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회

유학생 후배

huiya(kohui) 2019. 9. 10. 12:16

2018/09/13 유학생 후배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흐린 날씨였다. 오후에 밖에 나갔을 때는 습기가 많은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밤이 되면서 촉촉히 비가 왔다. 오늘은 집에서 지내면서 피로회복을 하는 중이다.

 

오후에 아는 사람을 만나러 공원에 나갔다가 마트에 다녀오며 잠깐 바깥공기를 쏘였다. 아는 사람들은 주로 공원 주변에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다. 올해 8월에 들어 갑자기 말을 하게 되었다. 이전부터 내가 다니는 길이지만, 나는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본 적이 없다. 그중에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도 한 명 있어서 인사를 하다 보니 자연히 그 주변 사람들과도 말을 하게 되었다. 그 중에는 전에 한국어를 공부했다면서 한국을 좋아해서 여러 번 간 적이 있다는 분도 있다. 항상 아픈 강아지를 유모차에 싣고 와서 풀밭에서 산책을 시키는 분은 취미로 소품을 만든다고 한다. 어제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잠깐 봐서 오늘 오후에 산책 나오는 시간을 물어서 공원에서 만났다. 소품을 만드는 분께 내 실을 좀 나눠주고, 한국어를 공부했다는 분에게 슬리퍼를 주기 위해서다. 실을 나눴더니 눈을 반짝거리면서 좋아하신다. 그러면서 자신이 군 천연효모 식빵을 한 덩어리 선물로 주셨다.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받은 기분이다. 슬리퍼도 예쁘다고 좋아하신다. 이렇게 이웃들과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어제도 야채를 사러 갔다가 농사꾼 아저씨에게 들깨와 비슷한 시소 열매를 많이 얻었다. 내가 야채 무인판매 단골이라 서다.. 지나가는 말로 한국 애호박이 아주 맛있는데 일본에서는 왜 그게 없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씨를 살 수 있다면 자신이 만들어 보겠다고 한다. 애호박 씨를 어떻게 입수하는지 알아봐서 알려주기로 했다. 운이 좋으면 이 동네에서 애호박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5일 서울에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나리타공항에 갔다. 원래는 20분 늦게 도착할 예정이었다. 준비하다가 시간이 어정쩡하게 남아서 20분 일찍 나가 예정보다 빨리 나리타에 도착한 것이다. 도착했더니 내가 타는 비행기가 1시간 늦게 출발한다는 안내가 나오고 있었다. 너무 일찍 간 것이다. 체크인해서 짐을 맡겨놓고 공항에서 기다릴 요량으로 걷는데 누군가 나를 째려보는 시선을 느꼈다. 아무리 화장을 안 하고 차림새도 수수하지만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정도는 아닌데 왜 그런가 하고 봤더니 아는 사람일 것 같다. 몇 년만인가, 오래 (30)부터 알고 지내던 유학생 후배였다. 이런 곳에서 우연히 만날 확률은 정말로 드물 것이다.

 

나도 나이를 먹지만 매일 봐서 자신이 얼마나 나이를 먹는지 잘 모른다. 눈 앞에 있는 후배는 흰머리에 정신없는 차림새,  피곤에 찌든 얼굴이 나 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였다. 실은 후배 나이를 몰라서 이 날 처음으로 물어봤다. 나보다 9살이나 젊다고 한다. 그 후배가 10대 후반, 내가 20대 후반에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까마득하게 어른이었던 셈이다. 후배는 내가 아는 사람 중 한 명이라, 알고 지내도 개인적으로 말을 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개인적인 것은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후배는 세상 물정 모르게 사는 사람이었다. 이번에 봤더니 나이도 먹었지만 고생하는 분위기가 물씬 풍겨서 당황스러웠다. 체크인을 하고 둘이 공항에서 비행기가 나는 걸 볼 수 있는 장소에 가서 잠깐 수다를 떨었다.

 

남편이 디자인 사무실을 했는데 건강이 나빠서 일을 거의 못한다고 한다. 지금은 자신이 일을 해서 가족들이 생활하고 있단다. 아이가 셋으로 첫째는 대학을 졸업해서 좋은 회사에 취직했고, 둘째가 대학생에, 셋째가 딸로 고 2라고 한다. 후배는 중국 출신이다.. 이번에 들었더니 항주 출신이라고 한다. 후배 말로는 아이를 키우면서 전업주부로 살다가 남편 건강이 악화되어 40대 중반부터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만 키우는 전업주부가 아니라, 남편 회사 일을 도우면서 작은 가게도 했다. 설사,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전업주부로 아이를 셋 키우는 것도 어딘가. 유학생들은 바쁘다. 학교를 다니거나 사회에 나와도 바쁜 것은 마찬가지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또 얼마나 바쁜가? 자신의 일을 하면서 살기에 바빠서 남이 어떻게 사는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살다 보니 이렇게 시간이 지난 것이다. 후배는 내가 7년 정도 살았던 고마바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자기네 아이들과 내가 살던 집 앞을 지날 때는 아이들에게 항상 내 이야기를 한단다. 여기가 아는 선배가 살던 곳이야. 그 후배는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대학으로 유학 온 경우다. 아직 중국이 가난했던 시절에 사비로 학부 유학할 정도니까, 상당한 부잣집 딸로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천방지축이었다.

