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회

후쿠시마에서 피난한 엄마와 아이들

huiya(kohui) 2019. 4. 25. 00:30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습도가 높고 흐린 날씨여서 학교에 가는데 땀이 났다. 첫 교시가 끝나고 다른 일을 마치고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반납하고 새로 작성해야 할 서류를 위해서 필요한 것도 읽었다. 오후에 들어서 비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추웠다.

 

어제는 이번 주 토요일에 있는 제주 4.3 사건 추도 행사가 있는데, 같이 접수를 담당하는 왕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아주 긴 통화를 했다. 정신없이 수다를 떨어서 좀 피곤했던 모양으로 아침에 꿈까지 꾸다가 일어났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갔다. 

 

2011년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원전 사고, 방사능 오염을 우려한 농수산물 수입금지에 대해 WTO의 판정 이후에도 한국과 일본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어 있다. 한국에 대해 수입하라는 압력을 가하는 일본과 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수입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 입장이다. 다른 설명을 할 필요도 없이 한국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다. 일본이 하는 것을 보면 현정권은 한국이 아직도 자신들의 식민지로 취급하는 느낌이 든다. 그들 의식 저변에 있는 한국을 언제까지나 식민지로 여기고 싶은 우월감을 부끄럼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 보인다. 나는 솔직히 이번에 WTO에서 패소해서 한국이 후쿠시마와 그 주변 농수산물을 수입하게 되면 문제가 아주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수산물에 대해서 그렇지 않아도 미세 플라스틱 등으로 수산물의 안전성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데,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있는 수산물이 수입된다면 다른 수산물 소비까지 위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물론, 수산물을 생산하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이 크고, 시장 자체가 죽어간다. 한국사람들 심리적 영향은 어떻겠는가?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지진 이후 수산물 소비는 확실히 줄었다.

 

동경에서 주위에 물어보면 일본 사람들도 후쿠시마 산을 사지 않는데, 한국에 수입하라는 일본 정부는 억지가 대단하다. 거기에 내년 올림픽 때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에게도 후쿠시마산 식재료를 공급한다고 해서 동료에게 의견을 물었다. 동료는 할 말이 없다는 듯, 괴로운 표정이었다. 이 동료는 먹거리의 안전에 민감한 사람으로 남성이면서 집에서 요리를 한다.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농수산물의 안전성에 대한 감각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후쿠시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동경은 후쿠시마에서 농수산물을 공급받던 지역이며, 2011년 당시 방사능 오염지역에 포한된다고 보고 있었다. 동경에도 지역에 따라 방사능 오염 정도가 다르다. 내 주위에서 보면 물을 사 먹지 않던 사람들도 물을 사 먹고 나이 여하를 막론하고 식품의 안전성에 민감해져서, 방사능 오염을 체크하는 생협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으로 보고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에 대해 가장 민감한 사람들은 오염지역에 살던 사람, 아이를 가진 엄마들과 아이 엄마가 될 사람들이다. 방사능 오염된 지역이나 그 부근에서 살던 아이 엄마들은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이었다. 지진 이후, 쓰나미에 원전 사고로 이어지는 사이 긴박했다. 그동안 일본 정부와 동경전력은 원전 사고나 방사능 오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불안은 더욱 증폭되었다.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로 인한 피해, 피폭을 경험한 나라다. 그렇기에 방사능 오염에 대한 지식이 있어서 사람들은 더욱 불안했을 것이다. 방사능 오염 지역으로 정부에서 피난 지시를 받고 피난한 '강제 피난자'가 있다. 그 부근에서 방사능이라는 것이 피난 지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구분이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방사능은 흐르는 것이라, 피난 지시 지역 부근에도 오염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어린아이의 안전을 걱정하는 엄마로서 피난 지시가 없어도 자주적으로 아이를 데리고 피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자주 피난자'가 있다. 그런데, 일본 정부에서는 피난 지시에 따라 피난한 '강제 피난자'와 '자주 피난자'를 구분했다. 나쁘게 말하면 '자주 피난자'는 자기네가 피난하고 싶어서 피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는 '강제 피난자'와 마찬가지로 '자주 피난자'도 피난하고 싶어서 피난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중에는 피해 보상금 문제로 차가 생기고 한국에서 세월호 유가족에게 하는 것처럼 피해자들이 엄청난 보상금을 받아서 벼락부자라도 된 것처럼 알려져 차별을 받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원래, 보상금은 그 사람들의 피해에 비해 엄청난 돈이 나올 수가 없다. 보상금을 내는 사람들은 정부와 동경전력이라는 막강한 권력이다. 세상에 막강한 권력을 가진 쪽에서 약자인 피해자에게 성의를 다한 사죄나 제대로 된 보상을 하는 예는 지극히 드물다. 일본은 대를 이어가면 그런 전통이 있다. 마치, 피해자인 약자의 잘못처럼 일이 돌아간다. 

