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제주도 사람들

밀항한 어머니와 아들

huiya(kohui) 2019. 10. 22. 20:49

2010/10/25 밀항한 어머니와 아들

 

오늘 아침에 돈이 없어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갔다

세상에 ATM  줄이 서있다그것도 은행 밖까지 나올 만큼 아주  줄 선 사람들을 보니 시간에 일을 안하는 사람들이다옷이나 구두도 남루하다. 오늘은 생활보호나 연금이 나오는 날인지도 모르겠다회사원들 월급날이기도 하다
평상시에 볼 수 없는 빈부격차가 일본답지않게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나는 거기에서 아주 이색적인 사람이 되고 말았다우선 밝은색 옷을 입은 사람이 없고짧은 소매옷을 입은 사람 또한 한 명도 없었다나는 발랄하게?도 청바지에 빨강색과 하늘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구두도 반짝반짝 빛나는 빨강 버킨스톡 샌들이었다이런너무 튄 것이다. 일본사람들은 단체로 비슷한 옷을 입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건가? 다음부터는 조심해야지,  25일날 아침에  은행에는 가지 말아야지

우선이토요카도에 가서 고구마  가지 다섯 빨간 고추를  다발 샀다. 다른 마트 가서 무우랑 어묵 등을 샀다오늘은 하겐다츠가 쌌지만  사기로 했다어제  컵들이를 사서 한꺼번에 해치워 나의 자제심이 한계를 알았기 때문에 사면  된다어쨌든 위험한 물건은 집에 들이면 안 된다. 그 다음 지역에서 하는 조그만 가게에 들렀다거기에는 장애시설에서 만드는것이나 유기농 채소개인이 내놓은 소품 등을 판다오늘은 운좋게도 수직 실크스카프와 예쁜 하얀 접시를 건졌다스카프는 내일이 생일인 친구에게 줘야지그리고 접시는 나의 예쁜 친구인 토토에게 줘야지


그리고 집에 와서  냄비에 국을 끓였다. 냉장고에 있는 야채들을 많이 넣었다며칠 동안 먹을 것이다올해는 야채나 과일 값이 너무 비싸다.

 

 

이쿠노 모모타니에 사는 밀항한 어머니와 아들 얘기를 하자.

 

수녀님에게 소식을 듣고연락해서 만나러 갔다. 올해 85건강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점심 때 만나서 가까운데서 점심을 먹었다점심을  주셨다. 그리고 나서 집에 가서 차를 마시고 있으니까가까이에 사신다는 우도 할머니가 오셨다. 올해 90세, 17세때 물질하러 일본에 와서 73지금까지 살았단다쓰시마(대마도)에서 오래 살며 물질을 했고 10년전까지도 물질하러 다녔단다지금도 물질을 하고 싶다고 하신다그러면서 자신이 살아오신 생애를 몇시간에 걸쳐 말씀을 하신다아직도 기운이 좋다몸이 아프다면서도나를 봐서 아주 신이 난것 같았다일본에 물질 올때 잘한다고 뽑혀서 왔다고쓰시마에서 물질하면서 해녀조합을 만들었고단결해서 해녀들이 이익을 위해서 싸웠다고도 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귀여워해줘서 남자들과도 싸워서 이겼다고남자로 났으면  인물이 되었을 거란다씩씩하게 살아오신 분이다나도 쓰시마에 관심이 있어 열심히 듣는다녹음을 못한게 아쉽다이런 자리는 만들려고 해서 만들어지는게 아닌데 모처럼의 기회가 아깝다.

