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본 재일동포 아이들
2012/10/26 오랜만에 재일동포 아이들
오늘 동경 날씨는 좋았다.
요 며칠 사이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드, 드디어 가을이 본격적으로… 올여름이 너무나 길고 더웠다. 그러나, 아직도 교실 안은 더워서 냉방을 켠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전철을 탔더니, 난방이 들어있다. 아니 이 사람들이 미쳤나, ‘절전’하느라고 조명도 어둡게 하면서, 아니 벌써, 아직 춥지도 않은 데, 난방을 넣다니… 더워서 헉헉거린다. 제정신이 아니야, 아무래도 사람들이 다 미쳐가나 봐. 햇볕이 바른 방은 그것만으로도 더워서 헉헉거린다. 그런데 햇볕이 안 드는 쪽은 추운 느낌이다. 그래도 춥지는 않다.
올해 들어서 출퇴근 때 만나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없어졌다.
정년퇴직, 남편이 전근으로 미국으로 귀국, 전철에서 만나서 수다를 떨었는데 못 보니 출퇴근 길이 재미가 없다. 가끔 목요일에 있던 연구회도 뜸하니 더욱 그렇다. 물론, 강의는 바쁘다, 새로운 과목이 있어서 수업 준비로 여유가 없다. 그래도 가끔은 사심없이 수다를 떨었던 사람들이 그립다.
목요일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나던 재일동포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요즘, 후쿠시마 지진 이후 대학에서 외국인 선생들이나 유학생들도 숨을 죽이고 지낸다. 특히 중국아이들은 눈에 띄지 않게 주의해서 행동한다. 일본어를 잘 못해도 중국어를 자제해서 안 쓴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세태이다. 세상이 어떻든 대학 내는 치외법권으로 가장 자유롭다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무서운 곳이 되었다. 대학까지 이렇게 숨통이 막히면, 도대체 어디서 숨을 쉰다는 말인가. 일본인들은 일본에서 외국인을 배척하는 데모가 없다지만, 걱정 마시라. 일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외국인들을 배척하고 압력을 가하는 게 보통인 일상이니까. 그 들은 결코 그 걸 모른다. 데모는 알기 쉽기라도 하지…
내가 사는 단지에는 가까운 대학에서 일하는 3년 계약 원어민 영어 선생님들이 많이 산다. 대학에서 집을 얻어준 것이다. 작년, 지진 이후 이 사람들 행동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 전에는 별 긴장감 없이 평화롭게 살았다. 가끔은 밤늦게 회식을 마치고 와서 주차장에서 수다를 떠는 일도 있었다. 휴일에는 밖에서 아는 사람을 부르는 목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작년 봄 이후는 선생들이 주위를 경계하는 듯이 두리번거리는 행동을 한다. 긴장해서 몸을 움츠리고 있다. 한 번은 옆집 선생을 불렀더니, 아주 깜짝 놀라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세상에 무슨 간첩들 접선도 아니고, 인사도 못하나, 무엇이 이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경계하게 만들었나… 그냥, 약간 과민한 반응이라고 봤다. 그 후로도 조용히 없는 것처럼, 숨을 죽이고 살아가고 있다. 죄진 것도 없는데… 그냥 편하게 인사를 하는 사람은 중국계 뉴질랜드에서 온 선생뿐이다. 서양사람들은 몸을 작게 움츠리고 있다.
올해 여름방학이 끝나서 대학에 갔더니, 공기 흐름이 묘하다. 왠지 나도 눈총을 받는다. 짜증이 났다. 뭐야, 뭐, 할 말이 있으면 해, 라는 심정으로 째려봤다. 직접적인 말은 없다. 내가 기가 보통 센게 아니다. 그냥 나둬도 사납다. 건드리면 안 된다. 그런데, 중국 선생이 가져온 과자가 몇 종류 있다. 아마, 중국선생이 놔둔 거다. 선생들은 안 보인다. 수업 전에 카피를 뜰 때 보일 만도 한데… 지난주 처음으로 평소에 인사를 하는 중국 선생을 봤다. 내가 먼저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 선생이 긴장 했다가, 맥이 풀린 것처럼 웃는다. 벌써, 공기를 파악한 것이다. 이 사람이 외국인, 한국사람이었지… 내가 복사기 속도가 느리고, 스테이플러 기능이 없는 걸 불평하면서, 회의에서 건의하라고 압력을 넣는다. 나와 둘 만이라 그냥 보통 때처럼 수다를 떨었다. 자신이 항상 일하는 대학 내에서 이렇게 살얼음 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해야 하다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세상이 되었다. 내가 인사를 했던 그는 아주 인기가 있는 사람이다. 제미 학생들 취직도 제일 좋다. 그래서 학생들도 거기에 가고 싶어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생이, 선생이 아니다. 일본 사회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조선학교에 다니는 재일동포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도 되고 무척 궁금했다.
지난주에 문자를 보내서 만나려고 했는데, 못 봤다. 오늘은 아침에 문자를 넣고 오후에 돌아올 때 조금 일찍 역에 가서 전화를 했다. 내가 기다리니까, 얼굴을 보자고. 20분 정도 기다리니 아이가 왔다. 키가 훌쩍 컸다. 전에는 약간 통통한 편이었는데, 키가 커져서 살이 빠진 것처럼 보인다. 초등학교 5학년인데 이에도 교정틀이 끼워져 있다. 남동생도 왔다. 남동생도 키가 크고 멋있어졌다. 그 전에는 ‘우리말’도 섞어서 말을 했는데, 오랜만에 봐서 반갑게 떠들면서도 일본어로 만 대화를 한다. 주위에서 들어도 재일동포이거나, 한국사람이라는 걸 모르게… 어릴 때부터 그렇게 주위를 신경 쓰면서 마이 노리티로 살아야 한다는 게,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걸 안다. 내가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했더니, 여자아이가 자기는 바쁘다며, 남동생은 시간이 있단다. 내가 남자아이랑 할 말이 없잖아, 동생이 거북하지, 그랬더니 남동생이 거북해져 가는 얼굴이 된다. 귀엽다. 남동생 만이라도 놀러 오라고 할 걸 그랬나?
재일동포들이 이렇게 힘들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것은, 어느 국가에 ‘충성’ 하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들에게 소중한 것이기에 힘들게, 조심스럽게, 씩씩하게 지켜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