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회/야스쿠니

야스쿠니 신사 2013-3

huiya(kohui) 2020. 8. 14. 14:37

2013/08/22 야스쿠니 신사 2013-3

 

오늘도 동경은 뜨거운 날씨였다최고기온은 34도. 그런데 오후에 들어서 3시쯤에 소낙비가 크게 올 것 같았다천둥번개는 물론이요비가 올 것 같은 냄새가 훅하고 났다나는 비가 내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청소기를 돌리며비가 크게 오기를 빌었다하늘에서는 천둥이 우르릉 꽈당 난리를 편다신났다비야 내려라완전 기대를 했다비는 조금 왔다크게 내릴 것처럼 폼이라는 폼은 다잡고속은 것 같은 기분이다그래도 비가 오지 않은 것 보다 훨씬 낫다일주일 만에 밑에 내려가서 시장을 봤다오늘은 옥수수가 싸서 옥수수를 많이 사 왔다. 10개쯤 샀다. 집에 먹을 게 별로 없어서 식량조달차 내려간 것이다내가 사는 근방은 좀 시원해도 밑에 내려가니까비가 조금 와도 그다지 효과가 없는지 더웠다… 옥수수를 삶아서 저녁으로 먹었다.

 

야스쿠니 신사에 관해 계속 써서 마쳐야지야스쿠니의 유슈관과 캔버라의 전쟁기념관이 왜 그렇게 달랐을까베트남 호찌민에서 전쟁기념관에 간 적이 있었다거기에는 미군 옆에 한국군으로 보이는 인형이 있었다한국군은 자기나라 전쟁도 아닌 데베트남전에 참전했고 베트남 사람들을 죽였다물론전쟁이니까한국병사들도 죽은 사람들이 있으리라학교에 다닐 때위문편지를 쓴 기억이 난다위문편지는 거의 강제적으로 쓰는 것이었다나이를 먹어서 한국군인들은 돈벌이를 위해서 베트남전에 참전을 했다고 생각했다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가난한 나라였던 한국 사람들은 남의 나라에 가서 전쟁을 해서라도 돈이 필요했었다고 정당화를 한 것이다그러나가난하기 때문에 돈이 필요해서 남의 나라에 가서 전쟁을 한다는 것은그 나라 사람들을 죽이고 파괴한 것에 관해 정당화할 이유가 안된다가난했어도다른 방법을 모색하고 택할 있는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한국군인에게 가족을 잃은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군인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한국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그런 것이 걸려서 쉽게 베트남에 갈 수가 없었다그리고한국군인의 인형을 보고 마음이 착잡했다전쟁에 참전했던 아저씨가 해설하는 땅굴에도 갔다영어가 좀 독특해서 알아듣기 힘들었지만자신들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상대로 전쟁해서 이겼다는베트남이 통일되었다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참으로 다행이라고 여겼다정말로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스쿠니와 캔버라호치민의 전쟁을 기념하는 것에 공통점과 다른 점이 있다공통점은 끝난 전쟁이라는 것이다과거즉 역사적인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캔베라와 호치민의 그것은 두 나라의 현재 모습에 큰 영향력이 있는 게 아니다그리고 미래에도 전쟁기념관이 할 역할은 그다지 크지 않으리라야스쿠니는 과거로서 끝난 역사가 아닌 현재의 구심점을 만들고 있으며미래에도 큰 영향력을 미치려 한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단지 과거를 되새김하는 역사적인 모뉴멘트가 아닌 현재에 과거의 고난과 영광을 되새김질하면서 미래로 연결시키려 한다야스쿠니가 그 점에 있어서 결정적인 정신적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유슈관에서 변태가 나를 스쳐 지나갔다일본에서 이런 사람을 ‘치한’이라고 한다전쟁을 기념하는 곳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성적흥분을 주나 보다그 변태는 자신의 성적으로 흥분된 상태라는 걸 누군가(?)에게 어필을 하고 싶어서 자신의 몸을 나에게 밀착시키고 지나갔을 것이다다른 장소였으면 아주 놀랐겠지만나는 이미 너무 놀란 상태여서 거기에 변태가 보태져도 새삼스러울 게 없었다그러나특정한 사람들에게는 성적으로 흥분할 만큼 그 장소가 특별하다는 걸 이해할 수 있게 해 줬다.

