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회

폭풍 잔소리

huiya(kohui) 2019. 11. 26. 00:41

2015/11/22 폭풍 잔소리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흐린 날씨였다. 그래서 그런지 저녁이 되어 갑자기 추워졌다. 어제는 최고기온이 21도나 되는 따뜻한 날씨였다. 요새는 날씨가 들쑥날쑥 해서 헷갈린다.

어제는 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와 같이 산에 갈 예정이었다. 출발하기로 한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온 친구가 피곤하다고 산에 가는 걸 미루자고 한다. 그러면서 산에 갈 채비를 하고 온 것이다. 나도 준비를 마쳤으니까, 가까운 다카하타후도에 다녀오자고 나갔다. 다카하타후도에 갔더니 단풍이 들기 시작한 단계로 단풍이 예쁜 시기가 오려면 이주일 정도 걸릴 것 같다. 그래도 산중에 모신 불상을 번호순에 따라 참배를 하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많았다. 그리고 단풍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거나 가벼운 복장으로 걷고 있었다

볕바른 양지에 자리를 잡고 둘이서 준비한 점심을 먹고 아직 겨우 물들기 시작한 단풍을 감상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찰리티 숍에 들러서 친구에게 잘 어울릴 재킷과 큰 숄을 찾아줬다. 나도 신발과 원피스에 털실을 좀 샀다. 가까이에 중국에서 온 사람이 하는 가게는 문을 닫고 있어서 그 사람은 만날 수가 없었다. 단풍이 예쁠 무렵에 다시 가야지.

네팔아이가 네팔에 가서 한 달을 지내고 왔다. 네팔아이가 저녁에 온다고 해서 집에 남았던 쌀을 탈탈 털어서 씻고 불렸다. 그 사이에 아주 드물게 멋있게 하늘 전체에 깔려있던 양떼구름을 보러 나갔다. 일몰시간이라 양떼구름이 석양을 받아서 장관을 이룬 걸 봤다. 다른 각도로 보고 싶어서 걸어갔더니 좀 전에 있었던 멋있는 무대처럼 보였던 풍경은 벌써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혼자서 좋은 구경을 해서 신나는 발걸음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밥솥에 스위치를 넣고 저녁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네팔아이는 6시에 역에 도착한다고 하더니 5시 반이 넘어 집에 왔다. 지금까지 몇 년이나 알고 지냈지만, 약속시간에 늦으면 늦었지 일찍 오는 일은 없었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구나… 그런데, 네팔 아이가 말하는 목소리가 작다. 내가 갑자기 귀가 멀어진 것도 아닐 텐데, 뭔가 이상하다. 뭔가 사정이 있다. 우선은 저녁을 먹을 시간이니까, 밥과 반찬을 해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반찬은 오징어와 부록코리를 볶은 것과 생표고버섯과 양파를 넣고 볶았다. 미역국과 김도 같이 먹었다. 둘이 배불리 맛있게 먹었다. 디저트는 서양배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네팔에 다녀온 말을 들었다. 가족들이 건강히 잘 있다는 것과 지진으로 집이 많이 상했지만, 집에 살고 있단다. 인도와 관계가 나빠져서 무역이 중단된 상태라서 큰 일이라고, 가솔린이 없어서 교통도 불편하단다. 그래서 여행도 못 갔단다. 그런데, 이번에 가서 작은 땅이라도 살 예정이었던 50만 엔을 다 쓰고 왔단다. 가족과 친척들을 위해서 쓰고 왔단다. 기가 막혔다. 어떻게 모은 돈인데… 한꺼번에 쓰게 하느냐고? 가만히 말을 들으니 아버지가 쓰게 한 것이었다. 거기에 부모가 자신들 노후를 책임지라고 했단다. 나도 양친을 알고 있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아직, 자신의 앞길도 어떻게 헤쳐가야 할지 모르는 나이다. 50만 엔이면 결혼식을 하고도 남을 돈이라는데.

어제는 내가 이 말을 하면 저말을 하고, 저말을 하면 이말을 했다. 청개구리도 아니고 뭐야. 취직을 하라고 했더니, 미국으로 유학을 간단다. 미국으로 유학가면 되겠네, 아니 일본에서 대학원을 하겠다고. 그러면 준비를 해야지, 아니야, 호주가 좋아, 호주로 간다고… 시끄러워, 내년에도 일본에 있으면 결혼해. 저는 모르는 사람과 결혼하기 싫어요. 말을 들어보니, 네팔에 가기 전날 내정되었다던 회사에서 연락이 없단다. 별로 가고 싶지도 않은 회사였지만… 거기에다 전기 학비를 미납해서 학교에 가면 돈을 내라고 시끄럽단다. 지도교수는 알바를 찾아서 소개한단다. 지난번에 비싼 컴퓨터를 샀다. 거기에 10만 엔 가까운 카메라도 샀단다. 취미생활을 하고 싶어서… 그러나 취미생활을 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나도 비싼 컴퓨터를 사지 않으며, 카메라도 사지 않는다. 사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학비가 미납이어서 제적될 상황에 있는데, 아르바이트해서 비싼 컴퓨터 사고 카메라를 살 상황은 아니지 않나

