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회

일본 고부관계의 변화 3

huiya(kohui) 2019. 4. 22. 22:39

오늘 동경은 따뜻하고 습기가 많은 날씨였다. 아직 4월인데도 불구하고 여름, 장마철을 연상하게 하는 날씨였다. 월요일은 도서관에 가는 날로 도서관에서 새로 온 책을 좀 보고 왔다.

 

일본 고부관계의 변화를 내 주변 사람들을 사례로 보기로 하자. 어제는 '딸'이자, '며느리'입장에서 '시집'과 '시어머니'의 '거리'감을 썼다. 내 동창생 세대는 50대니까, 고부간의 갈등과는 멀어진 것이다. 그야말로 '거리'를 유지함으로 '갈등'이 생기는 것은 '원천봉쇄' 했다고 본다. '거리'는 아무리 한쪽에서 유지하려고 해도 다른 한쪽이 다가오면 '거리'에 변화가 생긴다. '거리'를 두거나 '유지'하는 것은 양 쪽에서 한 것이다.

 

솔직히, 내 동창생들이 '시집'과 '거리'를 두고 사는데, '시부모'가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돌보는 일'을 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나이를 먹기 전에 어느 정도 가까운 관계여야, 노후에 돌볼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 텐데, '거리'는 '기대' 자체를 없애는 면도 있다. 거꾸로 '친정'에 대해서는 결혼 후 집을 장만할 때도 '자금'을 지원받고 가까이 살면서 아이 양육도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는다. 그러면, '친정 부모'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부모를 돌보게 된다. '친정'과는 가까운 관계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시집'에 대해서는 '남편'이 신경을 쓰고 '남편'이 하게 될 것으로 본다. 이전 세대는 떨어져 있어도 '시집'과 '친정' 양 쪽을 돌보는 것이 여성이 해야 할 일이었다. 지금은 점차, 여성들이 주로 '친정' 부모를 돌보는 추세가 되어 가고 있다. 부모들도 노후 자신들을 돌봐줄 존재로 '딸'에게 '기대'를 건다.

 

내 주변에서 '시어머니' 입장을 들으면, 아들만 있는 사람은 일찌감치 나이를 먹으면 양노원에 들어갈 생각을 했다고 한다. 가깝게 지내는 이웃은 아들이 둘인데 둘 다 결혼했고 50대다. 한 아들은 아이가 없고, 다른 아들은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아들이 사는 곳은 차로 30분 거리라고 했다. 며느리에 대해서 일체 말하지 않는다. 가끔, 일이 있으면 아들이 오는 모양이었다. 몇 달에 한 번 정도다. 아이가 있는 아들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데리고 왔다고 한다. 지금은 손자들도 커서 자기주장이 있으니까, 손자들과 같이 오는 경우는 명절뿐이다. 명절에도 아들이나, 가족을 위해서 명절 음식을 하는 일은 일체 없다. 아들네 가족이 오면 외식을 하고 밖에서 헤어진다. 가족관계는 원만해서 문제가 없다. 이런 정도가 서로에게 부담이 없어 좋은 모양이다. 올봄에 지금까지 운전하던 큰 차를 처분했다. 아마, 자신이 양로원에 들어가도 아들들이 자신을 자주 찾아주길 '기대'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의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는 생각이다.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1도 '기대'가 없다. 

 

이웃은 형제 중에 위에 오빠가 살아 계신다고 한다. 아주 가끔 오빠와 만나서 식사를 할 때가 있다. 그때에 올케는 같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올케는 '시어머니'와 닮은 이웃을 보면 '시어머니'가 떠올라서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 올케에게 '시어머니' 즉, 이웃사람네 어머니가 심하게 시집살이를 시킨 모양이다. 이웃은 올케에게 잘해줬고 젊었을 때는 자기네 집에도 잘 왔는데 나이를 먹고 그런 말을 한다고 한다. 이웃사람 얼굴이 '시어머니'와 닮았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이 이웃도 나이를 꽤 먹었지만, '시집'에는 거의 간 적도 없을 정도로 '거리'가 있었다. '시집'에 대한 이야기도 일체 나오지 않는다. 이 분은 70대 후반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 50대를 넘은 사람은 어떨까? 아는 사람도 아들만 둘이다. 둘 다 공부를 마치고 일을 하고 있다. 큰 아들이 직장에 적응을 못해서 걱정하던 시기에는 고민도 들어줬다. 둘 다 20대 초반이어서 젊다. 큰 아들이 사귀는 아가씨가 있다는 말을 듣고, 상대방과 상대방 가족사까지 들었다. 결코 무난하거나 평탄하지 않은 가정환경이었지만, 아는 사람은 좋게 받아들였다. 이 사람네는 드물게 부부 사이가 아주 원만하고 좋다. 큰 아들과 사귀는 아가씨가 잘 지내길 원한다. 항상 그 아가씨가 일하는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염색도 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서로 얼굴을 보는 모양이다.