밀항한 어머니는  반대로 아주 애교있고 귀여운 분이다 번째 결혼은, 2차대전으로 처녀는 정신대로 끌려간다고 상대를 정해서 급하게 시킨 것이었다물론 시대는 남자 얼굴도    보고 부모가 정하는 결혼을 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남편은 금방 후쿠오카(미이케?)탄광에 가고 말았다어머니는 친척과 함께 황해도에 일하러 갔다가 해방이 되어 남과 북이 분단된다는 바람에 돌아온다

남편도 일본에서 돌아와 같이 살기 시작했는데 4.3 사건이 터진다어머니와 남편은 살던 동네가 산촌이어서 둘 다 위원장과 간부가 된다사상이 뭔지도 모르고  하면 죽인다고 해서 살기위해서 했다고 한다남편이나 자기도 일본 글도 알고 그래도 동네에서는 깨우친 편이라 그렇게 되었다그러나 임신을 알고 해변가로 피신해 살았다남편은 산으로 올라갔다가결국 잡혀서 목포형무소에 있다가 6.25 때 이북에서 내려오기 전에 총살을 당해 죽는다.

  자신도 아들도 병에 걸려 의지 할데가 없이 지내다가둘이 같이 죽을 수 없어 아들을 남편집으로 보낸다그리고 전처가 일본에 밀항해 버린 사람과 재혼을 한다거기서 병든 시어머니 수발을 하면서 일년을 사니 남편은 일본으로 밀항해서 전처있는데로 가버렸다 번째 아들이 태어났다

시동생이 시어머니와 아들을 데리고 일본에 오라고해서 밀항으로 온다 사람씩이쿠노에 와도 남편은 전처와 동경에 살고 자신은 병든 시어머니 수발을 하며 일을 다녔다재혼해서 남편과 산 것은 일 년이지만, 시어머니 병수발을 하면  기간은 10년이었다

일본에서 의지할  없이 살아가는게 힘들어 다시 병이 든다누군가에 의지하고 싶어 다시 제주도 가까운 동네사람과 만나서 같이 살기 시작한다. 이사람은 의처증에다 폭력아들을 구박해서 도망다니는 삶을 살아야 했다. 세 번째 아들이 태어난 다음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다미장짜리 방에서 미싱을 하며 살아간다쌀을 100킬로 사다가  쌀이 떨어질 때까지는 살수 있겠구나 하며 살았다야채가게에서 버리는 무우청을 줏어다가 삶아 먹어도 맛있었다고 한다.

조금 안정이 되니 제주도에 남기고   아들을 불렀다물론밀항이다일본에 온지 15년만에 자수해서 외국인등록을 만들었다세 번째 아들이 학교에 들어갈 때였다

 어머니 케이스에서 제주도 사람들이 일본에 밀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알 수가 있제주도와 일본에 살고있던 가족들이 해방으로 인해 국경선이 그어지며이산가족이 되고 가족이 결합하기 위해 밀항이 택해지며밀항한 가족들은 결합을 위해 다시 밀항이 택해질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불안정한 신분으로 힘들게 살면서도열심히 일해서 자식들에게 집을 사줬다나이가 들어도 야간학교를 다니며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어머니는 그야말로 일본에 일가친척도 없이 자수성가를 하셨다

그래서 처음부터 모모타니였지만, 제주도말이 통하는 모모타니가 좋다모모타니를 떠나고 싶지 않단다결국제주도에서 나와  다른 제주도의 세계에서 살아왔고 살고 있는 것이다

젊었을  고생했지만아들들이 가까운데 살며 잘해준다며, 지금은 행복하다고 하신다

 어머니네 집에 갔을 때, 작은병에  커피가 있으면  달라고 물었다그랬더니  뒤져보고 없다고 한다. 집에 있는 과자들을 가져가라고  내놓으신다일주일 후에동경에 돌아온 다음에 전화가 왔다. 작은병 커피가 있으니 가지러 오라고. 이건 분명히 마트 가서 산거다그리고 나한테 전화를 했다일세들을 만나러 다니면, 섣불리 말을 하면 안 된다. 작은 것도  기억했다가 일일이 챙겨둔다그리고 자신들이 아쉬어도 하나라도 챙겨주려고 한다. 제주도 인정이 아직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