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일루미네이션 1
2013/12/23 동네 일루미네이션 1
지난 토요일 오전에 올리브님을 만나러 시내에 다녀왔다. 아침에 피곤한 상태로 나가서 피곤한 채로 집에 돌아왔다. 아직 시간이 넉넉히 남은 것 같아서 도서관에 갔다. 읽은 책을 반납하고 다른 책을 빌렸다. 책을 빌리기보다 걷고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네팔 아이가 온다고 했다. 크리스마스라고 오는 모양인 데, 피곤해서 음식을 전혀 준비하지 못했다. 음식할 재료는 있으니까,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 나의 피곤을 푸는 게 우선이다. 빠른 걸음으로 도서관에 다녀왔더니 피곤이 많이 풀렸다. 피곤한 상태에서 손님이 오면 전혀 반갑게 맞을 수가 없다. 그래도 신경써서 멀리까지 차비를 들이고 시간을 써서 오는 데, 반갑게 대해 줘야지. 먹을 걸 많이 먹여야지.
역까지 마중나가서 같이 동네 일루미네이션을 보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집에 도착했더니 역에 도착하는 시간이 문자로 왔다. 시간이 없다. 규슈에서 보내온 쌀로 밥을 전기밥솥에 세팅을 하고 나갔다.
역에 도착한 네팔 아이를 보니 가관이다. 확 늙었다. 후줄근하게 피곤에 쩔어서 노숙자 포스가 흐른다. 기가 막혀, 나름 깔끔을 떨고 멋을 부린다는 녀석이 왜 요렇게 변신을 했는지 모르겠다. 감기에 걸렸단다. 단지 감기가 아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결핍된 것이 많은 상태다. 녀석아, 고생한다고 그걸 외모에 반영할 필요는 전혀 없거든. 너 왜 그래, 글쎄 말이에요. 제가 아저씨처럼 보인데요. 음, 그렇게 보여. 서른살로 보인다고, 그렇게 보여. 머리도 벗어지고 큰일이다. 뭔가 조치가 필요해. 여자친구 생겼어. 아니요. 어떡허냐.
우선 일루미네이션을 보러 갔다. 같은 동네에서 11월부터 일루미네이션을 했지만, 보질 않았다. 네팔 아이는 신나서 여자 친구랑 보러 오고 싶단다. 그전에도 같은 말을 했다. 그러면서 해마다 나랑 같이 보고 있다. 사진을 찍으니 자기도 찍어 달란다. 그 외모를 찍어서 남기려나, 두 장 찍었다. 사진에는 나름 괜찮게 보인다.
따뜻한 날이라, 춥지 않아서 좋았다. 둘이서 산책을 하고 집으로 왔다. 밥을 좋아하는 아이다. 밥냄새를 맡으니 환장한다. 시간이 없어서 거대한 새송이를 볶아서 피클도 두 종류 있으니까, 밥을 먹었다. 밥에 김, 한국 김을 좋아해서 신오쿠보에 들러서 사온 거다. 새송이 볶음에 닭고기 수프는 닭고기를 먼저 먹고 수프를 마시라고 했다. 굶주렸던 모양으로 많이 먹겠다고 난리다. 먹을 게 많이 있으니까 천천히 먹어. 닭고기를 먹는 게 시원치 않아서 스프를 줬더니, 내가 이런 걸 먹고 싶었다고 소리를 지른다. 스프가 맛있는 거야. 밥을 세 그릇이나 먹는다. 밥은 충분히 많은 데, 밥을 많이 먹지 마,, 네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못 먹어. 주의를 줬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말을 안 듣는다. 밥을 맛있게 먹는 방법도 알려줘도 잘 못한다. 시범을 보여서 먹여줬다. 맛있다. 이렇게 새송이 볶음과 피클을 넣어서 비벼, 그걸 김에다 싸서 먹으면 맛있거든.
밥 세 그릇에 찐고구마까지 맛있게 먹었다. 그 이상은 못 먹는단다. 그러니까, 내가 밥을 많이 먹지 말라고 했잖아. 어휴, 지지리도 말을 안듣는다.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는 수다를 떤다. 같이 일하는 중국사람이 서른 살인 데, 저에게 결혼하자고 근데, 전혀 서른살로 안 보이고 예뻐요. 그래, 난 괜찮아. 나이가 저보다 열살 가깝게 많잖아요. 나이는 문제가 아니야, 내가 아는 학생도, 동료도 여자가 나이가 열 살 이상 많아, 잘 살더라고. 내가 아는 사람은 세 번 결혼했는 데, 세 번째 사람은 부인이 열다섯살 많아. 네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면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괜찮아. 결혼은 한 번에 한사람 밖에 못하거든. 그러니까 전혀 상관하지 말고 결혼하고 싶으면 해. 일본여자는 어때요. 사람나름이지만, 어떤 사람이든 괜찮아. 그런데, 성격이 안맞는 사람이면 나는 안 보고 싶으니까, 그건 알아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