 

둘째 아들에게도 사귀는 아가씨가 있는 모양이다. 그 아가씨네도 할머니부터 어머니, 딸에 이르기까지 여자들밖에 없는 집안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아들을 무척 마음에 들어해 준다고, 아들이 일하는 직장까지 찾아가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는 사람은 아들들이 사귀는 아가씨 집안에 대해서 전혀 편견을 가지고 보지 않았다. 좋게 보고 본인들이 좋다고 하면 전적으로 본인들 결정에 따르려고 생각한다. 나는 아는 사람네 부부가 워낙 원만하게 사니까, 아들들도 부모를 따라 원만한 가정을 이루지 않을까 본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가정에 대해서 들어도 걱정하는 말을 일절 하지 않는다. 지금 세상에 젊은 남성이 연애만 해줘도 고마운 세상이다. 아들이 둘 다 사귀는 아가씨가 있고 결혼도 생각하고 있다면 인생 성공한 것이라고 본다면서, 젊은 사람들이 살아갈 미래에 '기대'한다.

 

아는 사람네는 지방에 본사가 있는 회사에 다녀서 여기저기 전근을 하다가 지금은 동경에 꽤 오래 근무하고 있다. 동향 출신끼리 결혼한 것이다. 퇴직하면 고향에 내려가서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거의 고향에 가는 일이 없다가 작년에 친정아버지가 쓰러지셔서 명절 때 남편과 같이 내려갔다고 한다. 고향에는 여동생네가 부모님 가까이에 산다고 하니 안심이다. 그런데, 남편네 가족이나, '시집'에 대해서는 전혀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친정에 대해서는 소상히 알고 있다. 요전에 만났을 때, 새 가방을 들고 있어서 물었더니 둘째 아들이 선물해 준 것이라고 기쁜 표정으로 말한다. 아들을 사랑하고 잘 성장해서 자신들의 길을 가고 있는 것에 대해 다행으로 여긴다. 그런데, 어느 날 하는 말이 "아들은 며느리 거니까"라는 말을 해서 웃은 적이 있었다. 아들에게 집착하면 안 된다는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상대를 만나 가정을 이루어 잘 살아 주면 고맙다는 것이다. 멀리 있는 '친정'이나, '시집'에 대해서도 자신들이 할 일은 하지만, 자신들을 희생해 가면서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는다. 그런 '기대'가 양 쪽에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들들이 독립해서 나가면 부부가 서로 일을 하며 사이좋게 살아갈 것으로 보인다. '시집'과 '친정' 양 쪽에 적당한 '거리'가 있는 경우다. 

 

두 케이스의 공통점은 부부 사이가 부부 사이가 원만하고 좋았다는 것이다. 내가 주위에서 듣고 본 결과, 부부 사이가 나쁜 경우는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이 미친다. 부부 사이가 좋으면 아이에게 문제가 있어도 둘이 합심해서 풀어 가거나, 이해하기 때문에 해결되지 않더라도 문제가 되질 않는다. 반대로 부부 사이가 나쁘면 아이에게도 영향을 줘서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엄마가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조성하지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집착도 하게 되는 모양이다. 아이에게 집착하면 또 다른 문제들이 생기게 된다. 이런 경우는 부모도 아이들도 힘들어진다. 가까운 사람네도 이런 케이스라서 나도 속이 상한다. 

 

일본에서 고부관계는 여러 단계를 거쳐서 지금은 서로가 상대에게 '부담' 되지 않게 '배려'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도시에서 보면 친척관계도 가깝게 살지 않으면 상당히 '거리'가 있다. 일본에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모든 '인간관계'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거리'는 서로가 건강하고 독립적으로 유지가 될 때는 '배려'가 된다. 한편으로 노약해서 도움이 필요할 때도 서로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거리'가 되어 있다. '거리'를 좁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안심해서 나이를 먹을 수 있게 그 사이를 메꾸는 복지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