 

유슈관을 나와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연못이 있는 정원으로 갔다정치가들이 참배를 오는 모양이다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정치가가 오긴 왔는 데누군지 잘 모르겠다거기서 좀 기다렸지만잘 보이지 않아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다전쟁 때 말이나 개들도 많이 죽었다고그 영혼을 위로하는 의미로 말과 개 동상이 서있다그리고 어머니와 아이의 동상도 서있다설명문에 의하면전쟁미망인과 아이로어머니가 고난과 고독 속에서 아이를 잘 키웠다고아이가 커서 어머니께 감사하다는 의미로 바쳐진 것이라고 한다유슈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이나 동상들을 보면어디까지나 가족적인 느낌이 든다아버지는 전쟁에 나가서 죽는전쟁에 나가는 것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더 큰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걸까?

앞에 마당에 왔더니대만에서 온 사람들이 소수민족의상을 입은 사람을 중심으로 사진이 잘 찍히게 포즈를 잡고 있다같이 온 것 같은 매스컴들도 사진을 찍고 있다친구가 그 사람들과 말을 한다나도 옆에서 듣는다한 할아버지가 말하길대만은 (일본) 천황의 나라란다자신들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면서 친구와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다대만의 나이 든 소수민족끼리는 일본어가 공통어라일본어로 대화하는 걸 본 적이 있다.  80년대 말인가, 90년대 초에 대만에 갔을 때공원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일본말로 대화를 하는 걸 보고 물어봤다자신들은 소수민족인 데그 세대는 일본어가 공통어라고 했다소수민족 만이 아니라원래 대만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대륙에서 와 정권을 잡은 국민당에 대해 결코 단순치 않은 감정이 있다원래 대만 사람이었던 선배는 대만 말과 중국어를 구분했다중국에서 건너온 국민당원을 부모로 둔 친구는 중국을 조국으로 여기고 있었다대만 사람들도 중국에 대해서나일본에 대해서 그 입장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대만에서 온 그룹은 그렇게 포즈를 잡고 있는 게 중요한 모양이다계속 누가 사진 찍는 걸 의식하며 그 포즈를 유지하고 있었다그중에는 젊은 여자분도 두세명 끼어 있었다그리고 같이 온 매스컴은 그 그룹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는 사람에게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내가 봤을 때는 옷차림과 얼굴이 인도계로 보이는 청년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실은 인도 사람인지, 네팔 사람인지 구분이 잘 안 갔다. 

 

나는 주위를 보면서 서있었더니 비디오카메라를 찍으면서 오는 사람이 있다내가 오래전부터 아는 중국 친구였다. 아주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서조금 수다를 떨었다그는 중국에 남아있던 일본인에 관한 논픽션을 쓴 사람이다근래는 중국인 위안부에 관한 것도 썼고 영화도 만든 걸로 안다전에는 주로 글을 썼다요즘은 영화를 찍는 일을 많이 한다고 들었는 데나는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그 친구도 대만에서 온 그룹에 대해 짧게 설명한다아이들은 아는 사람에게 맡기고 일본인 부인도 비디오카메라로 일본 무도관을 찍으러 갔단다그 친구는 문화혁명의 혹독한 세례를 받은 세대라서그 세대 특유의 감정과 국가에 대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이 세대는 80년대 중국이 가난했을 때유학으로 해외에 나온 사람들이다일본에서도 가난한 유학생활을 하면서 자신들의 세계를 펼쳐나간 사람들로 우수하고 패기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한편으로 완전히 사회주의적인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이라자본주의 사회인 일본 생활에 적응하는 데적지 않은 마찰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한 명, 아사히신문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정치가들이 참배를 오고 있다는 곳을 향하고 있다나도 그냥 인사만 하려고 쫓아갔는 데키가 큰 그가 서둘러 가고 있어서 따라잡지 못했다묘한 기분이 들었다평소에 연락을 할 일도 없는 아는 사람을 8월 15일 야스쿠니에서 만나다니…

 

거기서 만나기로 한 사람에게 전화해도 전화를 안 받는다. 계속 미친 듯이 전화했다나중에 집에 와서 메일을 보고 오후에 간다는 걸 알았다내가 미친듯이 전화를 계속해서 그 사람은 내가 정말로 미친 사람인 줄 알고 정말 놀랐을 것이다미안하다, 공포의 도가니로 밀어내서... 또 한 군데 가려고 전화를 했더니 쉬는 날이란다내가 아는 재일동포가 하는 가게도 그 날 만은 쉰단다광복절이라서 쉬는 걸까다음에 만나면 물어봐야지.