 

학부 학생 때, 스키 갔다가 스키장에서 만난 남편(일본인)과 눈이 맞아서 연애하고 결혼했다. 남편과는 나이 차가 약간 있다. 주위에서는 남편이 큰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디자인 사무실을 하는 사람이라,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큰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외국인과 결혼하면, 승진에서 배제된다. 공무원의 세계는 두 말 할 것도 없다. 남편과 아이들이 외국인 엄마로 인해 회사와 학교, 사회에서 이지메를 당하는 것이 당연한 불문율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일본 사회에서 국제결혼한 커플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가 무척 어렵다. 물론, 주위에서 아는 사람들이 남편을 만나서 인물을 봤다. 철부지 후배가 연애해서 결혼한다고 해도 주위에서 아는 사람들이 상대를 봐서 영 아니면 반대했을 것이다. 우리는 후배의 든든한 뒷배경으로 남편도 후배를 우습게 보지 못했을 것이다. 결혼하고 학부 학생 때 첫째를 낳았다고 한다. 아이를 일찍 낳은 것이다. 아이 셋을 다 사립학교에 보내면서 도대체 어떻게 다 감당했냐고 물었다. 제가 어떻게 아이를 다 사립학교에 보낼 수 있었는지 아세요? 중국 경제가 좋아서 제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이들을 키우지 못했을 거예요. 아이고, 그러면 그렇지. 지금도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남편과는 사이가 좋은지 물었더니 사이가 좋다고 한다. 참 다행이다. 열심히 일해서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고 자립시키면 원래 자신이 하고 싶던 출판을 하고 싶단다. 디자인 사무실에서 출판을 할 수 있단다. 지금은 출판 사정이 어려워서 잠시 쉬고 있지만, 저는 돈이 되지 않아도 '문학' 책과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내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아직 꿈을 꿀 수 있다니 다행이다. 꿈을 꿀 수 있는 희망이 있다니 다행이다. 그 건 나중이고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건강을 챙겨야지. 네가 쓰러지면 큰 일나. 그야말로 후배가 그 집안의 대들보다.

 

나는 흰머리가 많아도 염색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후배에게 남편과 아이들이 있으니까, 염색도 하고 외모도 좀 챙겨라. 아이들이 너를 부끄럽게 여기면 어쩌냐고 쓸데없는 잔소리를 했다. 실은 내가 철딱서니 없던 후배가 갑자기 고생하는 아줌마 모습으로 나타나서 당황해 적응이 안 된다. 처음으로 후배와 개인적으로 말을 했더니 천방지축으로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정신이 건전하게 똑바로 박혔다. 제가요, 아이들을 엄하게 키웠어요. 저처럼 철딱서니 없는 어른이 되지 말라고, 엄하게 키웠어요. 그래, 잘했다. 젊은 나이에 땅설고 물선 외국에 와서 결혼하고 주위에서 도와주는 사람 없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니. 고맙게도 아이들이 말도 잘 듣고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나왔고, 괜찮은 곳에 다닌다. 2 딸도 다니는 학교에서 성적이 수석이라고 한다. 아이고, 다행이다. 고마운 일이다. 아무리 부모가 고생하면서 한다고 해도 아이들에게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힘들다.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일본도 엄격한 카스트가 있는 학력사회다.

 

후배가 일을 쉬는 날 만나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후배를 만날 때 뭔가 챙겨주고 싶어 집안을 둘러봤다. 가져다줄 것이 없다. 마른 표고버섯을 꺼내고 쌈장을 만든 것을 덜었다. 워낙 살림이 변변찮아서 나눌 것이 별로 없네. 내일 야채 무인판매에 가서 야채가 있으면 사뒀다가 가져가야지.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서 친척보다 훨씬 반갑다. 각자가 사는 길은 달랐어도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연대감이 있다.

 

이번에 만나서 새삼스럽게 느낀 것은 이전부터 다른 나라 친구들과 가깝게 지냈지만, 외국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후배도 중국 출신이지만 중국사람이라서 어쩌고 생각한 적이 없다. 물론 나에게 한국사람이라서, 다른 친구에게 말레이시아 사람이라서, 그런 적이 전혀 없다. 항상 개인이었다. 요즘에는 중국사람 어쩌고 한국사람 어쩌고 이상한 말들을 하더라고, 우린 그런 걸 생각한 적도 없는데, 사람들이 이상해. 나는 그런 이상한 추세에 따라갈 생각이 젼혀 없다. 어느 나라 사람이면 어떠냐,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데 돕지는 못할 망정 이상한 말을 하지 말길 바란다.

 

그 날 예정과 달리 나리타에 일찍 간 것, 비행기 출발이 한 시간 지연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 후배를 만나라고 평소에 가지 않는 나리타공항에 간 것이다. 후배도 나리타공항에 간 것은 무척 오랜만이라고 했다. 만날 사람들은 어디서든 만나나? 우연이 아닌 것 같다. 후배와 나이를 먹어 다시 만나서 반가웠고 서로가 열심히 살아온 것을 알아주는 위안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철이 지났지만 접시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