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점이 끝났다
2017/02/02 채점이 끝났다
오늘 동경은 맑지만, 겨울이라 나름 추운 날씨였다. 아침에 도서관에 갈 때는 싸늘하게 추웠지만, 저녁에 도서관에서 돌아올 때는 그다지 춥지 않았다.
오늘의 중요한 일은 채점이 끝난다는 것이다. 아침부터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도서관에 가서 채점을 집계하면서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채점이 끝나서 성적을 입력하면 2년이나 내 강의를 듣던 학생들과 헤어진다. 일학년 때는 여성학을 일년 듣고, 이학년에서 노동사회학을 들었다. 학생들이 대학에 금방 입학했을 때는 아직도 고등학생 같다. 소년과 소녀에서 청년으로 탈바꿈해 가는 것은 일학년에서 이학년이 되는 시점이다. 여학생인 경우 이학년에서 삼학년이 되며 어른스러워진다. 분위기도 많이 달라진다. 학생들의 변화는 외면만이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많은 갈등을 겪으면서 변화한다.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와서 김이 빠진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어쨌든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에 비해 실제로는 생각했던 것만큼 즐거운 것도 아니다. 일학년 때에 대학을 그만두고 싶다는 학생이 많다. 대학에 적당히 익숙해진 이학년이 되면 수업도 적당히 하면 된다는 걸 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더 헤매게 된다. 일학년 때는 막연한 실망감이지만, 이학년 때는 더 답답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양이다. 지금 학생들을 보면, 어쨌든 눈 앞에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다. 눈 앞에 일을 열심히 하면 장래에 더 좋은 일로 연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없다. 그래서 열심히 하기 전에 주저한다. 열심히 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과 중요한 관계맺기이기도 하다. 알바도 경험을 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소모하는 느낌인 모양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가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학생들은 휴대폰에 밀착해서 한시도 손에서 떼어놓지 못한다. 그런 한편 아이들은 점점 더 고립되어 외로워지는 것 같다. SNS나 라인으로 연결된 친구들과 어떤 대화를 하는 걸까? 점점 더 자존감이 낮아지며 위축되어 간다. 요새 학생들을 보면 심신이 허약한 걸 확실히 알 수 있다. 감기가 유행할 때는 감기에 걸려 결석이 많아지고 독감이 유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결석은 적지만 이유가 다양해졌다. 학생들이 취직활동이나, 동아리활동이 아닌, 가족의 장례식이나 병문안, 간호도 늘어간다. 학생들에게 부담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학생들은 부모나 기성세대에 반발하는 경향이 일반적이었다. 자신을 형성한 것에 반발하면서 자신을 확립해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반발하려는 ‘의지’나 ‘힘’이 적다. 어린 학생보다 주위환경이 가진 힘이 압도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을 키우고 확립하기 힘들어진다. 극도로 실패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새로운 걸 시작하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성공을 절실히 바라는 ‘야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 학생들이 놓인 상황이다.
모두가 ‘야심’을 갖고 성공하기를 바라진 않는다. 그래도 젊었을 때, 도전과 실패를 경험하며 자신을 확립했으면 한다. 나이를 먹으면 선택의 폭이 훨씬 더 좁아져 실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학생들은 실패 한번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 평생이 외줄타기일 수는 없을텐데….
이 년 동안 지지고 볶고 했던 학생들과 헤어지는 의식이 채점에 성적입력이다. 그동안 겉모습과 내면의 변화도 지켜봤다. 씩씩하게 잘 살아가길 바란다.
기분이 싱숭생숭해서 인스턴트 라면에 쵸코렛을 먹었다. 이런 날도 있다.
사진은 이틀 전에 찍은 매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