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친절한 중국 여행기 6
2017/05/18 불친절한 중국여행기 6 – 사자림의 창살
오늘 동경은 건조하면서 쌀쌀한 날씨였다. 요즘 날씨변화에 주위 사람들도 힘든 모양이다. 여성학을 듣는 사회인 학생도 인사를 건넨다. 요새 날씨가 너무 변화무쌍하니까, 건강에 유의하시라고.
5월 18일, 아침에 학교에 가는 전철을 타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읽었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읽는 일은 거의 없기에 특별한 일이었다. 5.18 기념식에 관한 뉴스였다. 이번에 어떤 기념식이 될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를 읽으면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지금까지 살면서 뉴스를 보며 눈물을 줄줄 흘렸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세상에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었다. 주위사람 눈을 의식하며 조심스럽게 눈물을 닦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뉴스를 읽으면서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쌓인 것이 참 많았나 보다. 오늘 내가 안 것은 달님 대통령께서 내 마음 어딘 가에 쌓여 있었던 묵은 빚을 갚아 주셨다는 것이다. 나도 오늘 눈물을 흘리고 처음 알았지만, 마음에 무거운 빚을 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마음의 빚이라는 것은 어떻게 형용해야 될지 모르겠다. 같은 시대에 젊은이로서 같은 하늘 아래 살았다는 것, 그 일로 인해 자신의 속한 나라에 절망했다. 아무리 강요해도 나는 처음부터 ‘애국자’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매국노’가 될 일도 없다. 그냥, 그 나라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것이다. 그 일로 인해 결정적으로 그 나라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 후에 한국을 떠나 떠돌며 살고 있다. 광주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전혀 무관하지도 않다. 그 시대, 같은 하늘 아래 산 사람이 어떻게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암흑같이 숨 조이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나? 정작 당사자인 사람들의 ‘상처’에 비하면, 아프다는 말도 못 하지만, ‘상처’를 받았다. 나처럼 아무런 정치적인 성향이 없는 소시민도 절망했던 시간을 몸이 기억했었나? 상쾌한 눈물이었다.
중국, 소주, 졸정원에서 사자림으로 돌아간다. 졸정원을 나와서 배가 고파서 물만두를 먹었다. 나는 만두를 좋아한다. 이번에 가서 처음 먹는 만두라서 기대가 컸다. 기대와는 달리 만두가 작고 맛이 상해요리와 비슷한, 그저 그런 맛이었다. 고수가 들어 있었다. 나는 고수도 잘 먹는다. 만두는 북방 쪽이 훨씬 맛있는 것 같다. 기대가커서 그런지 좀 실망이었다. 사자림에 가니까, 졸정원보다 사람이 훨씬 적어서 편했다. 나도 졸정원에서 사람에 좀 익숙해진 것도 있다. 사자림에서는 주로 창살과 색유리창을 유심히 봤다. 나는 꽂힌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사자림이 졸정원보다는 좀 못해도 나에겐 보는 재미가 있었다. 창살의 모양을 봐도 소주의 문화가 얼마나 세련되었는지 가늠이 간다. 창살을 유심히 보면 세련되었으면서도 따뜻하고 귀여운 맛이 있다. 세련됨이 차갑지 않게 친근감을 가진 사랑스러움이 있다. 저 무뚝뚝한 돌들과는 세계관이 다르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