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형체
2013/04/09 그리움의 형체
오늘 동경 날씨는 맑고 청명하다. 그리고 바람이 좀 분다.
오전까지는 꾸물거리더니, 확 맑아졌다. 오늘부터 새학기가 시작되는 줄 알고 있었다. 어제 저녁에 메일을 다시 한번 확인했더니, 회의가 있었던 것은 어제였다는… 아, 맥이 풀린다. 이래도 되는 거야, 정신차려, 뭐 벌써 폐인? 아니면 치매? 아니, 그러긴 이르지. 정말로 정신 차려서 사회복귀를 해야지…
내일은 오전에 수업이 있다. 학생이 몇명이나 수강신청을 했는지 모른다. 학교에서도 모른다. 교실 크기로 대충 짐작해서 자료를 준비한다. 작년에는 300명이어서 죽는 줄 알았다. 아마, 올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수업이 끝난 후에 아는 친구와 약속을 했다. 그랬더니 조금 전에 다른 사람이 전화가 왔다. 내일 약속이 있다고 했더니 같이 만나도 되겠냐고, 그러자고 했다. 한 친구는 박사논문을 제출하고 포스독으로 모교인 와세다에 와 있다. 또 한 친구는 박사논문을 쓰기위해 미국에서 조사를 왔다. 새학기를 시작하는 날부터 힘들게 일정을 잡았다.
지난 겨울에는 외벽공사로 인해 사방이 막혀서 상상력과 의욕에 지장이 있었다. 순전히 핑계지만… 겨울에 뜬 것을 사진 찍었다. 약간 바람이 부는 날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옷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으니까, 예상치 못했던 표정을 보인다. 블로그 제목은 너도님의 흉내를 내서 ‘그리움의 형체’라고 해봤다. 여기에 소개하는 옷을 표현하는 데, 걸맞는 말이 '그리움’이 된다. ‘그리움’을 어떻게 표현하고 형체화 하느냐? 사람에 따라 다르리다. 현재 나의 표현은 이렇다는 것이다.
첫번째는 ‘탯줄’이 모티브다.
어쩌면 사람들은 ‘탯줄’을 달고 다니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탯줄’에 따라, 때에 따라, 사람에 따라 ‘탯줄’이 ‘날개’가 되어주고, 어떤 ‘탯줄’은 목을 조이고 그럴 것이다. 이 ‘탯줄’은 전혀 부담이 없는 그저 ‘형체’만 남아있는 것이다. 봄바람을 타고 날고 있다. ‘탯줄’은 앞으로도 계속 추구하고 싶은 모티브다.
두 번째는 그리운 캔버라다.
지난 10년 이상을 호주에 왔다 갔다 하며 살았다. 주로 호주에서 살았던 기간도 3년이 훨씬 넘는다. 해마다, 한두 번은 꼭 갔고, 대충 일 년에 2-4개월을 지냈다.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호주에 가지 않았다. 호주를 가지 않다 보니 내 몸에 쌓인 기억과 그리움이 있다는 걸 알았다. 시드니에서도 살았지만, 계속 왔다 갔다 했던 곳은 캔버라다. 캔버라에도 제주도 오름처럼 정겨운 산이 있다. 친구 Elva네 집 부엌에서 보이는 산이 어릴 때 마당에서 보던 오름과 겹쳐 보였다. 친구가 그립고, 친구네 집 부엌에서 요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게 그립다. 그리고, 친구네 부엌에서 봤던 오름 같은 산이 보고 싶다. 캔버라가 그리워서, 그리운 캔버라를 뜨개질에 담아 보았다. 붉은 땅, 파란 하늘, 그리고 호숫가. 건조하고 삭막한 붉은 땅, 정이 붙을 이유가 없었던 낯선 곳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이 처음에는 반가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구름이 온도를 조정한다는 것을 알았다. 구름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준 새파랗기 만 하던 하늘이었다. 호수는 흙탕물 인공호수지만 한강처럼 크다. 맑은 물이 전혀 귀하지 않은 한국이나, 일본에서 살았던 나는 처음에 그 인공호수를 봤을 때 황당했다. 아니 이런 걸 호수랍시고… 물이 귀중한 곳에서는 흙탕물 호수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낯설기만 했던 것들이 어느새 내 몸에 들어와 쌓여서 소중한 나의 일부가 되었고, 그리움이 되어있었다. 캔버라, 붉은 땅과 파란 하늘, 흙탕물 호수를 표현한 것이다. 단순하고 러프 하지만, 그리운 이야기가 많이 숨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