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허한 날
2014/08/11 마음이 허한 날
오늘 동경은 태풍이 온다고 날씨가 급격히 선선해졌다. 내일 일요일까지 선선하고 비도 오는 모양이다. 오늘 최고기온이 27도로 선선했지만, 집안은 그동안 담겨있던 열기로 오후가 되어도 후지덥근했다.. 태풍이 둘 연달아 온다고 날씨가 이렇단다. 새벽부터 장대같이 비가 왔다. 낮에는 거의 가랑비 수준으로 오다가 그치다가를 반복했다.
어젯밤에 잠을 늦게 자는 바람에 오늘은 오전 중 잠을 자고 말았다. 요즘은 모기향을 피우고 자는 데도 모기가 있다. 모기가 극성스러움을 업그래이드했는지 아니면 내가 약해진 건지 모기에 물리면 가렵고 붓는다. 모기향을 친환경을 써서 모기가 얕보는 건가? 매미 또한 극성스럽기 짝이 없다. 도대체 몇시에 자는지, 아주 깊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잠깐 조용하고 나머지는 극성스럽게 울어댄다. 매미울음소리 때문에 더위가 더 덥게 느껴진다. 지금은 비가 와서 매미도 잠잠하다. 가끔은 방으로 날아들어와 제멋대로 박제가 되어 있기도 한다.
날씨가 갑자기 선선해서 그런지, 밖에 나가서 쇼핑을 하고 싶어 졌다.. 직접적인 이유는 아침에 시든 꽃을 버린 것에 있었다. 꽃이 시든 것과 쇼핑의 인과관계는 전혀 모르겠다. 요사이 무섭게 더운 날씨에 몸도 아파서 생명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식량조달 차원의 쇼핑을 했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귀찮은 일이 많다. 집도 이사를 했으니 필요한 것이 있다. 청소기에 쓰레기를 모으는 팩도 갈아야 하고, 커튼을 고정시키는 것도 사서 달아야 하고, 백 엔 숍에서 파는 실이 예쁜 것도 있어서 사고 싶다. 자질구래하게 살 것들이 좀 있다. 창밖을 보니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긴소매를 입고 다닌다. 비가 오는 데도 나가, 내일도 선선하다는 데, 내일 나갈까? 계속 망설인다.
우선은 모기향과 땀에 전 냄새가 나는 몸을 씻는다. 인간의 몸에서 배출되는 것은 하나같이 왜 냄새가 날까? 먹을 때는 그렇게 향기롭던 복숭아도, 수박도 땀이 되어 나올 때는 결코 향기롭지 않다. 나갈 준비를 하느라고 옷을 챙겼다. 그런데, 마땅한 옷이 없다. 요즘처럼 무지막지하게 더울 때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지 궁금하다. 나는 요새 매일 요가바지를 입고 윗옷은 몸에 달라붙지 않는 옷을 입고 다녔다. 그것도 땀이 나면 몸에 감기지만 말이다. 어제는 위아래로 체육복을 입고 나가면서 사람들이 왜 등산용 옷을 평상시에 입고 다니는지 이해가 갔다. 옷이 훨씬 편했다. 그런데 내 스타일이 아니다. 아무리 실용적이라도 내 스타일이 아니면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몸에 달라붙지 않는 펑퍼짐한 반바지를 사고 싶은 데, 어디서 파는지 모른다. 이래저래 주변을 한바퀴 돌 요령으로 나갔다.
처음에 들린 곳은 침구상이었다. 거기서 이불에 쓸 시트와 벼게닛을 샀다. 이불시트는 하얀 것만 쓰는 데, 좀 오래되어서 바꿔야 하는 데, 마음에 드는 게 잘 없다. 우선은 좀 쓸 것 같다. 다음은 처음으로 간 곳인데, GU라고 유니크로의 세컨드 라인이다.. 사실은 유니크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 실용적인 걸 사기도 한다. GU도 학생들이 말하길 품질 대비 가격이 싸다고 했다. 학생들이 말을 듣고 젊은 사람들 옷 만 있는 줄 알았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요근처에서 입을 옷을 사려고 갔다. 그랬더니 세일중이기도 하지만, 가격대가 저렴했다. 옷을 입어보고 꽃무늬 몸빼바지와 레깅스를 샀다. 저렴한 가격에 입을 만한 것들이 있었지만, 우선은 입어보고 다시 사려고 하나만 샀다.