아직 오전 중이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져간다. 친구와 나는 돌아가려고 역을 향해서 걸었다. 강연을 하는 곳이 있었다. 옛날 군복을 입고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은 더위에 땀을 흘리고 완전히 지쳐서 기진맥진한 상태로 그늘진 곳에 있다. 이 더위에 그 게 당연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표딱지를 나눠주고 앙케트 조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친구도 거기에 껴서 표를 붙인다. 친구가 붙이는 표는 다른 사람들이 표를 많이 붙이지 않은 답이었다. 위쪽 맨 앞의 질문은 ‘앞으로도 주변 국가에 대해 과거 문제를 사과해야 하느냐’였던 것 같다. 대답은 왼쪽이 ‘예’, 오른쪽이 ‘아니오’다. 그 옆은 '고노담화는 파기해야 하느냐?' 다음은 '아베 정권은 아베 담화를 내야 하느냐?' 그 옆은 '구대일본제국의 명예를 회복해야 하느냐?'  아랫단 왼쪽부터 '중국, 한국과 관계 개선을 희망하느냐?' 그 옆은 '앞으로 국방력 강화를 희망하느냐?' 다음은 앞으로 '중국과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은 있느냐?' 물론, 대답에는 야스쿠니에 오는 사람들이 답을 하는 것이라서 특정한 쪽으로 쏠려 있다. 그러나, 꼭 야스쿠니가 아니라도, 작년 한국, 중국과의 영토문제가 불거진 이후 일본 분위기가 이렇게 한 쪽으로만 쏠려 있다. 야스쿠니 여론과 일본 여론이 거의 같아졌다. 원래 야스쿠니 여론이 잠재적인 일본 여론의 핵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중국명을 ‘지나’라고 쓴 것이다이건 전쟁 이후에는 쓰지 않는 명칭이다여기에 한국은 한국이라고 썼지만내가 받은 전단지에는 한국을 ‘조선남조선’이라고 했다중국을 ‘지나중공’이라고 표기했다일본은,  대일본제국이다. 대일본제국이다 그렇다일본의 제국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중국이나한국대만 또한 자신들의 ‘식민지’ 정도인 것이다아무리 봐도 시대착오적이라는 걸 부정하기가 어렵다그러나야스쿠니에서는 ‘시대착오’가 아닌 그 시대가 살아있다아니그 시대에 살고 싶은 것일까?

 

입구에 오니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려온다그 날 거기에 온 사람이 17만 5천 명에서 20만 5천 명으로 과거 최대라고도 한다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는 걸 본 적이 없다굉장하다.

 

그 날밤에 친구가 왔다. 야스쿠니가 참 인상적이었다고, 일본의 핵심을 본 것 같다는 감상을 말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중 가장 무서웠다고, 역에서 내려서 지상으로 올라갔을 때, 이 사람들과는 말이 안 통하겠다는 걸 확실히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야스쿠니에 있는 동안 너무 무서워서 정말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날 느낀 것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가 있을 때, 따로 쓰리라. 아, 그 날 받아온 전단지도 며칠 뒤 공포로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찬찬히 읽었다.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 게 언어문제는 아니다. 내가 그래도 책 몇 권을 썼고, 쓸모없는 박사학위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전단지 내용은 통하는 사람들에게 만 통하는 것이다.

 

동경에 올 기회가 있으면 야스쿠니 신사에 가보시길 권한다야말로 일본의 진면목을 보게 될 것이다그러나행동과 말을 조심하시길 바란다내가 말했듯이 거기는 차원이 전혀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말이 안 통한다. 말이 안 통한다는 건정말로 무서운 것이다그리고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