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에서 보이지 않는 제주도, 일본의 어업 침략- 제주도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이 19도로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씨다. 며칠 전부터 일본은 장마에 들었다고 오늘부터는 '경보급' 호우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라서 얼마나 큰 비가 올까 했다. 아침에 약을 받으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오늘 비가 왔지만 큰 비는 아니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아침을 먹기 전에 약국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약국에 갔더니 1번으로 접수해서 약을 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식용버섯을 발견해서 땄다. 링거를 꼽고 있어서 운동을 할 수 없으니 약국에 다녀온 걸로 산책으로 삼기로 했다. 그래도 왕복 도보로 50분이었으니까.
집에 와서 어제 만든 오징어 회무침을 소면에 비벼서 오징어 회무침 국수를 먹었다. 약국에 갈 때 세수하고 양치질했지만 옷도 챙겨 입었다. 비가 와도 주위가 연두색과 녹색으로 넘치고 있어서 색감이 밝다. 그런 길을 걸으면 조금 비가 와도 기분이 좋아진다. 생각해 보니 오늘이 금요일이다. 주말이면 마트에 사람이 많으니까, 식재료를 사려면 오늘 사는 것이 좋다. 내친김에 마트에 가서 과일을 좀 사고 다른 가게에 들렀더니 현미가 있었고 사이즈가 맞는 운동화가 있어서 샀다. 지금도 같은 운동화 다른 색상을 신고 있는데 오늘 사서 검색했더니 어린이용으로 나온 운동화였다. 그래도 사이즈가 맞고 신기 편하니 괜찮을 거다. 컬러가 더불어 민주당 컬러라는 게 마음에 든다. 륙이나 스카프, 윈드 브레이커 등이 있어도 신발이 없었다. 이제는 신발까지 갖췄는데, 언제 쓸모가 있을지 모르니 평소에 신기로 했다. 신발은 아디다스인데 쿳션이 있는 깔창을 리복에서 빼서 깔았다.
오늘 산책은 하지 않았지만 왕복 50분 약국과 왕복 50분 마트에 다녀왔으니 운동한 것으로 치기로 했다. 운동과 노동은 다르지만 링거를 꼽고 있는 날이라, 그렇게 하기로 했다. 저녁에는 요전에 공원에서 벤 부추에 조갯살을 넣고 부추전을 만들어서 먹었다. 마트에서 파는 부추보다 향이 강해서 맛있었다.
기사를 보려고 야후 재팬 국제란을 봤더니 한국 새 대통령을 찬양하는 기사로 도배가 되었다. 야후 재팬 국제란 뉴스가 한국 뉴스가 가장 많고 다음은 북한 관련이었다. 미국 뉴스도 북한 관련으로 나올 정도고, 한국과 어떤 얘기를 했다로 나온다. 주로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일본어판이 활개를 친다. 한겨레가 하나쯤 있고 로이터 통신도 2개는 있었다. 일본에서 기사로 보면 한국 새 대통령이 취임 2-3일 사이에 막 기적이라도 일으키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읽어보면 내용도 없고 연예인 가십거리로 보이는 낯 뜨거운 찬양이 많아서 한국이 북한처럼 지도자를 찬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나 했다. 한국 새 대통령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면 문재인 대통령을 까는 걸 잊으면 안 되니 그런 기사도 꼭 하나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까는 기사는 '혐한'을 잊지 않게 유지하는 약발이 먹히니까,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창작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새 대통령을 찬양은 기사만이 아니라, 갑자기 유튜브에도 도배가 된 것처럼 나와서 놀랐다. 내가 느끼기에 이건 우연이 아닌, 미디어 전략이 아닐까 한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민주당이 지선에서도 표를 얻기 힘들 것 같아 걱정이다. 내가 아무리 선거기간에 여기서 민주당 컬러를 입고 다니면서 마음으로 응원을 해도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
오늘 발견한 힐링 방법이 하나 있다. 이재명 선거운동을 하러 다니는 걸 중계하는 유튜브를 보면 이재명, 이재명을 연호한다. 주변 사람들 반응과 함께 이재명을 연호하는 걸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암에 걸린 사람이 스트레스 사회인 일본에 살면서 요즘 한국 정치를 보고 있으면 암에 나쁠 것 같은데 이재명을 보고 있으면 힐링이 되는 것 같다.
오늘은 일본의 어업 침략이 제주도 본진에 도달한 것을 매우 간략하게 소개한다. 조선 연해와 같은 패턴이었지만 확실히 자원을 고갈시키는 데까지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제주도인은 조선 연해와 제주도 어장을 침략당해서 빼앗기고 말았다.
