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부관계의 변화 1
오늘 동경은 맑지만 강한 바람이 불어서 약간 쌀쌀하게 느껴진 날씨였다. 어제 갑자기 최고기온이 25도까지 올라가는 바람에 더워서 정신이 없었다. 오늘은 집에서 쉬면서 작년과 그 이전 학생들 리포트와 감상문을 처분하려고 정리했다. 학생들에 관한 자료를 처분할 때는 학교에 가져가서 파쇄해 달라고 한다. 학생들 개인정보가 들어 있어서 외부에 노출이 되면 다른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에 위험하다. 세상에는 별별 사람들이 다 있으니까, 안전하게 처리하는 것이 좋다.
지난번에 올린 책 '부모를 버리는 자식'에 대해 내가 주변에서 보는 아는 사람들의 가족관계를 소개하기로 한다. 지난번에 부모를 버리는, 돌보지 않는 무심한 사람은 주로 '아들'이라고 한 것은 '아들'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책에 쓰인 것이다. 세상 '아들'들이 다 무심한 것이 아니며, '딸'들이 다 효녀인 것도 아니다. 같은 책에 어머니를 때려서 거의 반죽음을 만드는 '딸'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일본에서도 부모를 봉양하는 걸 '아들'에게 기대했다. 특히, 장남은 집안 재산도 물려받지만, 부모를 모시고 조상을 돌보는 것도 세트로 된 의무로 생각했었다. 여기에서 장남이라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노부모의 시중을 드는 것은 장남의 처인 '며느리'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아들'이 데려온 남의 집 '딸'에게 봉양을 받는 것 당연시했다.
지금 일본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화제에 오르는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니 그 이후에도 TV드라마에 빠질 수 없는 것이 고부간의 갈등이었다. 주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못살게 구는 것이었다. 그 시어머니는 이전 시어머니에게 더 혹독한 시집살이를 했다는 것이 정해진 패턴으로 며느리를 얼마나 교묘하게 못살게 구는지를 오락 삼아 보고 있었다. 즉, 여자들 끼리 싸움이다. 그런 드라마에서 아들의 역할은 거진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우유부단한 자세로 문제를 항상 더 나쁘게 하는 것이었다. 아들이라는 남성을 놓고 시어머니와 아내라는 두 여성이 쟁탈전을 벌이는 모양새로 전개하는 것도 패턴이었다. 이런 구조는 여성들이 사회 진출하기가 어려워 전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남성에게 목숨을 걸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경우는 아무리 시집살이가 고되어도 '이혼'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혼한 다음 아이를 데리고 살아갈 길이 막막하기 때문에 이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시어머니가 마음 놓고 며느리를 '이지메'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고부관계가 TV 드라마에서 절정을 이룬 것은 1992년에 '후유히코상'이라는 아들과 시어머니가 나온 것을 들 수 있다. 당시 사회현상이 되기도 했던 드라마로 다음 해에 후속 편이 나와 후속편도 히트를 쳤다. 나는 이 드라마를 통해서 일본 사회가 교훈을 얻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드라마처럼 모자관계나, 고부관계가 경우에 따라, 얼마나 위험하고 흉측한 것인지 계몽하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 드라마에서 아들은 동경대를 나와 은행에 다니는 엘리트다. 시어머니는 역시 은행원이었던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가 아들을 잘 키운 것으로 치부했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것처럼 하면서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 엄격하게 키운다. 아들은 어머니가 무서웠고 어머니 뜻을 거슬리면 어머니의 사랑을 잃는 것도 두려워서 자신의 본질을 감춘다. 심각한 마더 콤플랙스에 오타쿠, 변태로 성장했다.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지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변태적이다. 보통 가정에서 자라서 중매결혼을 한 아내는 도저히 남편과 시어머니 관계에 끼어들 수도 없거니와 남편을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런 와중에 학생 때부터 좋아하던 첫사랑인 남성이 등장해서 첫사랑에게 점점 끌려간다. 불륜인 것이다. 남편은 아내가 다른 남자를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 더욱더 이상하게 변해서 변태에 스토커짓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거기에는 시어머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드라마의 인상은 아들과 어머니의 괴기한 관계로 보일 정도였다. 불륜을 하게 되는 며느리를 동정하게 된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인생 목표가 아들을 성공시키는 것이었고 성공한 것처럼 보였는데 며느리가 들어와서 아들이 며느리를 사랑함으로 관계가 뒤틀리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사랑 혹은 모성이라는 미명 하에 아들을 길들이며 지배하고 조정해왔다. 아들을 통해서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것을 이루는 대리만족을 얻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나중에 아들이 어머니를 칼로 찌르기에 이른다. 아내와도 이혼하고 모자간의 관계를 정리한다. 아들도 어머니도 '미친' 것이지 도저히 정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여성들이 사회진출을 못하니까, 집에서 집안일과 가족들 뒤치닥거리를 하는 대신에 가족을 길들이고 지배하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들이 가족을 위해서 희생해도 여자 이름으로 된 재산이 하나도 없으니, 가족을 지배할 정도의 힘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고부관계는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권력투쟁'이기도 한 것이었다.
