. 그 때 만나고 나서 오래 사실 줄 알았다. 그 만큼 정정하셨다.
G선생님은 어떤 분인가.
밀항한 사람들을 도와주신 목사님이시다. 단지, 도와줬다는 차원이 아니라, 밀항한 사람들을 구해주시고, 밀항한 사람들이 일본에서 살 수 있도록 많은 활동을 오랫동안 해오신 분이시다. 밀항한 사람들이라는 건 거의 제주도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G선생님에 관한 자료를 오랜만에 꺼내서 봤다.
1982년 4월 4-7일, 3박 4일간 제주도여행을 다녀오신 여행기가 있다. 거기에 쓰여진 것을 보면, 한국에서 밀항해 오는사람 대부분이 제주도 사람인데, 자신이 제주도에 관해 실질적인 것은 잘 몰라 법무성이나 입국관리국과 교섭할 때 설득력이 부족한 걸 느껴서 제주도에 대해서 알(왜 제주도사람들이 밀항을 해야 하는지?) 목적으로 한 여행이었다.
G선생님은 3박 4일간의 여행기를 자신이 담임교회 주보에 연재했다. 45회에다가 여록(余錄) 을 5회 합계 50회, 거의 일 년에 걸쳐 매주마다 쓴 것이다. 결국, 그 내용은 작은 책자가 되었지만, 새삼스럽게 지금 읽어도 ‘박진감’이 넘친다. G선생님은 제주도에서 온 밀항자(이하 ‘잠재 거주자’로 칭한다)문제를 일본의 역사문제와 결부시켜 이해했고 인간적인 측면에서 진심으로 접근하신 걸 알 수 있다. 대단하신 분이다.
실은, G선생님이 나에게 일차 자료를 제공해 주셨다 (이건 처음으로 밝힌다).
G선생님을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지만, 도저히 자료제공을 해 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어떤 자료를 가지고계신지도 모르고, ‘잠재 거주자’에 관해 모르는게 많아 어떻게 접근해야 될 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단지, 재일 제주도 사람들 연구에 있어서 ‘잠재 거주자’를 빼놓을 수가 없다는 건 확실했다.
그 전부터 내 연구대상은 주로 오버스테이를 하고있는 제주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80년대말이나 90년대에 새로 온 사람들과 2차 대전 후에 밀항으로온 사람들과는 그 배경이나 문제의 심각성이 전혀 다르고 사실 연구대상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잡히지도 않는다.
자료도 법무성측 자료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런 연구가 없었기 때문이며, 연구대상이 되지도 않았다. 하긴, 내가 연구하는 사람들은 ‘불법’인 사람들이라 연구대상으로 하기를 꺼려 한다. 매스컴에서도 잡히지 않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사람들 세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다. 알고 있지만 숨겨야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떻게 접근을 하느냐에 따라 연구대상에 대한 이해가 아닌 ‘오해’가 전해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모든게 조심스럽다.
그런데, G선생님이 자료를 제공해 주셨다.
약 100 케이스의 일차 자료, 그 내용은 재판기록, 탄원서명운동 등 아주 민감한 개인적인 프라이버시에 관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은 전부 가렸다.
그리고 ‘잠재 거주자’ 상담이 들어와 인터뷰를 할 때도 같이 참석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이 케이스는 동경올림픽이 있던 1964년 5월에 일본에 밀입국, 1993년 까지 29년이나 ‘잠재 거주자’였던 경우다. 회사사장이 데리고 와서 회사에 21년이나 근무해서 회사에서도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이니 어떻게 합법적으로 체재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그 자리에는 ‘잠재 거주자’ 본인, 회사 사장, 변호사, G선생님, 내가 동석했다.
G선생님 자료를 쓰고 싶은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이름만 대도 알 수 있는 저명하신 분들이었다. 그런데 그 자료를 내놓치 않으셨다. 대학원생인 나에게는 왜 제공을 해주셨는지 사실 잘 모른다. 신뢰 해주신 것 같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자료인지를 조금은 알기에, 그 자료에서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읽어낼수 있을지 힘든 과제였다. 신뢰를 해준 분에게 최대한의 노력으로 답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보이지않는 연구대상을 어떻게 그려내야하나 나한테는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결국은 ‘잠재 거주자’가 제주도 사람들이 20세기, 100년에 걸쳐 일본을 왕래한 성격을 결정지었다. ‘잠재 거주자’ 가 선명하게 제주도 사람들의 살아온 역사를 증명하는 키를 잡고 있었다.
거기에는 근대국가라는 경계가 그어지기 전부터 이동하며 살던 사람들의 이동권이 떠올랐고, 국가라는 경계와 사람들의 왕래로 형성된 생활권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도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사례로 인해 1999년에 80년대 후반에 일본에 와서 오버스테이를 하던 사람들을 ‘합법화’하기위한 운동을 전개할 때, 제주도사람들 사례가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그동안 일본정부가 ‘다데마에’로 2차대전 후 경제적인 이유로 출가한 사람들에게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주지않았다는걸 제주도 사람들이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받았다는게 ‘전례’가 되어 오버스테이들이 ‘합법화’를 따낼 수 있었다. 당시 그 건에 관해서는 국회질문까지 가서 그때 총리였던 가이후(海部) 총리명으로 회답을 받아냈다.
제주도 사람들의 삶이 또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삶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내가 한 연구가 제주도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도운 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건 연구자로서 꿈같은 일이다. 그러나 내가 연구한 제주도 사람들 케이스는 너무도 힘이 있어 여기저기서 세상을 바꾸는데 쓰였다.
사실, 관서지방, 특히 오사카는 일본 사람들끼리도 차별과 텃세가 유난히도 심한 곳이다. 거기에는 그 차별에 저항하려는 힘 또한 대단히 강한 곳이었다. 그런 활동에 자신의 인생을 거는 사람들도 있었다.
G선생님이 나한테 해주신 말씀이 있다.
나는 입관에 가서 제주도사람들에 관해서 알려면 네 책을 읽으라고 한다고 하셨다. 자신들이 못하는 부분을 해주었다고도 했다. 자랑스러워 하셨다.
G선생님의 신뢰에 조금이나마 보답할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선생님, 천국에 가서도 제주도사람들을 만나는건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