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2015-5
2015/08/17 야스쿠니 2015-5
올해는 점심을 먹으러 야스쿠니에 갔던 격이 되고 말았다. 점심을 먹고 야스쿠니에서 나오면서 보니까, 군복 코스플레이가 작년보다 많은 느낌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보니까, 전쟁때, 전쟁에 나가는 사람이 전쟁에서 이기고 살아서 돌아오라는 의미로 일종의 부적 같은 것이다. 가족중 여성이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곳에 서서 흰 천에 빨간색 실로 여자 한 명에게 하나씩 매듭을 지어 받아서 모우는 것이다. 센닌바리(천명의 바늘)이라고 했으니 상징적으로 천명이라는 많은 사람에게 매듭을 받는 것이겠지… 그 것도 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아니 지금도 전쟁에 관련된 것은 섬뜩하고 무서운 것인 데, 여기서는 축제마냥 기쁨에 넘친 재현을 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것이, 국민 개인의 의사를 넘어 강제적으로 동원된다는 강제성이나, 죽음이라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마치, 특별한 그리움이 넘치는 기억처럼 재생된다는 것이 놀랍다. 전쟁이라는 것이 자신들과 관계된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며, ‘적’이라는 사람들을 죽이고 파괴하는 일이라는 것과 전혀 관계가 없는 ‘아름다운 가치’가 있는 일인 것처럼 착각하겠다. 혼란스럽다. 내가 미친 것인가?
아니다. 야스쿠니에서는 자신들의 전쟁이 명예스럽고 영광스러운 것이겠지. 아니면, 전쟁을 경험했을 것 같은 사람들이 군복 코스플레이를 하고, 센닌바리를 재현하는 일이 있을까? 어른들의 전쟁놀이를 하는 것일까?
야스쿠니에서 나올 때, 갑자기 옆에서 한국말 억양이 강한 일본어로 스피치하는 걸 들었다. 깜짝 놀랐다. 아니, 도대체 누구지? 오늘 여기에 나와서 스피치를 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유명인살텐데. 사람들이 많아서 근접해서 사진을 찍기가 어려웠다. 오선화? 내가 생각하기에 떠오르는 인물이 오선화였다. 실제로 오선화를 본 적이 없다. 아무래도 오선화일 것 같아서 사진을 찍고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확인했더니, 역시 오선화였다. 인터넷에 연설하는 동영상이 떴다. 옆에서 들은 것은 조선인 지원병 숫자를 올리면서 그 걸 알고 가슴이 벅차올랐다는 것이었다. 그 걸 들을 때는 그냥 착잡했다. 조선인들이 세대에 따라, 식민지 시대에 식민지 교육을 받고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의식을 가졌다는 건 아주 보통 일이었다는 걸 안다. 아니, 일본의 식민지니까, ‘일본인’이기도 했다.
난 국가주의자나 민족주의자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국가주의나, 반민족주의자도 아니다. 정부에 의해 ‘애국’이나, 국가에 ‘충성’을 강요당하는 것도 신물이 난다. 제발, 국민들의 세금으로 월급 받는 정치가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애국하고 국가와 국민에게 충성하는 걸 보여줬으면 한다. 그들의 직업이니까. 국민들을 ‘독립운동’하게 만들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신 영혼까지 들먹이는 걸 들으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떤 마음으로 지원을 했는지, 전쟁에서 살아서 돌아왔는지, 그 가족들에게는 어떤 일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어느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닌 인간으로서 삶이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내가 아는 많은 제주도 어른들도 같은 시대를 살았다. 도매금으로 매도하지 말길 바란다.
돌아오는 전철에서 친구가 ‘한류’에 관한 말을 했다. 나는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매국노’라고 봉변당해. 난 그런 거 무섭고 싫으니까, ‘한류’가 좋다는 말 하지 마!” 요즘 대충 그런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