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18 일본 며느리가 제주도 며느리 되다?!
어제저녁에 네팔 학생이 놀러 왔다. 그 아이는 네팔에서 동경에 공부하러 온지 석 달째 된다.
어제가 네팔에서는 큰 축제 날로 온 가족들이 모여 연장자가 젊은이에게 이마에 빨간 점을 찍어주고 축복해준단다. 그래서 자기도 일본집에 온 거란다. 저녁을 만들기가 싫어서 야끼소바로 간단해 떼우고 밤에 산책을 나갔다.
내가 사는 주변은 공원에 둘러싸여 있어서 마치 산길을 걷는 것처럼 한 시간을 걸을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산책하는 시간이다. 네팔아이도 산촌에 살던 아이라 산책시간이 되면 신이 난다. 달을 보며 걸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오늘 아침에는 알람시간에 맞춰 일어나지 못해 내가 깨워서 커피와 비스켓을 주고 일본어학교 시간에 맞추어 내보냈다.
이쿠노 얘기를 계속하자.
일본 며느리, 이쿠노에 가기전에 메일로 연락을 하던 사람, 어머니학교에서 만난 내 학생이며, 인포먼트(Informant)였던 제주도 할머니 며느리와 반나절 시간을 보냈다. 일본 사람이다.
돌아가신 할머니 얘기를 중심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를 딸처럼 여겼다고 한다.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이런 관계는 어떻게 성립이 되는지 모른다. 적어도 자신이 속마음을, 살아온 인생을 나에게 전하고 그 과정에서 나는 그 할머니를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보던 할머니와 결혼해서 20년 이상을 같이 살아온 며느리가 본 할머니는 어떻게 다를까? 그리고 며느리는 할머니를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그동안 가끔 오사카를 갔을 때 할머니와 연락해서 만났지만, 며느리와 그다지 얘기를 나눈적이 없다. 나는 어디까지나 어머니학교라는 볼런티어활동을 통해서 할머니를 알고 인터뷰를 했지, 가족이나 친족은 아닌 것이다. 설사 가족이나 친족이라 해도 섣불리 다가갈 수도 없는 일이다. 일본사람들 관계에서는 적당한 거리 유지가 서로를 편하게 한다.
그녀와 가까워지기 시작한 건 3-4년전 인 것 같다.
그녀 쪽에서 가깝게 다가온 것이다. 할머니네 집에 갔을 때 그녀가 장구를 배우러 다닌다고, 보자기를 만드는 걸 배웠고, 매듭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나도 뜨개질을 하는데, 홈페이지가 있는 걸 보겠냐고, 그러면서 뭔가 손으로 만드는 걸 화제로 급격히 가까워지는 걸 느꼈다. 갑자기 일본 며느리가 나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녀는 결혼 전에 기모노를 만드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단다. 바느질같은 손으로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 며느리가 한국매듭을 하는데 일본에서는 책을 구하기가 어렵다면서 한국 가면 책을 구해다 달라는 부탁을 했다. 고베친구랑 서울에 갔을때 교보문고에 가서 쓸 만한 책을 사서 전했다. 고베친구도 큰 회사를 경영하며, 대가족을 돌보는 사람이라 엄청 바쁘지만, 너무나 인정이 넘치고 자상한 제주도 2세 여성이다 (사실, 이 친구도 내 인포먼트 며느리이다!). 친구가 책을 그 집까지 가져다줬다. 책값을 어떻게 하냐고 묻길래, 할머니께 선물하는데 써달라고 했더니, 겨울이니까 할머니한테 뭔가 따뜻한 걸 선물하겠다고 했다.
그게 할머니와 나의 이세상에서 마지막 교신이었다.
이제 그녀와 나는 돌아가신 할머니라는 공통화제가 생긴 것이다.
그녀는 할머니와 살면서 일본사람이 점점 제주도사람이 되어갔다.
할머니가 하는 걸 보면서 많은 걸 배우고 받아들인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일본사람이면서 제주도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일년 동안 초하루 보름을 지냈다. 이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단다. 지금도 이쿠노에 있는 제주도절에 할머니를 모시고 있다. 그 절 일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자신은 어쩌면 전생에 한국과 깊은 인연이 있지 않나 싶단다.
할머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가신 후 주위사람들에게 들으면서 할머니를 재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기에게는 세상 사람 아무도 믿지 말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없는 가운데도 항상 주위에 인정을 베풀고 도우며 살아왔다고, 부처님처럼 산 것 같단다.
할머니가 살아있을 때 하던 말이다.
일본 사람은 부모형제가 와도 밥 먹으라 소리를 안 하지만, 제주도(조선) 사람은 지나가던 남이라도 밥 먹을 때 오면 먹 여 보낸다. 자기한테 없으면 옆집에서 빌려다가도 먹인다, 그 게 제주도 인심이야. 옛날 제주도에서는 길 다닐 때 밥 걱정을 하지 않았어. 제주도 인정에 관해 자부심이 대단했고 자신이 그렇게 살아오셨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가 있었다.
이 며느리는 긴 시간을 같이 지내면서 할머니를 통해서 이문화인 제주도 문화를 바람직하게 받아들이며 적응한 케이스이다.
사실 이쿠노는 일본의 대표적인 외국인, 재일동포(실은 제주도 사람) 커뮤니티이지만, 1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결코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대립된 관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본 며느리가 제주도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일본에서 생활하다 보면 자신들의 문화를 받아들여주길 원하면서도 자신들은 남(다른 문화)을 배척하는 걸 당연히 여기는 걸 봐 왔다. 나는 그녀가 제주도 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녀가 사는 삶에서 제주도 문화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고 수용하는 게 바람직한 것뿐이고, 그녀는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인 것 뿐이다. 전통문화라는 것이 생활을 통해서 계승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자신이 성장해 온 배경(문화)을 버린 것도 아니다, 그 장소에 맞는 조화를 선택하고 적응한 것이다.
같은 집안 며느리라도 제주도 남자와 결혼했으면서도 제주도 사람들과 접하기만 해도 알레르기 반응처럼 두드러기가 나는 사람도 있다. 두드러기가 나는 것은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두드러기가 난다고 한다. 이경우는 무엇보다도 본인이 가장 힘들 것이다. 그리고 보는 사람들도 힘들다.
그렇치만 그것 또한 그 사람의 선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