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 여름방학이 끝났다
2012/09/14 으악, 여름방학이 끝났다
동경은 아직도 최고기온이 33-34도다. 최저기온도 25도가 넘는다. 즉, 열대야다.
못 믿겠죠. 저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입니다. 창밖에서는 귀뚜라미가 울어댑니다. 서울은 일기예보를 보니, 덥지도 춥지도 않은 좋은 계절로 들어섰다. 부럽다.
나는 여름이 덥다고, 더워서 일하는 효율이 나쁘다고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벌써 여름방학이 끝나간다. 다음 주부터 개강이다. 그 것도 갑자기 어제 알았다. 그런데 아직도 논문을 못 마쳐서 다음 학기 준비는 손도 못 댔다. 아니, 새로운 과목중 한 과목은 했다. 중요한 과목, 일주일에 두 번있는 과목을 전혀 못했다. 개학날 방학숙제를 못한 심정보다 심각하다. 이건 큰일이 난 것이다. 그야말로, 으악, 소리가 난다. 등에서는 식은 땀이 주르르 흐른다. 그러나 어쩌리오, 내가 내 발등을 찍은거나 마찬가지니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일. 정말로 내가 내목을 조르고 싶은 심정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대책없는 인생을 살려는 건지. 부끄럽고 한심한 인생이다. 그런 주제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말을 할 수가 없다. 인간이 양심이 있어야지. 나처럼 살면 안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지만, 약간, 챙피하다. 물론, 내게도 할 말은 있다. 누가 이렇게 미친듯이 더울 줄 알았냐고….
지난 학기가 끝날 때, 다음 학기 수업을 준비한다고 책을 트렁크로 하나 가져왔는데, 전혀 읽지 못했다. 수업준비를 못한것이 거의 사기꾼 수준이다. 나는 자칭 ‘사기꾼’이라고 한다. 커버하는 영역이 넓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전문분야가 뭔지 모를 정도이다. 일본은 전문분야가 아주 세분화되어 있어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대학 교수회의에서 검증을 거친것이기에, 정말로 사기는 아니다. 그리고 시스템상 사기를 칠 수도 없다. 이건 혹시 오해가 있으면 곤란하니까, 쓰는 것이다. 그냥, 내가 스스로 ‘사기꾼’같다고 느낀다.
내일은 고베에서 친구가 온다. 일주일 전에 동경에 온다고 시간을 비워두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도 친구가 올 때까지 논문을 마칠 예정이었다. 내일 친구가 오기 직전까지 논문을 써도 못 마칠 것 같다. 모레 아침에는 친구딸 둘이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집에 온다. 일본은 이번 주말이 월요일까지 연휴이다. 우리집에 머물면서 동경에서 지내고 월요일에 돌아갈 예정이다. 친구네 가족이 우리집에 오는 일은 아주 드물다. 그래서 나름대로 좋은 시간을 보내게 준비를 하고 싶은데 전혀 시간이 없다.
내일 친구가 와서 역으로 마중나갈 때 트렁크를 끌고 나가서 시장을 보고 식량을 사와야 한다. 쇼핑리스트도 만들어야지. 내가 먹는 게 부실해서 원래 먹을 게 없는 데, 요즘은 식량조달을 못해서 식량이 거의 없다. 내일 먹을 건 있다. 지갑에 100엔도 없이 지내는 게 며칠이 지났다. 집 밖에 안나가면 돈을 쓸일이 없으니까, 돈이 없어도 전혀 불편한 게 없다. 단지 집에 먹을 게 너무 없어서 친구네 가족에게 미안할 뿐이다. 어제는 먹을 게 없어, 드디어 통조림으로 토마토소스를 만들고 마지막 남은 스파게티 봉지를 열었다. 나에게 통조림은 비상식량이다. 더워서 나가기 싫은 것과 논문에 매달려, 식량조달을 못한 것이다. 나의 생활실태가 친구에게 알려지면 안된다. 아마, 기가 막혀할 것이다.
내일도 청소를 하겠지만, 오늘 내가 거실처럼 쓰면서 일하는 방, 형광등을 떼어서 씻었다. 형광등 갓에는 그동안 벌레들이 죽어서 쌓여 있었다. 씻어서 물기를 닦고 원위치로 복귀를 시켰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청소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은 좀 많이 씻었다는 게 약간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얘가 불이 안들어온다. 다른방 전등을 옮겼더니, 불이 어둡다. 하필 이렇게 때를 맞춰 내 생활을 더 궁상스럽게 연출해 가는 지 나도 모르겠다. 오늘 여름이불도 빨았다.
친구네는 생활하는 스타일이 나와 아주 다르다. 친구네는 억척스럽게 일하는 스타일이다. 친구네 집에 가도 그 많은 식구들이 일제히 식사를 만들고, 하고, 치운다. 단체행동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거의 군대식 같다고 보면 된다. 통제와 규율이 딱 잡혀있다. 나는 그 게 긴장이 된다.
그래도 어쩌다가 오는 친구네 가족들이라 반갑고, 아이 때부터 봐온 커오는 손자들을 2년만에 만나는 거다, 나는 같이 지낼 생각을 하니 기쁘다. 문제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친구가 올 때까지 얼마나 일을 많이 해서 친구네가 지낼 수 있게 테이블과 집안을 정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참고자료를 테이블위와 의자에 쌓아 놓고 들적거리면서 논문을 쓰니까…
애효, 전혀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