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제주도 사람들

그리움으로 2

huiya(kohui) 2020. 5. 30. 19:20

2014/05/28 그리움으로 2

 

오늘 동경은 아침에 잔뜩 흐렸다가, 낮이 되면서 날씨가 개였다

아침에 시드니에서 온 큐레이터와 만날 일정을 조정하느라고 메일을 몇 번 주고받았다. 아마 토요일에 만날 것 같다. 그리고는 학교도서관을 향했다. 월요일에 새 책이 들어오는 게 궁금하고 가는 길에 신선한 야채를 사려고 길을 나섰다. 집에서 가까운 공원을 거쳐 가며서 보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공놀이를 하느라고 복작거린다. 조금 더 가면 오디나무가 있다. 주차장에 있는 오디나무에서 오디가 익어서 떨어진다. 차사이에서 떨어진 오디를 줍고 있더니 옆에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랐다. 오디를 줍다가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럽다. 테니스를 마친 아주머니가 차에 타면서 여기는 시립이니까, 오디를 주어도 괜찮단다. 나도 개인소유라면 줍질 않는다. 개인소유를 그냥 주었다가 큰일이 난다. 오디를 한주먹 주어서 먹으면서 걷는다. 손이 마치 살인사건이라도 일으켜서 피가 묻은 것처럼 보인다. 이대로 학교 갔다가 안되겠다

농부네 마당에 설치된 무인판매대에 무가 두 개가 한 묶음이 남아 있었다. 백엔을 병에 넣고 무는 비닐봉지에 넣어서 뒤쪽에 감춰놓는다.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져 갈려고… 평소에는 물이 있었는 데, 손을 씻으려니 오늘따라 물이 없다. 가는 길에 가만히 봤더니 수도가 몇개 있다. 그런데, 수도꼭지가 없었다. 비가 와서 고인물이 있어서 손을 좀 씻었다

도서관에 도착하기 전에 또 한군데 들렀더니 토란과 오이, 감자가 있었다. 오이는 두 개에 백엔이라, 좀 비싼 것 같았지만 남은 한 봉지를 가방에 넣었다. 여기도 무인판매로 월, , 금요일에 야채가 나온다. 도서관에 갈 때도 시와 때를 맞춰야 수확이 많다. 오늘은 수확이 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도서관에서도 좀 건졌다. 먼저 신문을 읽었다. 그리고 읽고 싶은 책이 몇 권 들어와 있어서 책을 한 권 읽었다. 도서관 실내기온이 잠자기에 안성맞춤인지라, 바람이 잘 통하는 자리를 골라서 앉아야 한다. 그래도 졸리다. 학생들이 집중이 안된다. 웃긴다. 세상은 절전에서 원전을 재가동해서 절전이 언제 있었나 싶은 데, 학교와 전철은 계속 절전모드다. 절전은 중요하다. 그러나, 대학에서 비싼 등록금을 받았으면 학생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 게 아닌가. 나도 예전 같으면 건의를 하지만, 지금은 안 한다. 그저 도서관 안팎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책을 읽을 뿐이다. 읽은 책은 반납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배가 고파서 오이를 하나 먹었다. 가는 길에 농부네 집 마당에 감춰뒀던 무를 들고 오디나무 밑에 다시 들렀다. 오이를 넣었던 비닐봉지에 오디를 주어서 담았다. 오전보다 훨씬 더 많이 줏었다. 오늘은 수확이 아주 괜찮은 날이었다

 


치바 이야기를 계속하자. 페리를 타고 바다를 건너서 그리던 곳에 도착했더니, 막내딸이 와서 나를 찾는다. 차를 타고 집을 향했다. 바빠서 점심도 제대로 못 먹어서 배가 고프단다. 아는 동생이 나를 기다려서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다고 한다. 반찬은 뭘 먹었는지 기억이 잘나지 않다. 묵은 김치를 지진 것과 전갱이 회에 아는 사람이 족발을 두고 갔다고, 족발에 문어회무침, 고등어 구운 것이 생각난다. 완두콩이 들어간 밥이 맛있다. 문어회무침에 들어있던 부추가 어렸을 때 먹었던 부추 맛이었다. 물었더니 돌아가신 삼촌네서 얻어온 것이라고 아마 제주도에서 온 게 아닐까 싶다

저녁을 먹은 설거지는 내가 했다. 아는 동생은 남편이 늦게 들어온다고 남편상을 따로 봐놓고 고단해서 먼저 잔단다. 나에게도 잘 때는 자기와 같은 방에 자자고 이불을 펴놨단다. 먼저 잔다고 나에게는 천천히 있다가 자는 시간에 자란다. 책장에 책을 꺼내서 읽다가 12시쯤에 잤다

 

이튿날 일어났더니 아는 동생은 바다로 일 나갈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아침부터 낮까지 바다에 나가서 일을 한다. 나는 밥을 먹고 그집 막내딸과 같이 바닷가로 나갔다. 보말을 잡으러 가서 두세 시간 동안 바닷가에서 허리를 굽혀서 찾았다. 먹을 만큼 잡아서 집에 왔더니 아는 동생도 바닷가에서 돌아왔다. 나는 보말을 어떻게 삶는지 물어서 삶아서 따뜻할 때 그 자리에서 까먹었다. 보말은 종류에 따라 맛이 다르다. 3일동안 매일 낮에는 바닷가에 가서 보말을 잡아다가 삶아서 마당을 바라보면서 먹었다. 그리고는 책을 읽고 뜨개질을 했다

 

오후에는 내가 치킨카레를 만들어서 저녁으로 먹었다. 유치원생 막내딸이 조수 노릇을 한다고 양파를 까주고 감자도 벗겨준다. 바닷가에도 같이 가서 딴에는 신경 써서 손님 대접한다고 나와 놀아줬다. 모처럼, 몸과 마음에 영양이 공급되는 푸근하게 좋은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