일본 TV드라마에서 고부갈등이 부각되지 않게 된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가 된다. 80년대 후반부터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진출을 할 수 있다는 '남녀 고용 기회균등법'이라는 '법'이 제정되었다. '법'이 생기기는 했지만, 실제로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 '법'이 생겨 30년이 지났지만, 사회에서 남성과 동등하게 일하고 승진도 할 수 있는 자리에 갈 수 있는 여성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90년에 대학을 졸업한 내 동창도 하나 같이 다 남성과 동등하다는 '종합직'으로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거의 다 결혼하면서 회사를 퇴직했다. 당시 결혼 나이는 30세를 넘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결혼하면서 회사를 그만두지 않은 동창생은 IT계통뿐이다.
여성들이 놓인 사회적 여건이 달라지면서 TV드라마에서도 결혼해서 남자에 목을 매는 여성, 고부갈등이 있어도 참아야 하는 여성이 아무런 설득력이 없어지고 말았다. 동시에 '불륜'드라마가 일상이 되는 현상도 일어났다. 나도 매스컴에서 너무 '불륜'을 떠들기에 누구나가 '불륜'을 하는 줄 알았다. 내 동창생들 소식은 다 꿰고 있는데, '불륜'을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이혼한 사람은 있다. 가장 생활능력이 있는 친구가 이혼하고 재혼도 하더라. 현재, 가장 성공한 친구로 꼽히기도 한다.
여성들의 사회진출, 남성과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여성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집에서 어머니가 뒷받침을 해주지 않으면 직장생활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딸'을 가진 어머니는 자기도 젊었을 때, 일을 하고 싶었지만 못했다. 자신의 꿈을 투영하는 존재로 '딸'이 있기에 어머니가 '딸'이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자신이 못한 일을 이루는 '딸'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얻는 측면이 있었다. 이런 어머니의 서포트는 '딸'이 결혼해도 계속된다. 이전에 어머니들이 '아들'에 집착해서 성공시키고 싶었다면, '딸'을 가진 어머니도 '딸'을 사회적으로 성공시킬 수 있다는 꿈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아들'의 성장과 성공에 어머니의 희생이 있었다면, '딸'의 성장과 성공에도 어머니와 합동작전이 있어야 가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들'이 우선이고 '딸'은 뒷전이었다.
이전에는 여성들이 결혼하는 것이 필수였다. 결혼을 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기가 힘든 사회구조이기 때문에 결혼은 생존전략이기도 했다. 그러나, 남녀가 동등하게 일할 수 있다는 '균등법'은 고학력으로 남성과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딸'을 가진 어머니들에게도 희망을 줬다. '아들' 같은 '딸'을 가진 어머니들은 '딸'이 꼭 결혼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자신이 결혼해서 가족을 위해 살아본 결과 꼭 권장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딸'이 일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성취하고 자립적으로 살 수 있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 나중에는 결혼해서 '손자'를 만들어 이혼하고 와도 좋다는 식으로 양보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고부관계의 변화에 있어 결정적인 요인은 '남녀평등'은 지향한 제도, 사회적인 여건이었다. 여성들이 사회진출을 하면서 경제력을 가지고 자립적으로 살아 갈 수 있어 남편이나 가족에게 올인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지가 생긴 것이다. 남성과 동등하게 일할 수 있다는 '법'은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것에 기여한 바는 크지 않다. 정작, 그 '법'이 생겨서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고부관계와 여성들의 결혼관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