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
2010/12/13 크리스마스 선물!
오늘 아침 동경 날씨는 흐리다.
비가 올 것 같다.
창밖을 보니 걷는 사람들이 우산을 쓴 사람들도 있다. 오전중에 볼일을 마치고 산책도 마치는 게 좋을 것 같다. 저녁에 크리스마스 일루미네이션을 보고 사진을 찍기로 한 약속은 취소해야 할 것 같다.
지난 주는 대학원 후배들을 만났다.
거의 하루에 한 명씩 만나기로 했는데 그중에는 급한 약속이 들어와 취소한 것도 있고 아파서 취소한 것도 있다. 결국, 세 명을 만났다.
월요일에 만난 후배는 아동양호시설에서 11년 일했다. 그리고 연말에 거기를 그만두고 다른 시설로 전직을 한다. 이 친구가 대학원생 때, 내가 강사였을 때 내 강의를 다 따라다니면서 듣던 친구였다. 학부 학생들과 같이 한국에도 갔다. 그리고 나한테 바친다고 했다는 엄청 두꺼운 논문을 쓰고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자신이 석사과정 때 필드를 했던 어린이집에서 일하려고 자격도 땄고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다는 아동 양호시설에서 일한다. 그 때문에 그동안 사귀던 여자 친구와도 헤어졌다.
선배, 여자 친구는 제가 대기업에 들어가서 안정된 생활을 할 줄 알았나 봐요. 근데 제가 아동 양호시설에서 일하겠다니까, 자신의 장래 설계와 다르다고 헤어지잡니다.
아마 그게 세상의 상식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 괜찮다는 대학에 들어가는 거고 너는 대학원도 나왔잖아. 여자 친구가 원하는 게 보통 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길이야.
사실 나도 거기서 일하지 말았으면 해, 그야말로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일했으면 해. 내가 본 일본 사회는 이중적이라, 말로는 칭찬하면서도 대우도 제대로 안 하는 데. 나도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네가 인간적으로 소모되고 소진되는 게 싫다.
그런 말을 들을 후배가 아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게 정해진 상태였으니까.
그 후 후배는 일하기 시작했고 나도 동경을 떠나 있어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가끔 생각이 나는 후배였다.
다시 연락이 시작된 건 우연히도 내가 다시 동경에 돌아온 날이었다. 그야말로 우연히 메일이 왔다. 내가 OO군(일본에서는 후배에게 붙이는 호칭)이 있는 동경에 돌아왔구나라고 실감했다. 그리고 다시 만나기 시작한 건 작년인가 재작년 겨울이었나 싶다. 한국에 같이 갔을 때 내가 입었던 마 쟈켓과 바지를 한국원산으로 알고 갖고 싶어 했다(일본 DC브랜드였는데). 그 날은 그걸 가져다주었다. 10년 만이었던 것 같다. 겨울인데도 마 쟈켓을 입고 어린아이처럼 들떠있는 후배를 보았다.
저의 집 한 달 외식비가 5,000엔 인데요, 이번 달은 안 썼으니까 제가 식사를 대접할게요.
일본 샐러리맨 생활이 각박하다. 5,000엔이면 큰돈이다. 그 돈을 나를 위해서 쓴단다. 당황스럽고, 눈물이 날 것 같다.
서로가 십 년 만에 만나서 변한 게 없다고, 주름은 늘었다며 깔깔댄다.
근데, 안 변했다는 건, 문제가 아니니? 인간이 성숙해져야 되는 게 아닐까?
십 년 동안 연락도 없이 지냈는데,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그는 그동안 같은 직장에서 일하던 사람과 결혼해 아이가 둘이 란다. 집도 자신들이 원하는 집을 지어서 잘 산다. 지난번 만났을 때 커피를 뽑는 기계를 샀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가지고 있던 커피잔 중에서 하나 선물을 했다. 그리고 내가 식사를 사줬다. 전직 기념이다. 나한테 쓸 돈으로 마누라가 좋아할 걸 사가라고 했다.
이번에 만날 때는 집에서 커피를 뽑아 보온병에 넣고, 간식도 챙겨서 들고 왔다. 그래서 신주쿠교엔 앞에 햇볕 드는 길가에 앉아서 수다를 떨었다.
다섯 시 되기 전에 전차를 타야 돼, 다섯 시 넘으면 전차가 붐비잖아,
서둘러서 한국 슈퍼에 들렀다. 김치가 싸다. 그 친구는 마누라가 좋아한다는 창난젓과 김치를 무려 10킬로나 샀다. 그리고 낑낑거리며 들고 갔다. 아침 11시부터 만나서 쉴 새 없이 줄곧 떠들었으니 잘 놀았다.
수요일에 만난 후배는 내가 박사논문을 쓸 때 아르바이트로 내 논문 자료 정리를 했던 친구다. 보통은 같은 학과나 비슷한 학과에서 대학원 진학을 하는데 이 친구는 전혀 다른 학부에서 진학했고 육상을 하는 친구였다. 문학부에는 이런 사람이 드물다. 그 친구는 논문 자료정리를 하면서 나한테 야단을 많이 들었다. 그 후 그 친구는 유명한 선생 제자가 되었고, 그리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 주위 소문에 선배나 동료 알기를 우습게 아는 시건방진 친구가 됐다고 들었다. 나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오랜만에 옛 자리에 돌아와 만났더니, 그 친구 몸짓은 “이 공포의 선배를 다시 만났구나”라는 것 같은데, 얼굴은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른다. 한 몸에서 상반된 감정이 표출이 된다. 재미있다.
대학원 연구실에 내가 차지했던 명당자리를 물려줬더니, 자기 남자 친구한테 넘겨줬던 여자 후배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둘 다 술고래였다. 실은 학교 외에서 개인적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때 우리 집에 와서 보고 이 후배가 “선배 제 옷도 좀 짜주세요“ 그러는 게 아닌가.
실은 친하지 않은 사람 옷은 안 짠다, 더욱이 남자 옷은, “시간이 없어”라고 거절했다. 요즘 들어 한국 드라마를 본다, 그래서 시간이 생겼다. 뭐가 좋겠냐고 했더니 베스트가 좋다고 한다. 집에 있는 실로 짰다. 학생들 한테 친근감과 포근함을 주는 선생으로 보이길 원하면서 적어도 십 년은 입을 테니까, 십 년 뒤에도 학생들 한테 귀엽게 보이길 바란다. 그래서 핑크색과 뒷모습이 포인트다.
핑크색이 좋다고 아주 좋아했다.
이 건 울세탁으로 빨면 줄어들어 소핑을 안 했거든, 그래서 지금은 좀 커도 줄어드는 거야.
그 친구가 준 쵸코렛이다. 고디바라는 벨기에 쵸코렛은 일본에서 80년대 후반에 정착을 했다. 조금 비싼 초콜릿으로.
오늘 중에 크리스마스 선물도 보내야지, 지방에 사는 졸업생에게 보낼 선물이다. 얼굴과는 달리 아주 깔끔한 친구다. 취향도 사이즈도 잘 알고 있다. 이 친구와는 물심양면으로 서로 많은 교환을 한다. 이사를 자주 다니는 내 이삿짐을 싸주는 친구이다.
나는 이 친구가 장래 정치가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 친구 아버지는 우익이었다. 이 친구도 우익적인 성향이 있다. 나는 우익이든 좌익이든 좋은 정치가가 되길 바라며, 물론 연설문은 내가 쓰고, 정신적 지원을 한다. 이 친구는 나를 무서워해준다. 그리고 나와 팀을 이루면 웬만한 건 할 수 있다는 걸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