지도교수가 싱가포르 호텔에서 일하는 일자리를 소개한다기에 그걸 잡으라고 했다. 메일을 쓰면서 묻는다, 어떻게 말을 하는 것이냐고? 중요한 내용이니까, 메일을 직접 쓰지 말고 우선 종이에 쓰라고 했다. 종이에 쓴 메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일본어가 대학교 들어갈 때 수준에서 전혀 늘지 않았다. OMG! 이런 일본어 실력으로는 취직을 못한다. 이력서를 가져오라고 했더니 이력서를 보여준다. 이력서도 엉망이다. 이력서를 쓰는 양식에 쓰는 방법이 자세히 나와있다. 그것도 보질 않았다는 것이다. 거기에 쓴 내용을 지도교수나 취직을 도와주는 부서에 가서 정정을 해달라고 부탁하라고 시켰는데 그 것도 안 했다. 그런 이력서로는 그야말로 절대로 취직이 안된다

네팔 아이 일본어는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은 좀 늘었다. 지난번에 일본어에 좀 신경 쓰라고 폭풍 잔소리를 했더니 좀 주의를 한다. 그러나, 책도 전혀 안 읽고, 강의도 잘 안 듣고 뭔가 노력한 흔적이 없다. 눈치가 많이 늘었지만, 눈치로 취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위해서 누군가 뭘 해줄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한다. 난 그걸 무척 싫어한다. 지금에 와서는 이력서를 손볼 이유도 없어졌다

석사는 미국으로 가고 싶다고 해서 일 년 전부터 준비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 유학에 필요한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네팔에서 일본에 돌아오기가 싫었단다. 일본에서 사는 것이 싫은 것이다. 그렇다고 네팔에 돌아가도 할 일도 없지만, 돌아갈 생각도 없다. 그렇다면 뭔가를 해야 한다. 나도 나름 걱정해서 일본에서 괜찮은 대학원에 가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을 해뒀다. 근데, 본인은 내키지도 않고 아무런 준비도 없다. 내가 앞서 준비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지도교수가 계약직이라도 일을 하겠냐고 한단다. 나는 기가 막혀서 졸업할 때 정규직으로 시작해도 어려운데, 계약직으로 시작하면 앞 날이 없다. 계약직은 언제라도 일할 수 있거든

오늘은 다시 새로운 이슈가 나왔다. 졸업식에 맞춰서 부모님이 일본에 오고 싶어 한다고 초대하고 싶단다. 그래, 너희 아버님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까, 가능하면 해드려야지. 열심히 일해. 그러나 생각하니 기가 막히다. 여기서 어린 아들이 혼자서 뼈골 빠지게 일해서 먹을 것, 입을 것을 아끼며 대학에 다니고 돈을 만들고 있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아까, 주유소에서 하는 알바가 일당 만엔이라니까, 지금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도 얼마냐? 120만엔? 방세와 생활비는 공기만 먹는다고 치고. 학비가 100만엔에 부모님을 초대해서 일본 여행도 시켜드리려면, 한 사람당 50만엔이니까50만엔이니까, 3월까지 필요한 돈이 최저 200만엔이다. 열심히 해봐.

근데, 잊지마, 넌 이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사니까, 열심히 생각해야 돼, 아무것도 못하고 올데 갈 데도 없는 경우가 생겨. 가장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서 일을 진행하라니까. 지금까지 내가 시켜봤지만, 참 말을 안 듣더라, 더 이상 내가 해줄 것이 없다. 그렇게 시키고 책도 주면서 공부하라고 했는데, 공부를 안 했다면 공부하기 싫은 거야. 다른 나라에 간다고 공부를 하겠어? 공부하지 않고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도 내가 보니까, 주위에서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어떻게 되겠지. 내가 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까, 알아서 해. 아무런 해결책도 강구하질 못했다. 내가 보기에는 하기가 싫은 것이다. 일본에 있기도 싫고, 다른 나라에 가서 시작하기도 엄두가 안 난다. 

오후에 산책을 나가서 아름답게 단풍이 들기 시작한 주변을 두 시간에 걸쳐 산책을 하고 돌아갔다. 아주 낙천적인 것이 좋은 점인 것 같다. 대책이 없다. 요즘 아이들에게 흔히 보이는 유형이지만, 장래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창밖의 느티나무가 가을 햇살을 받는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