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이지메 정치

huiya(kohui) 2019. 9. 3. 10:00

2014/09/03 이지메 정치

아래 내용은 어젯밤에 써서 올리려고 했는 데, 블로그가 열리지 않았다. 오늘 아침 10시 가까이에 겨우 열렸다. 그러니까, 어젯밤이 현시점이 되겠다.

오늘 동경은 오랜만에 맑았다. 어제도 하루 종일 비가 추적추적 와서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 같았다. 맑아도 기온이 많이 누그러진 줄 알았다. 웬걸 최고기온이 30도로 여름의 독기가 남아있는 더위를 유감없이 뿜어 었다

어제는 월요일, 새 책이 오는 날이라, 도서관에 갔다. 새 책이 한 권도 없었다. 카운터 직원에게 물었다. 월요일에 책이 새로 오는 데, 오늘은 없느냐고. 그 직원이 이상한 사람이라, 말을 하는 데 너무 어렵게 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못 알아듣겠다. 내가 갑자기 귀가 멀어졌나? 또 한 번 물었다. 직원이 하는 말, 보시다시피 책이 없으니까, 없는 거 아니냐고. 내가 기대한 말은 그 게 아니었다. 보통은 있는 데, 방학이라서 그렇다거나, 아니면 책이 정리가 안돼서 올라오지 않았다거나… 간단한 의사소통도 아주 어렵다. 이건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은 오전에 우체국에 갔다. 일주일 전에 부친 엽서가 요금이 2엔 모자라다고 돌아왔기 때문에 다시 부치기 위해서다. 아이고, 엽서는 벌써 도착한 줄 알았는 데…그리고, 책상 위를 조금 정리했다. 정리를 한다는 것은 책상 위에 쌓여있는 걸 하나하나 보고 버릴 건 버린다는 것이다. 조금 버렸는 데도 아주 많은 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이다. 정리하면서 쓰지 않은 우표를 발견 잘라내서 물에 담가서 떼어내 풀을 씻어내서 말렸다. 800엔어치나 벌었다. 좀 횡재한 기분이다. 더 정리하면 더 나올 것이다

요새 한국 신문을 보면 참 복잡한 심정이 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같은 현상이 보인다. 권력을 가진 정치가가 약자를 이지메 하는 정치를 본다. 일본은 좀 더 교묘하지만, 한국은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악질적으로 대 활개를 치고 있다. 그리고 약자는 한정된 소수가 아니라, 많은 국민이 약자가 되어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약자는 이지메를 당해 왔다. 근대국가에서도 ‘국민통합’을 내세워 약자를 이지메한다. 그러나 한국의 현재 상황은 ‘국민통합’과는 정반대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그리고 약자가 소수가 아니라 대다수처럼 보인다

오래전부터 일본 정치가들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욕하는 발언이 국제적인 문제로 발전해서 그 자리를 물러나는 걸 봤다. 같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반복되었다. 한때 나는 일본 정치가 중에는 저런 식으로 그만두고 싶은 사람들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보기에 그런 문제가 될 발언을 해서 본인이 얻을 게 뭐가 있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되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상처 받은 피해자에게 더 상처를 주는 발언을 해서 뭘 얻느냐고? 자신의 인격이 그 정도 수준밖에 안된다는 걸 증명하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었다. 멍청한 것인지, 정상이 아닌 건지, 그런 수준이다. 어떻게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하는지, 그래서, 일본 사람이라서 민족이 다르니까, 아무래도 남자여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요새 확실히 안 것은 일본 사람이나, 남자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디 사람이든 권력을 가졌다고 약자를 이지메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알았다. 약자를 이지메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다른 데서는 정치가로서 버젓이 활동하지 못한다. 이지메 원조국인 일본, 이지메는 일본의 문화라고 체념하는 나라, 노동재해 신청에 이지메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 이지메왕국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일본이다. 거기 야쿠자에게도 약한 사람 이지메하면 안 되고, 민간인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다. 야쿠자가 누구냐, 보통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불량배 중에 불량배, 실력 있는 불량배들이 들어가는 곳이 야쿠자 집단이다. 그 야쿠자 집단에서도 약한 사람 이지메하면 ‘존경’ 받지 못해서 승진도 못하고 출세 할 수가 없다. 도대체 ‘체면’이 안 서고 부하가 따라오지 않는다. 부하들이 얕보면 야쿠자 조직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결국은 돈이어도, 인간으로서 ‘의리와 인정’이 없으면 안 된다. 아무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야 하고 마약 중독되는 게 당연한 집단이라도 간부가 되고 톱이 되면 마약을 끊는다. 그 정도 의지가 없으면 간부가 될 수도 없고, 부하들 통솔을 못하니까. 철저한 실력주의라고 한다. 그래서, 마이노리티가 야쿠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코, 야쿠자가 훌륭하다는 것이 아니고 미화하는 것도 아니다. 요새 한국 정치가들 행태를 보면, 일본 야쿠자만도 못한 것 같다. 야쿠자는 여차하면 책임을 져서 손가락도 자르고 형무소에도 들어간다. 야쿠 자하는 사람들, 목숨 걸고 한다. 그래야, 야쿠자로라도 살아갈 수 있으니까. 권력을 등에 업고 약자를 이지메하는 사람들은 민족이나 성별, 국적과는 상관이 없는 인종들이다. 야쿠자조차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 사람들이니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솔선수범해서 약자를 이지메하는 게 정치인가? 그렇다면, 교육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아이들에게 뭘 가르치라는 말인가. 아예, 야쿠자가 훨씬 인간스럽고 멋있게 보인다

아니야, 인간답고 멋있는 것까지 요구하지 않을 테니까, 로봇이 속이 편할 것 같다. 로봇에게 이지메하는 프로그램은 넣지 말길 바란다.



도서관에 가는 길에 논은 벼가 아직 여물지 않았다. 텅 빈 야외풀장, 도서관을 쓰는 대학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