 

현에서는 '자주피난자'에 대해 무상으로 제공되던 주택이 2017년부터 없어진다고 한다. 피난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사람들의 반발로 이사비용과 2년간 거주비의 일부를 보조하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데, 피난생활을 5년 이상하다 보니 가족관계도 많이 변해서 이혼을 한 가정도 꽤 있는 모양이다. 왜냐하면 어린아이의 안전에 대해서 가족 간에서도 서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부모와 같이 살던 경우, 처음에는 아이들 안전을 우선시해서 일시적 피난으로 여겼다. 하지만 방사능 오염은 일시적으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방사능 오염을 제거한다고 땅 표면을 깎아내는 작업을 해도 장소에 따라 오염 농도가 다르게 나오기도 하기에 엄마로서는 불안한 것이다. 시부모나 남편이 보기에는 다른 집에는 아이들이 있는데 우리 집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한 며느리가 유난스럽게 비추기도 한다. 남편도 처음에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협조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과 떨어져 주말부부로 지내는 것에 지쳐간다. 바람을 피우기도 한다. 양 쪽 살림을 하려니 경제적으로도 힘들다. 그래서 이혼에 이르는 것이다. 피난한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타지에서 외롭고 힘들게 버티다가 이혼을 하게 된다. 그 후, 외지에서 어린 아이를 데리고 엄마 혼자 벌이로는 생활하기가 어렵고 심리적인 병을 얻어 생활보호에 의지하게 되는 경우도 생겼다. 

 

다행히도 아빠가 피난한 지역에 직장을 잡아서 가족이 합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피난한 엄마나, 일 때문에 피난하지 못한 아빠도 고향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고향이라는 것은 단지, 살던 지역이 아니다. 오염되거나 피괴되지 않은 자연환경도 포함되는 것이다. 엄마와 아이들은 고향과 가족을 잃게 되고 아빠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가족과 고향을 잃게 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피난 지시를 했던 지역도 해제가 돼서 주민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도록 했지만, 불안한 사람들은 돌아갈 수가 없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제1원 자력 발전소에서 남쪽으로 10킬로 떨어진 도미오카에는 피난 지시가 해제 되어 6개월이 지났지만, 2%의 주민밖에 돌아가지 않았다. 실제로는 원래 살았던 주민들이 가장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려고 해도 도저히 불안해서 돌아갈 수가 없는 게 아닐까? 하지만, 정부나 동경전력에서는 돌아가라고 했는데, 자기네가 돌아가기 싫어서 안 가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런데, 피난 지시 지역은 단지 살던 사람들이 없어진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없음으로 사람들이 들어가서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런 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농사를 하거나 산이나 바다에서 먹거리를 조달하며 살던 사람들에게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당연했던 생활이 피괴되었다는 것은 참 견디기 힘든 일이다. 봄에는 나물과 버섯을 캐었다. 자기만 알고 있는 비밀의 송이버섯을 따는 곳도 있다. 나물이나 송이를 따도 오염이 심해서 먹을 수가 없다. 우물물도 쓰면 안 된다. 자기네가 수확한 쌀이나, 야채 과일을 주고받던 것도 할 수가 없다. 아이와 엄마 만이 아니라, 나이를 먹은 사람들에게도 미친 영향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자신들이 오래 살아왔던 고향이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피해만이 아니라,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안전한 생활을 할 수가 없게 공동체와 가족, 고향이 부서진 것이다. 

 

세상에 모든 위험은 약자에게 더 많은 피해를 준다. 약자이기 때문이다. 이번 WTO의 판결이후 일본에서 한국에 대해 하는 태도를 보면서 일본에서 목소리를 낼 수도 없이 숨을 죽이고 있는 사람들,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고향을 등져야 했던 아이들과 엄마들이 떠올랐다. 제발, 인간을 소중히 여겨주면 안 될까? '고령화'니 '저출산'이니, 일손이 부족하니 그런 개뼉다귀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안심해서 살아갈 수 있게 지켜주는 걸 우선해줄 수 없을까? 그 아이들에게는 엄마도 있다.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