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자해지, 結者解之
2016/10/31 결자해지, 結者解之
오늘 동경은 대체로 맑았지만, 그다지 따뜻하지 않은 날씨였다. 그래도 어제보다 춥지 않아 산책하기에 적당한 날씨였다.
월요일은 도서관에 가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과일과 두유로 아침을 챙겨서 먹고 도서관으로 간다. 가는 길에 있는 공원에서 아저씨들이 모여서 게이트볼을 하고 있어서 아저씨들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아 한적한 길로 돌아서 갔다. 가까운 농가 마당에 내놓은 것은 감자와 아주 매운 피망뿐이라, 사지 않고 그냥 또 걸었다. 강을 건너서 큰 길이 나와서 편의점 앞 신호를 건너는 곳에 경찰이 서있다. 맞은 편에도 서있다. 내가 모르는 사건이라도 있었나 싶어서, 왜 서있냐고 물었다. 학생들 자전거 도둑맞는 게 많아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을 심문하고 있다네. 훔쳐가는 것이 자전거뿐이겠어? 자전거를 훔쳐가는 좀도둑이야 경찰이 잡겠지만, 경찰은 더 큰 도둑을 지키고 있기도 하다.
도서관까지 빨리 걸었더니 땀이 막 나서 뚝뚝 흘리고 있다. 도서관에 들어가서 지난주 월요일에 ‘사건’이 있던지라, 2층 카운터에 갔다. 입구가 2층이다. 담당자에게 책이 펴졌나고 물었다. 지난 주에 책이 펴지지 않으면 변제하라고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전화가 오지 않았지만, 도서관에 오는 날이라 확인차 들렀다고 했다. 직원이 이번에는 변제하는 일이 없지만,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주의해달라고 한다. 이건 정해진 말이다. 앞으로 주의하라고 압력을 넣는 말이기도 하다. 내 입장도 밝힐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이 도서관을 30년 쓰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일도 일이지만, 내가 창피스러운 것이 더 컸다.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마쳤다. 입구에 지난 주 사건을 크게 만든 남자 직원이 앉아있다. 거기에 가서 경위보고와 인사를 한다. 속으로는 괜히 일을 크게 만든 것에 대해 화가 났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어른인지라, 사건은 깨끗이 마무리해야 편하기에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이만 먹었지, 마음에도 없으면서 빈말을 하거나, 듣기 좋으라고 입에 발린 말을 하는 ‘삶의 기술’을 터득하지 못했다. 나이를 헛먹은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전혀 마음에도 없으면서 인사를 하고 느낀 것은 그런 일을 하면 기억에도 남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했다는 것은 기억하겠지만, 내가 인사를 한 말은 전혀 기억이 없다. 그냥, 적당히 한 말이니까……어쨌든 내가 저지른 ‘사건’이니, 내가 매듭을 지어야 한다. 결자해지라고 한다네. 사자성어를 쓰는 걸 싫어한다. 사자성어를 쓰면 괜히 유식해 보이는 것 같고 진부하기도 하다. 요새는 그냥, 재미있어서 쓰는 것뿐이다.
지난 주에 책을 빌려온 것이 없어서 심심했다. 다른 읽은 책은 많고 많지만, 새 책을 읽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신진대사처럼 책도 정기적으로 제대로 순환을 시키지 않으면, 뭔가 굶주려서 허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굶주림’은 나쁘다. 나중에 ‘폭식’을 하는 식이 되기 때문에 귀찮아진다. 밥을 제때에 먹는 것처럼 책도 공급이 원활히 이루어져야 편하다. 오늘은 읽은 만한 책이 적은 날이긴 했지만, 나름 수확이 있었다. 한국뉴스가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일찍 나왔다. 나오는 길 카운터에는 평소에 잡담을 하는 직원이 있어서 인사를 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볼 일이 있어서 못 와요. 미리 말을 했다. 월요일에는 새 책을 보러 가는 사람이라, 직원들이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내가 뭘 하기만 하면 삽시간에 도서관 안팎으로 소문이 쫙 퍼진다. 여러모로 주목받는 인물인 모양이다. 요주의 인물인가?
집에 돌아와서 컴퓨터를 켜고 한국뉴스를 본다. 뭔가 새로운 전개가 없나? 최순실이 ‘죽을 죄를 졌다고 용서해달라’고 했다네. 그리고 ‘울었다’고, 신발도 한 짝 벗겨졌다고……. 최순실은 ‘불쌍하게 보이는 걸’로 콘셉트를 잡은 모양이다. 동정심을 유발해서 모면해 볼 요량인가? 역시, 감이 최고다. 뭐니 뭐니 해도 여자에게는 '눈물'과 '불쌍한 컨셉'이 가장 잘 먹히거든. 고전적이지만, 역대급이다. 아무나 주연을 하는 게 아니다. 연기력 또한 수준급, 패션센스도 괜찮다. 나도 물방울 무늬 스카프 꺼냈다....... 무엇보다도 머리가 참 좋다. 한국사람들이 인정이 많아 ‘불쌍하게 보이는 것’에 약하거든. ‘불쌍하다’고 대통령도 시켜줬는데……진짜로 '불쌍한' 건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지만, '불쌍한' 사람은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속았으면 충분하다. 더 이상 ‘불쌍한 컨셉’에 속으면 안 된다. ‘불쌍한' 척하면서 사람 잡아먹는 사람 많이 봤다. 그 들의 특징은 사람의 ‘측은지심’을 이용해 다른 사람을 지배하며 그런 걸 영양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이상한 악질이다.
개인적으로 ‘흡혈귀 스타일’이라고 분류한다. 학생들을 괴롭히는 맛으로 사는 교수를 보면 학생에게 빨대를 꽂아 생피를 마시는 것처럼 보인다. 성희롱, 성폭행, 이지메도 다 비슷한 스타일이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며 지배하는 맛이 삶의 원동력이 되는 부류가 있다. 다 권력을 등에 업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드라마의 전개상, 정유라가 필요하다. 정유라는 정말로 중요한 장면에 나오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건가? 보고싶다 정유라가 나오는 장면을!
용서하면 안 된다. 눈물이고 콧물이고 소용없다. 자기가 벌린 일은 자신이 책임지고 마무리를 하면 된다. 지금까지 수완을 보면 대단하다, 우주까지 동원을 하던데……. 결자해지, 結者解之
사진은 도서관에 갔을 때 축제 준비를 하느라, 높은 크레인차가 있었다. 주변에서 가장 단풍이 든 느티나무 두 구루에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