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생활

시금치와 깡통

huiya(kohui) 2020. 5. 15. 15:06

2012/05/02 시금치와 깡통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일어나 보니 비가 내렸었다휴일이어도 일과인 스트레칭을 하고 아침을 먹고 준비를 해서 학교 도서관에 갔다가는 길에는 비가 오지 않아서 모란꽃이 탐스럽게 핀 걸 보았다돌아오는 길에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돌아올 때는 빗살이 세어져서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가는 길에 공원에서 찍은 것과 강가를 찍은 사진뿐이다

 

학교 정문에 가기 전에 지역에서 야채를 재배해서 무인판매를 하는 곳에 들려서 아주 싱싱한 시금치를 두 단 샀다한 단에 백 엔이다. 여기는 월, , 금요일에 시기에 따라 자기 밭에서 캔 야채를 무인 판매한다. 파는 사람이 없고 사는 사람이 돈을 넣고 야채를 가져가는 시스템이다오늘은 토란이 한 봉지 남아있었는데시금치만 두 단 샀다모든 야채가 한 봉지에 백 엔이다. 그 날 아침에 밭에서 뽑아낸 거라 싱싱하고 신선하기 그지없다문제는 시금치가 젖어있어서 가방에 넣었더니 가방까지 젖어서 물이 샜다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가방에 집어넣을 때도 시금치가 머리를 내밀어서 도서관 직원이 ‘맛있겠다’고 인사를 했다. 살짝,부끄러워진다. 그래도 오늘은 시금치라서 냄새가 안 나서 다행이다. 나는 때에 따라,파나 무우도 사서 들고 도서관에 가서 주위 사람들이 ‘시선집중’을 받았던 사람이다.


도서관에 도서관카드를 새로 만들려고 서류를 가지고 갔더니, 그 자리에서 발행해주었다항상 이용하는 곳에 가서 새로 들어온 책들을 체크하고 휴일에 읽을 책을 빌려왔다새로 들여온 도서들을 체크하고 읽는 관련 분야 책을 읽다 보니 순식간에 몇 시간이 지났다나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화장실에 가는 걸 참는 습관이 있다화장실이 먼 것도 아닌데참다가 화장실로 뛰어간다솔직히 이 건 아주 창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손에 잡은 책이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오랜만에 많은 책들을 만지고 냄새를 맡아서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었다이런 것도 주기적으로 하지 않으면 뭔가 결핍된 것처럼 약간 불안해진다머리에 기름이 끼는 것처럼 맑지 않다.

도서관에서 나오다가 작년 말에 우리 집에 놀러 왔던 후배를 만났다선 채로 조금 수다를 떨다가 ATM에서 연휴 중에 쓸지도 모르는 돈을 뽑아놨다평소에 지갑에 돈이 얼마 있는지 신경을 안 쓰는 편이라 돈도 없이 주말을 맞거나연휴를 맞는 일이 허다하다일본에서는 휴일이나 주말오후 6시이후에 은행 ATM에서 돈을 뽑으면 수수료를 내야 한다. 이 수수료가 백 엔이라도 아깝다일본은 지금 ‘골든 위크’라는 연휴 중이다. 올해는 약간 징검다리형으로 휴일과 휴일이 아닌 날이 섞여 있지만하루나 이틀을 쉬면 최장 열흘 가까이 긴 연휴가 된다아주 긴 연휴인 것이다그래서 ‘골든 위크’라고 부른다나는 어제 강의를 나가고 오늘부터 쉰다어제 아침에 갑자기 연휴에 특별히 할 일이 없다는 걸 알고 출판사에 전화를 했다원고 교정 볼 시간이 생겼으니까교정 볼 원고를 보내달라고출판사에서도 인쇄소에서 나와야 보내는 거라준비가 되면 연락하겠다고 한다. ‘골덴 위크’는 일 년 중 가장 긴 연휴이며 좋은 계절이라 많은 사람들이 국내외로 여행을 가는 시즌이다그래서 비행기표도 비싸고 관광지도 비싸고 붐빈다아마 서울거리도 보통 때보다 훨씬 많은 일본 사람들이 누비고 다닐 것이다나는 ‘골덴 위크’에는 안 움직이는 타입이다그 대신 동경시내는 조용하고 사람도 적어진다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헌책방에 가려고 걷다가 깡통이 버려진 쓰레기통에서 쓸만한 깡통을 두 개 주워서 가방에 넣었다쓸만한게 하나 더 있었는데 가방에 넣을 수가 없어서 하나는 포기했다헌책방에서 책을 살지도 모르니까너무 많이 넣으면 시금치가 망가진다나는 이런 깡통을 좋아한다쓸만한 깡통은 줏어다가 재활용을 한다. 깡통이 아주 쓸모가 있고 쓰기도 좋다어떤 때는 선물로 주기도 한다내가 가지고 있는 깡통을 세어보니 서른 개가 훨씬 넘는다오늘 깡통은 뚜껑이 연결된 것이다이런 건 흔하지 않다.

사진 위가 오늘 건진 깡통이고, 아래 사진은 재활용하고 있는 깡통이다.

헌책방에 들러서잡지들을 보고 아주 만족한 기분으로 약간 비에 젖으면서 집에 돌아왔다가지고 간 우산이 양산이라좀 작았다우산 밖으로 몸이 넘쳐나서 팔도 젖고 다리도 젖었다집에 와 보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었다젖은 가방에서 책을 꺼내보니 새 책인데 표지에 약간 시금치물이 들었다그래도 책 표지와 비슷한 색이라 죄책감이 약간 경감된다.

배가 고파서 시금치를 한 단 데쳐서 사쓰마아게라는 어묵과 잔 멸치를 같이 먹었다비에 젖어서 녹물이 있었던 깡통도 물기를 깨끗이 닦아냈다하루가 금방 지났다이렇게 지내다 보면 ‘골덴 위크’도 금방 지날 것 같다그래도 책을 빌려왔고 돈도 찾아놔서 걱정이 없다아마 연휴 중 비가 오면 돈을 쓸 일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