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거나, 적거나
2013/04/14 너무 많거나, 적거나
오늘 동경은 맑았지만, 좀 쌀쌀하고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었다..
어제는 왠지 졸려서 오후에 잠깐 눈을 부쳤더니, 잠에서 깨질 못하고 오늘 아침까지 계속 잤다. 아무래도 피곤했던 모양이다. 오늘은 일어나서 일과인 요가를 하고 아침을 먹었다. 마지막 남은 빵 한 장에 마지막 남은 버터 한 조각을 발라서 먹었다. 아침을 먹고 청소를 하려니 청소기를 돌리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먼저 소리가 안나는 유리창 청소를 했다. 그리고, 쓸데없이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다가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했다. 짙은 색 옷을 세탁하려고 봤더니 너무 적다. 세탁은 내일 하던지, 아니면 더 기다려야 한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개강을 했다.
수요일 2교시에 수업이 있었다. 작년에 300명이나 몰려와서 죽을 뻔했던 과목, 글로벌 도시론이다. 학교에 수강생 수를 제한해 달라고 했더니 안된단다. 작년에 영토문제가 있었고, 그 후 한국과도 껄끄럽고, 요새는 북한 문제도 있어서, 수강생이 줄어들 거라고 예상했다. 100명 정도 올까, 그러면 좋지, 아주 낙관적인 기분으로 학교에 갔다. 이 교실은 어딥니까. 예, 몇 호관 지하 1층입니다. 대학에 새로운 건물을 많이 지어서 몇 호관이 어딘지, 그리고 지하에서 수업을 한다는 것 자체도 못 믿겠다. 수강생이 몇 명이지요? 예, 아직 확정이 안됐습니다. 참고로 알아야 자료를 준비하니까, 물어봐 주세요. 전화를 물어보더니, 현재 498명이라고 합니다. 교실은 500명 정원이라고 하는 데요.
맥이 탁 풀린다. 500명을 상대로 수업을 하라고요? 작년 300명으로 죽을 뻔했는데… 어쩌라고, 그리고 교실이 500명 정원에 498명, 완전 인체 실험장도 아니고, 교실이 냉방 온도조절을 못하고 창문도 못 여는 데, 정말 너무한다. 차라리, 날 죽여라. 아예, 체육관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불평불만해봤자, 내 입만 아프고 인상이 나빠질 뿐이라, 맥이 빠진 상태에서 거의 울고 싶은 심정으로 넋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상자에 자료를 넣고 교실에 갔다. 그 교실은 지하 1층에, 그 교실 하나밖에 없었다. 교단에 서서 보니, 학생들 얼굴이 안 보인다. 울고 싶다. 뒤에 학생들은 인간들이 앉아있다는 것밖에 식별이 안된다.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거수를 하라고 했더니, 보통 거수로는 손이 보이지 않는다. 손을 번쩍 들지 않으면 안 보인다. 교실은 젊은 학생들의 체온으로 데워져서 냉방을 넣었지만, 온도조절이 안되어 뜨겁다. 학생들은 점점 불어나서 교실 밖으로 넘쳐흘러 났다. 수습이 안된다. 출석체크는 불가능할 것 같다. 나는 강의가 끝날 때 감상문을 써서 내라고 한다. 내가 요구하는 감상문 또한 장난이 아니다. 학생들 레벨도 자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그 걸로 점수를 매겨, 평상점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뭘 느끼는지, 강의가 제대로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말로 대학에서 뭘 생각하는지, 화가 난다. 이렇게 학생들이 많으면, 좋은 수업은커녕 제대로 수업을 못한다. 내가 열심히 하고 아니고 가 아닌 교육의 질이 확실히 떨어진다. 결국, 수업을 잘하는 것보다, 학생들이 안전사고가 안 나게 주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500명이 넘는 학생이 수업을 듣고 감상문을 써서 내고 점심 먹으러 이동을 해야 하는 데 문은 3개밖에 없다. 건물을 새로 설계해서 지을 때 이렇게 대형 교실을 만들면서 드나들 학생수를 감안하고 문을 많이 만들어야지. 앞으로 날씨가 더워지고 비가 올 텐데, 저런 열악한 환경에서 학생들이 수업에 제대로 집중을 할 수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나도 수업을 잘하기보다, 사고 없이 무사히 학기를 끝내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토요일 대학에서 전화가 왔다, 수강생이 많아져서 600명이 들어가는 큰 교실로 바꿨다고, 화가 나서 퉁명스럽게 알았다고 했다. 사무실에서도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보통 때는 조수를 한 명 쓰는 데, 이번에는 조수를 두 명 써서 수업을 할 거다. 그리고 내년에는 학생들이 몰리지 않을 시간으로 시간을 변경할 거다. 쪼끔 인기가 있다는 것은 정말로 괴로운 일이다.
다음 날은, 다른 학교 2교시에 여성학, 3교시는 노동사회학이었다. 여성학 시간에 들어갔더니, 학생이 4명이었다. 적어도 너무 적다. 수업에는 적정인원이라는 게 있는 데, 너무 적어도 수업하기가 거북하다. 점심시간에 다른 선생에게 물었더니, 저는 3명 왔어요. 나만 적은 게 아니었구나, 조금 있으니, 오늘은 첫날이라고 학생들이 멋대로 쉰다는 소문입니다. 아마, 다음 주부터 제대로 나올 거예요.
3교시 노동사회학은 지금까지 주로 일본의 노동상황에 관해서 해오다가, 올해부터 국제적인 것으로 싹 바꿨다. 수업을 시작해서 조금 있으니까, 30% 정도가 우수수 밖으로 나간다. 도저히 못 따라가겠다는 것이다. 일본 학생들은 대체로 ‘국제적’인 면이 약하다. 물론 대학에 따라 다르지만, 몇몇 대학을 빼면 전체적으로는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약한 게 지나치면 아예, 도통 모르게 된다. 자료를 주면서 좀 어렵게 느낄지 몰라도, 익숙해진다고, 자료는 신문기사 레벨이니까, 사회인이 되려면 신문기사 정도는 읽고 이해해야 한다고 주지했다. 그래도 수업하기 쉬울 정도의 학생이 남았다. 다행이다.
금요일에는 주로 강의를 하는 대학이다. 오랜만에 동료들과 만났다. 사무실 직원들과도 인사를 하느라고 바쁘다. 수업에 들어갔더니, 신입생이 많았다. 그중에는 다른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좀 섞여 있었다. 내가 학생을 기억해서 작년하고 인상이 바뀌었네, 헤어스타일을 바꿨어? 예, 조금 바꿨어요. 다른 학생에게도 묻는다. 작년 어느 과목을 들었지? 오스트라리안 스터디스요. 아, 그렇구나. ㅇㅇ군, 작년에 일본문화사를 들었지? 감상문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좋았어, 그래서 메일을 하려고 했는 데, 잊어버렸네. 이 말을 전할 수 있어 다행이다. 학생이 어쩔 줄 모른다. 나중에 감상문을 봤더니, 선생님이 재미있어서 이 과목을 들으러 왔단다. 그중에는 야단을 맞아가면서도 내 수업을 좋아 다니면서 듣는 학생들이 있다. 학생 중에는 가벼운 중독현상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단다. 중독이라, 금단증상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지만…
드디어, 내 창문 앞 느티나무에도 새순이 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사진이다. 다른 나무들은, 두 번째 사진처럼 새순이 한참인 데, 좀 늦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