다음은 백화점으로 지하층 식료품 매장에 갔다. 여기서 서양과자 종류를 사는 데, 오늘은 많이 망설였다. 여기서 사면 무거운 걸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올리브와 고추절인 것만 샀다. 고추절임은 보기에 예쁘니까, 친구에게 줘도 되고… 그리고는 드디어 백 엔 숍에 갔다. 백 엔 숍에서 살 것들이 오늘 쇼핑의 주된 것들이었다. 청소기에 쓸 팩을 사고 커튼을 고정시키는 것이 한 종류밖에 없어서 그걸 샀다. 그리고 실을 사려고 봤더니 지난 번에 산거와 로트번호가 다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실을 써보고 다음에 와서 필요한 걸 한꺼번에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백 엔 숍을 둘러보면서 집에 필요한 게 뭐지 생각해도 생각이 안 난다. 벌써 쇼핑을 몇 시간째 하고 있으니 지친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토요일에 날씨가 선선한 데도 가게나 백화점에도 사람들이 없다. 한산하다. 아, 그렇구나 오봉이라고 한국으로 치면 추석처럼 사람들이 휴가를 받아 귀성하는 계절이라, 동경에 사람이 적어지는 시기인 것이다.
내가 뜬금없이 마음이 허한 느낌이 들었는 데, 뜬금없는 것이 아니였다. 사람들은 돌아갈 고향이나 가족이 있는 데, 나는 없구나. 그래서 공허한 마음을 쇼핑으로 메꾸려고 선선하다는 핑계로 집을 나와 서성이는 것이었다. 어제는 큰 맘을 먹고 큰 수박을 사려고 가방을 끌고 나왔는 데, 수박이 비싸도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그래서 안샀다. 오늘 백화점에서 수박을 보니까, 비싸도 아주 큰 것이 있었다. 저 정도라면 굴려서라도 집에 가져가서 파먹을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지 않았다. 비싸서 못 산 것이 아니라, 내가 저걸 사서 굴려가다가는 정말로 미친 사람이 될 것 같아서다.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백 엔 숍에서 나오면서 산 것은 다 배낭에 넣었다. 몸이 완전히 정상인 상태가 아니라서 무리를 하면 안 된다. 오는 길에 항상 들르는 마트에 들렀다. 어제 사지 않았던 수박이 오늘은 가격이 20% 내렸다. 어제보다 수박도 큰 것 같다. 마음이 흔들린다. 사실은 수요일 저녁에 수박을 봤다. 가격이 비싸졌지만, 커서 사려고 금요일 저녁에 가방을 끌고 갔던 것이다. 하필이면 가방이 없을 때 꼭 살만한 가격에 큰 수박이 나오냐고… 포기했다. 가까운 곳에서 파는 작은 수박을 많이 먹으려고… 샐러드 드레싱과 참치 통조림을 샀다.
사건은 마지막에 들른 마트에서 일어났다. 이 시기에는 과일이나 야채가 비싸진다. 생산자나 시장이 휴가로 쉬기 때문에 공급자체가 적고 휴가가 끝나서 제대로 공급될 때까지 가격이 비싸고 신선한 야채가 적다. 그래서 어제 야채와 과일을 좀 사뒀다. 그런데, 내가 간 시간대가 늦어서 그런지, 망고가 싸게 나왔다. 복숭아도 싸고, 내가 사는 닭도 쌌다. 허리가 아파서 물건을 많이 들지 못한다는 것도 잊고 사고 말았다. 엄청 많이 샀다. 특히 망고를 25개나 샀다. 망고나 복숭아는 하나씩 곱게 포장되어 상자에 들어있는 걸 다 까서 알맹이만 들고 왔다. 들고 오면서 부딪친 것도 있지만, 짐을 적게 하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많이 샀다. 집에 와서 늘어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옥수수를 삶고 닭을 씼어서 냄비에 넣고 삶기 시작했다. 망고는 정리해서 성을 두 개나 쌓았다. 내 인생에 망고로 성을 쌓는 일이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지금 내 부엌은 망고와 복숭아로 넘쳐난다. 사람들은 고향에 가는 시기에 나는 망고와 복숭아를 먹으면서 허한 마음을 달래야지. 아주 조금 반성했다. 마음이 허할 때는 쇼핑을 가면 안된다. 생각없이 너무 많이 사서 들고 오는 게 힘든다. 그리고 쇼핑으로 결코 허한 마음이 메워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허기진 배는 채울 수가 있다. 허기진 배를 맛있는 것으로 채우는 거, 중요하다.
목요일 보라색을 좋아하는 언니가 생각나서 산 것, 오늘 아침에 쓸모없는 실로 내가 입을 여름옷을 짜려고 실을 꺼냈다. 쓸모없는 걸 살리는 거 좋아한다. 오늘 쇼핑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