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제주도 사람 2세 생활사 해설
2010/11/13 어느 재일 제주도 사람 2세의 생활사에 관한 해설
요즘 동경 날씨가 좋다.
내가 사는 주변도 단풍이 들기 시작해 좋은 계절이다.
여기에 살기 시작한 건 2년 전인데, 집을 보러 왔을 때도 단풍이 들 무렵이었다.
마치 숲 속에 사는 것처럼 주위 환경이 아주 좋은 곳이다.
오늘 오후 창문에서 보이는 단풍을 소개합니다.
생활사에 관한 해설을 쓸까 말까, 망설였다.
재일동포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을 쓴다.
이 생활사는 2002년에 수록한 것으로 일본어로 문장화해서 본인한테 넘겨줬다. 본격적인 생활사라기보다 간단히 본인의 말을 메모해서 문장화한 것이다. 그 자리에는 부인이 동석했다. 그런데, 그의 생활사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었다.
블로그에 올릴 ‘고향’에 관한 원고를 찾는데 도대체 나오지 않아 이걸 발견하고 한국어로 번역해서 올린 것이다.
한국어로 번역하고 나서 그가 생활사를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알았다. 그는 자신이 학력이 없다고 한 것처럼, 지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장식하지 않는다. 소박한 말이지만, 힘이 있다. 그가 진정으로 부딪치며 살아왔고, 많은 활동을 했기에. 그는 열심히 살았고, 진실로 고향을 사랑했고 그 사랑을 실천해 왔다. 그런 사람들의 진실된 말과 행동은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은 많이 있다.
그의 생활사는 전형적인 재일동포 2세 생활사의 유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출생지가 제주도 사람 커뮤니티이다. 그건, 제주도는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제주도 사람에 둘러싸여 자랐다는 걸 의미한다. 그다음에 살던 곳도 동경에 시타마치로 제주도 사람 커뮤니티인 미카와시마에서 가까울 뿐만 아니라, 주변은 아니어도 재일동포/제주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가업이 폐품수집 고철상이었다는 것도 재일동포나 제주도 사람들이 하던 일 중 하나이다.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을 수 없으나, 일본인과 경쟁이 적고 현금장사를 독립적으로 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생활은 당시 제주도 시골에서 살던 보통사람들과 별반 다름이 없다. 부모는 장남에게도 공부를 시킬 경제적 정신적 여유가 없어서 집일을 도와야 했다.
학교는 초등교육을 조선학교에 다녔다. 중학교는 일본학교. 여기에는 대부분이 재일동포들이 그런 것처럼 특별히 사상적인 동기가 없이 그저 조선사람이니까 조선학교를 가는 게 당연했고 중학교는 이사를 해서 학교가 멀어져 가까운 일본학교에 간 거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일본 사람들과 구체적인 관계를 갖게 되는 건 중학교에 들어간 후이다. 축구팀을 만든 선생님과 바닷가 집으로 불러준 친구가 있다.
자신이 조선인이면서도 조선인이라는 걸 확실히 느끼게 되는 것도 일본인과의 구체적인 관계가 맺어지면서였고, 또 한 일본 사회의 차별을 통해서였다. 다감한 소년이었던 그는 고등학교에 입학차별을 당하고 좌절해서 불량소년이 된다. 그 과정에서 일본 사회에서 조선인인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결혼은 제주도 사람 2세와 중매로 만났다. 그 당시에는 재일동포들도 제주도 사람은 제주도 사람끼리 결혼했다. 그리고 일도 처가에서 하던 일을 인수해서 하게 된다. 그 후 일본이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본인이 노력 등으로 경제적으로 일찍이 자리를 잡는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서, 자신의 세계를 넓혀간다. 한국 술집에서 재일동포 아이덴티티를 확인하는 활동(?)과 더불어 재일동포 단체에 관여하기 시작한다. 둘 다 자신이 원한 것이며, 자신의 (정신적)이익을 추구한 행위였다.
그러면서, 자신을 성장시켜간다. 즉, 일본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안정된 재일동포들이 할 수 있는 사회활동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과 ‘고향’과도 구체적인 관계를 가지기 시작한다. 결국은 제주도 사람 단체에서 회장을 마지막으로 그의 공적인 사회활동은 마친다. 그는 사회적으로 보면 출세할 수 있는데 까지 출세를 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결국 일본에 있는 ‘‘제주도 사람들 세계’가 '세계'였고 거기서 태어나 살아왔다.
그는 30세를 전후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조국(?)과 ‘고향’ 지향으로 바꿨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자신의 사업을 하면서 많은 돈과 시간을 쓰며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국을 위한 일, 재일동포를 위한 일, 제주도 사람을 위한 일, 사할린 동포와 조선족등 많은 일과 많은 사람들을 돌봐왔다.
노후는 그가 예언했던 대로 바닷가 집에서 마음의 고향을 그리며 돌하르방과 같이 살고 있다.
그의 ‘고향’은 제주도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고향이 아니다.
그가 한국 국적이면서,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한 조선인이면서 제주도 사람인 것처럼.
그가 나고 자란 실질적인 고향보다 마음의 고향인 제주도가 더 아름답고 힘이 있다.
그에게 있어서 ‘고향’은 종교이기에 ‘고향’을 향한 마음과 실천은 신앙이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짝사랑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고향’은 성지이기도 하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신앙을 돈독하게 하는 활동도 열심히 했다.
그 마음에 있는 ‘고향’과 '조국’,‘민족’은 종교이며 성역이다. 그의 프라이드처럼.
그러나, 결코, 현실적인 제주도나 한국이라는 나라, 국가체제, 사상이 아니다.
그러니까, 피멍이진 가슴에서 우러나온 슬프도록 아름다운, 아픈 ’사랑’ 이야기인 것이다.
‘고향’이라는 ‘조국’과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구속한다.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고향 일본에서 차별당하는 현실에 저항하기 위해,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향'이라는 종교가 필요했다.
그러나 ‘고향’은 돌아갈 곳이 아니다.
‘고향’에는 추억도 친구도 생활도 없다.
어디까지나 마음의/ 이상적인 '고향'일 뿐이다.
제주도 사람들이 바다를 통해서 ‘고향’, 이상향 이어도를 그리는 것처럼.
아, 참, 일본에서 당한 차별을 고발하는 것은 자신이 조선인으로서 부당함에 저항하는 적극적인 행동임과 동시에 자신의 실질적인 고향 일본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숙제를 마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