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 온 편지
2010/09/12 오사카에서 온 편지
오사카에 가면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고 가야 할 데가 있습니다.
오사카에서 온 편지와 내 답신을 소개합니다.
이메일은 제가 1992년에 만나서 인터뷰를 했던 재일 제주도 사람 일세의 며느리(일본인)에게서 온 겁니다.
先生 2009,2,27 선생님
こんにちは 안녕하세요?
すっかりご無沙汰してしまって申し訳ありません。
그동안 연락을 못드려 죄송합니다.
お手紙を書こうと思っていたのですが、なかなか書けず、
편지를 쓰려했으나 쓸수가 없어
月日が経ってしまった事をまず最初にお詫びします。
시간이 많이 지난 걸 양해 해주세요.
どうしても、手紙が書けないので、今日は、メールで
도저히 편지를 쓸 수가 없어 오늘은
お知らせをさせていただく事にしました。
메일로 알리기로 했습니다.
実は、昨年末におばぁちゃんが亡くなりました。
실은 작년 말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昨年の春に肺に癌が見つかって、
작년 봄에 폐에 암을 발견,
半年と言われていたのですが、
여명 반년이라고 했는데
12月の27日に永眠しました。
12월 27일에 영면하셨습니다.
幸いな事に癌の痛みはほとんどなく、
다행히도 통증이 거의 없어,
最後は眠るようにして
마지막에는 자는 것처럼
旅立ちました。
떠났답니다.
癌の事はおばぁちゃんには告知しなかったのですが、
암에 관해 할머니께 알리지 않았는데,
最後の方は自分でわかっていた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나중에는 자신이 알았던 것 같습니다.
昨年夏に骨折で入院して、ずっと病院暮らしでした。
작년 여름에 골절로, 쭉 병원에서 살았습니다.
何度かは自宅に連れて帰る事ができたのですが、
몇 번인가 집에 왔었지만,
病気の事は伏せてあったので、
병을 숨기고 있어서
韓国の親戚にも誰にも話ができませんでした。
한국에 있는 친척이나 다른 사람에게도 말을 못 했습니다.
年末にあわただしく葬儀告別式を済ませ、
연말에 급하게 장례, 고별식을 마치고,
2月には49日の法要も済み、
2월에는 49제도 마쳤답니다.
先生にお知らせしなければ、とずっと気になっていました。
선생님께 알리지 못해 걱정하였습니다.
こんなに遅いお知らせになってしまって、本当に申し訳ありません。
이렇게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遺影には、先生に連れて行っていただいた、
유영으로 선생님이 데려가 주신,
済州島で撮っていただいた写真を使いました。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을 썼답니다.
とてもきれいな遺影です。
아주 고운 유영입니다.
今、おばぁちゃんのお骨と遺影は鶴橋駅の近くにあるお寺に預かって
지금, 할머니 유골은 쓰루하시역
もらっています。
가까이 있는 절에서 모시고 있답니다.
1日と15日はお供えを持ってお参りに行くほか、
초하루 보름에 제물을 가지고 절에 합니다만,
1周忌まではなるべく
일주기까지는 되도록 매일 향을
毎日お線香をあげに行きたいと思っています。
올리러 가려고 합니다.
おばぁちゃんは亡くなりましたが、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こちらへ来られる時には、また
오사카에 오실 때는
是非お立ち寄りくださいね。
꼭 다시 들러 주세요.
2009. 3.15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1월중순부터 호주 캔버라에 있으며
3월 말에 동경에 갑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누구보다도 본인이 가장 힘들지 않으신지요.
결혼이후 쭉 같이 살아오셨고,,,
제 기억에도 좁고 오래된 집에서
민첩하게 집안일을 해치우던 할머니 모습이 떠오릅니다.
통증이 없었다는 게
정말 다행이었네요.
할머니와 저는 92년 이쿠노쿠 세이와샤가이간에 있는,
어머니학교에서 선생과 학생으로 만났답니다.
그리고, 제 연구를 위해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해주셨답니다.
할머니안테서 정말 많은걸 배웠습니다.
할머니는 옛날 제주도여성이 가진 강인함이랄까
끈질기게 살아가는 걸 보여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이 살아오신
제주도 문화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실은 제가 그동안 오사카에 안 간 건
할머니 같은 일세들이 돌아가셔서
이쿠노 모습이 너무 변해서였습니다.
요즘은 다른 의미로 더 변했지만,,,
이쿠노에서 일세들이 안 보이는 건
참으로 쓸쓸한 일입니다.
할머니는 저 세상에 가셨지만,
이 세상에 있는 저희에게 아주 많은 걸 남기고
가셨습니다.
오사카에 가면 꼭 들리겠습니다.
메일을 받은 건 2월27일, 답신을 보낸 건 3월15일이다.
메일을 받고 눈물이 앞을 가려 답신을 쓸 수가 없었다.
유영 사진에 관해서 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제주도에서 재일동포를 위한 복지사업 중 고향방문 사업이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재일동포를 위한 복지시책 입안에도 관여를 했고, 관동지방 복지상담원도 했었다.
고향방문 사업에 참가자를 모집할 때 할머니 안 테 전화로 알렸다.
나는 관동지방 인솔자로 가서 제주도에서 할머니와 만났다.
참가하신 분들은 정말 기뻐했고, 제주도에 고마워했다.
그 마음을 저 세상 가실 때 까지도 간직했다.
이 할머니는 내 학생 중 최고의 학생이다.
나는 선생이라는 명목으로 여러 나라 다양한 계층의 학생들을 만난 편이지만,,
이 학생 안 테 배운 게 제일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제주도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 할머니는 글을 몰랐지만, 대단히 똑똑했고,
씩씩했다.
왜냐, 일본 조직폭력단에 속한 단 한 명이 여자로서
조직에 일원으로 일을 해
남편이 돌아가신 후 자식 다섯을 잘 키워 내셨다.
대단하다.
일본 며느리가 옛날 제주도 사람처럼 초하루 보름을 지키다니.
재일 제주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문화를 소중히 여겨 대를 물린다.
일본 며느리일지라도.
일본에 사는 제주도 사람 일세들이 소중히 여기고 지키려 했던
제주도 문화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