제2절 일본의 어업 침략과 제주도
1. 제주도에 대한 어업 침략
일본이 명치시대에 들어 제주도에 대한 어업 침략이 시작된 것에 대해 “필자가 보고 들은 범위에서는 명치 3(1870)년 大分県 佐賀関의 中家太郎吉 등이 상어 잡이를 목적으로 五島와 対馬를 거쳐 제주도 부근에 출어했다는 것이 가장 오래되었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었다(85). 거기에 “長崎市 竹内源吉라는 자가 명치 7-8(1874-5)년부터 제주도에서 주로 전복 채취 작업에 종사하고 있어”라는 것이 일본 외교 문서 기록에서 볼 수 있는 명치시대에 들어서 제주도에 대한 최초의 어업 침략이다(86). 그러나 먼저 쓴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중세부터 쓰시마 어민을 필두로 일본 어민이 대거 조선 연안에 어업 침략을 해왔기에 제주도에 대한 어업 침략도 그 이전부터 있었을 걸로 본다.
중세부터 계속된 일본의 한반도 연해에 대한 어업 침략은 명치시대가 열리면서 보다 활발하게 행해졌다. 그렇지만 명치시대 초기까지 “한일 양국의 국교는 단절되었던 것”이고, 명치시대의 일본 어업 침략도 불법적인 밀어로 시작했다(87). 당시 조선과 일본 사이에 “명치 9(1876)년 3월 조일 수호조약이 체결되어, 국교의 회복과 통상이 재개되었다. 단, 어업 조약을 정식으로 체결한 것은 다음에 제시하는 명치 16(1883)년 7월에 체결한 조일 무역 규칙 제41조를 실시한 이후의 일이다”(88). 일본이 제주도에 대한 불법 어업 침략은 국교 성립 이전부터 이미 행해졌고 어업 조약을 체결하기 이전부터 빈번했다. 제주도인 해녀가 裸潜水漁를 행해왔던 것에 비해 일본인은 앞에서 쓴 것처럼 위법인 무장한 어민이 잠수기 어선에 잠수 기계를 적재하여 어업 침략을 했던 것이다. “잠수기 어업, 조선해역에 출어는 山口県 萩 출신 吉村与三郎로 -중략- 잠수기 한 대를 구입해서 제주도 부근에서 작업을 개시하였다. 때는 명치 12(1879)년 4월이었다”라고 한다(89).
제주도에 어업 침략은大分県, 長崎県, 山口県, 広島県, 高知県 등 서일본 어민에 의한 것이었다. “특히 제주도는 그 (전복, 소라, 해삼) 주산지여서, 어업 침략 초기에 제주도 연안은 전복으로 뒤덮여 있어 전복을 잡으면 한 개에 팔백 돈(3킬로 ) 이상으로 큰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잠수기 업자가 제주도에 들어온 이후 남획으로 고갈되어” 그 결과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다(90). 일본 잠수기 어업은 長崎에서 시작되었는데 일본 연안에서 조업을 했더니 “ 그 결과 남획을 유도하고 연안 어민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쳐 망한”일로 그래서 제주도로 진출했다고 한다(91). 그러나, 일본 어민이 반대했던 잠수기 어업을, 어업을 생업으로 하는 제주도인 어민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도민의 상륙 거부에 부딪쳐 어쩔 수 없이 쓰시마를 거점으로 어업활동을 했다” 그렇지만 “훗날 도민을 위로하고 달래서 가파도를 근거지로 조업”했다(92). 일본 잠수기 업자의 어업 침략은 놀랍게 팽창해서 명치 26(1893)년에는 128척의 선박이, 명치 40(1907)년경에는 무려 400척이나 출어했다. 그 결과 “제주도, 소안도 등의 조선 남부 어장이 점차 황폐해지게 되었고, 새로운 어장을 찾아서 북진했다”(93).
이상으로 간단하게, 일본이 제주도에 어업 침략과 그 결과를 살펴보았다. 결국, 제주도에 진출했던 일본인 어민은 일본에서 불가능했던 조업방식으로 제주도에서 단기간 내에 자원을 남획한 결과 현지 자원을 고갈시켜 어장을 옮기게 되었다. 그에 대한 희생자는 다름 아닌 제주도인이었다.
각주
85) 吉田 전게서 159p
86) 日本外務省 전게서 第二十三巻 283p
87-8) 吉田 전게서 160p
89-93) 吉田 전게서 207-20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