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생활

채워진 냉장고

huiya(kohui) 2019. 9. 3. 09:57

2013/09/04 채워진 냉장고

 

오늘 동경은 아침에 비가 와서 좀 서늘한 날씨였다서늘한 것이 갑자기 가을이 확 온 느낌이었다어제도 최고기온이 34도였으니 오늘은 최고기온이 30도로 아주 선선한 날씨다올해 여름에 내가 체득한 것이 있다면기온을 1도 단위로 체감한다는 것이다. 30도 이상에서 정확히 1도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다무더운 여름은 나를 땀 흘리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온도계로 변신시켰다내가 비록 옷을 개구리색으로 입어서 개구리가 된 기분으로 변신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이지만온도계로 변신할 줄은 몰랐다개구리는 나름 웃기기라도 하지온도계는 솔직히 재미가 없다이런 걸 팔자라고 하나아니면 운명… 팔자나 운명이라는 단어도 써 본 적이 없는 데…

 

밤이 되어 바람이 불고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오는 낌세가 아무래도 그냥 비가 아니라작은 태풍이 지나가는 것 같다… 태풍인가?

 

어제는 맑은 하늘에 더운 날씨였다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신오쿠보에 나갔다
내 책 작업하고 있는 출판사의 편집자와 만나기로 한 거다. 현재는 편집을 배우는 입장이다그리고 NPO 활동도 하고 있다전철을 타려고 역에 갔더니가까운 역에서 사람이 선로에 들어갔다고 전철이 늦어진단다내가 줄을 서있는 곳에서도 맨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이 선로에 들어가려고 하다가 만다몇 번이나 되풀이하면서 사람들 시선을 끈다나도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쳐다본다금방 전철이 올 텐데 눈앞에서 사고가 나는 꼴을 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다. 근데그 사람은 그냥 사람들 시선을 끄는 게 목적이었는지, 그러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동경에서 자살이나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일상적이다눈앞에서 선로에 뛰어내리려고 깐죽대는 멀쩡한 사람을 보니 화가 났다정말로 사고라도 나면, 큰 일인데, 많은 사람에게 불편을 줄텐데… 요새 전철을 타면 웃기는 일이 많다대낮부터 멀쩡한 젊은이가 술을 마시고 떠든다던지전철을 기다리는 데 줄도 제대로 안 서고 안전선도 지키지 않고 서있는 사람들전철이 달리는 데 바로 그 옆을 걸으려는 사람들… 안내방송으로 주의해도 안 듣는다. 기가 막히다내가 아는 동경이 아니다.

 

어제는 둘이서 신오쿠보역에서 만났다그리고 식료품을 사서 잘 가는 식당에 갔다평일날 오후라서 손님이 많지 않았다둘이서 순대국밥을 시켰다편집자가 연변에 유학했던 경험이 있다연변에 있을 때 시장에 가서 순대국밥을 사 먹었단다. 그 당시에 5위안이었다면서, 나는 순대국밥을 처음 먹었다한국에 있을 때도 순대를 그다지 먹은 적이 없었다근래에 와서 순대를 먹는다내가 가는 집에서 만든 것 만 먹지만그래도 먹는다이상하다식성이 변하는 건가… 어제 처음으로 순대국밥에 새우젓과 다진 양념으로 양념을 해서 먹었다그리고 둘이서 거의 네 시간이나 떠들었다이런저런 말을 하고 내가 요즘 완성한 뜨개질을 가져가서 보여줬다. NPO에서 한국어교실을 하는 데선생이라교과서를 가져와서 나에게 물어본다갑작스러워서 별로 말을 못 해줬다..

 

시내에 나가면서 생각을 해보니특별한 용건이 없이 그냥 사람을 만나는 게정말로 오랜만이다. 
내가 거의 사람을 안 만나니까… 그 전에는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났다바쁘기도 엄청 바쁘고… 그렇게 살기가 싫어서 사람들과 연락도 안 하고 만나지도 않는다식당에서 나온 게 밤 10시 반이 넘었다신주쿠까지 걸어가서 약국에 들러서 정노환을 세병 샀다시간이 늦어서 약국들이 문을 거의 닫았는 데다행히 열려있는 곳이 있었다역에 도착하니 11시다둘이 6시 40분에 만났으니 오랜 시간 떠든 거다. 그런데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죽이 잘 맞는 사람과 수다를 떨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나는 사람 낯을 가리는 편이라오래 알고 지내도 거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한편으로 죽이 잘 맞으면 금방 가까워진다편집자는 말하기가 편하고내가 하는 걸 재미있어해주는 사람이다내가 쓴 걸 읽은 사람이고내 강의도 들었고뜨개질도 재미있어한다. 그렇게 알아주고 재미있어해주는 사람 만나기도 드물다집에 도착하니 12시가 가까웠다나갈 때는 시장을 보려고 야심 차게 시장바구니를 둘이나 가지고 나갔는 데…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을 좀 보고 하다 보니 금방 2시가 가까워온다빨리 자야지.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날이 선선하다기분이 매우 좋다냉장고에 먹을 게 없어도 아침을 챙겨 먹었다그래도 별로 하는 일 없이 지내다가마지막 남은 인스턴트면을 삶아서 샐러드면을 만들어서 먹었다. 오랜만에, 정말로 오랜만에 산책에 나섰다.

 

단지 안 길가에 남자아이와 엄마가 길바닥에 죽은 벌레를 뒤집어 보고 있다내가 말을 걸었더니가까운 대학에서 일하는 영어선생이란다같은 단지에 사는 서양인 외모의 외국인들은 거진 그렇다뉴질랜드에서 왔단다아이가 있어서 남편도 같이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이혼을 했단다미안하다괜찮아요그러면 혼자서 애를 보고 일도 하겠네그러면내가 일을 안 나갈 때는 애를 맡겨놔도 되니까필요할 때는 말하세요저는몇 동 몇 호에 살아요그리고 헤어졌다.

 

산책을 다녀와서 마트에 갔다냉장고가 너무 허전해서 채우려고… 올해는 결국 수박을 한 번도 못 사고 지나갈 것 같다… 눈물 날 것 같다어휴수박도 못 사는 내 신세라니… 그동안 너무 더워서 3일이나, 4일에 한번 마트에 가는 것도 힘들었다그냥연명할 정도로 먹으면 되는 거지… 못 먹어도, 운동을 안 해서 뱃살이 늘면 늘었지절대로 줄지 않았다슬프게도 아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마트에 가서 양쪽 팔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사 왔다. 요거트가 8배도 다섯 개, 계란 열개닭 한 마리에 다리만 세 개 추가로 졸지에 다리가 다섯 개 달린 닭이 되었다양파도 사고과자도 좀 샀는 데야채가 부족하다그래도 아주 무거웠다닭에 생강과 다시마를 넣고 삶으면서 배를 깎아먹고, 콩가루로 만든 사탕을 먹었다처음 샀는 데엿같은 맛이 난다오늘 저녁을 배와 콩가루 사탕으로 때우면, 내일부터 닭을 먹을 수 있다삶은 닭을 그냥 먹기도 하고야채와 같이 샐러드를 만들어 먹고수프를 먹으면 한참을 먹을 거다채워진 냉장고 사진을 찍었다삶아지기 시작한 닭도 기념촬영을 했다냉동고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