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라, 가을의 문턱
2011/03/05 캔버라, 가을의 문턱
캔버라는 어제, 그저께 부터 찬바람이 분다.
갑자기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다.
이번 주는 내셔널라이브러리에서 일을 해서 연구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다 보니, 글을 못썼다. 그래서 토요일인 오늘도 늦게 나와서 논문에 관한 논평을 쓰고있다쓰고 있다.
이번 주에 집중적으로 하던 일에는 다행히도 성과가 있어서 세미나를 위한 아우트라인이 잡혔다. 지난 번 했던 세미나와 연결이 된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아주 선명하게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다.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다는 건 참 기쁜 일이다.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꼭 기쁘지 않은 면도 있다.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지금 살아가는 현재가 암담하게 느껴질 때 역사에서 희망을 찾고 꿈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역사 또한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는 게 명확히 드러날 때, 인간으로서는 슬프고 가슴이 아프다. 인간은 역사로부터 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끝없이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 살아왔다고 믿고 싶었는데.
어젯밤에는 슬프고 외로웠다. 이 슬픔도 그 외로움도 누구와 나눌 수 있는게 아니다. 자기가 짊어지고 가야할 짐인 것이다.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건, 더 외로워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서.
갑자기, 문득 서울에는 개나리가 피었을 까 궁금해졌다. 밤에 갑자기 든 생각이라 확인 할 길이 없어, 청바지에 개나리를 수놓기 시작했다.
추워진 밤에 정신없이 청바지에 개나리꽃을 피우다보니 밤 2시가 넘었다. 너무 열중하다보니 손이 아프고 다리가 저리다. 다 끝내지 못했지만 자기로 했다. 그야말로 갑자기 충동적으로 시작한것이라 실도 제대로 없고 어두운 불빛아래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느끼는 슬픔과 외로움이 손 끝을 거쳐 바늘을 타고 개나리꽃으로 피어난다. 왜 갑자기 개나리꽃이었을까. 역시 봄을 기다려서 일까. 몸은 가을의 문턱에 있는데, 왜 문득 봄이었을까?
자신의 몸에 박혀있는 감각이 갑자기 되살아난 것일까?
봄이 기다려진다. 정말 봄이 왔으면 좋겠다.
오늘 밤에 나머지를 해야지, 그리고 그건 개나리꽃 청바지로 애착을 가지고 입어야지.
동경에 있으면 서울이 생각나지도 않고 한국이 생각나지도 않는다. 호주에 오면 한국이 생각나고 한국음식이 먹고 싶어진다싶어 진다. 캔버라에 오면 멸치와 고추장을 사고 한국라면을 산다. 동경에서는고추장을 먹을 일이 없다. 한국라면을 사지도 않는다. 어제는 오랜만에 부침가루를 사서 부침을 해 먹었다.
동경에 있을 때는 캔버라가 그립고 호주에 있는 친구들이 보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