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붕

2017/02/12 멘붕

 

오늘 동경은 바람이 불어서 약간 쌀쌀하지만 맑은 날씨다. 방학이라,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도 주말은 주말이다. 주말에 중요한 행사인 청소와 빨래는 방학이든 학기 중이든 상관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욕조에 남은 미지근한 물을 세탁기에 넣어서 빨래를 돌린다. 집안에 있는 매트를 밖에 널고 먼지를 턴다. 아침을 먹고, 청소를 한다. 손빨래도 해서 탈수를 하고 넌다. 밖에 널었던 매트도 집어넣고 세탁과 청소를 마치면 오전이 지난다.

 

아침에 오랜만에 도토리묵을 쒀서 양념을 만들어서 먹었다. 남은 걸로 점심에도 먹었다. 지난 목요일에 스마트폰을 주문해서 어제까지 배달이 된다고 했는데, 소식이 없다. 진행상황을 봤더니, 신청한 시간부터 아직까지 ‘본인확인 중’이란다. 내일 아침에 나가노에 가야 해서 어떻게 된 것인지 확인했다. 먼저, 챗트로 어떻게 된건지 물었지만, 결론적으로 모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30분 걸렸다. 서비스센터 연락처를 받아서 전화했다. 그 전에 메일을 확인했더니, 연락이 와있었다. 본인확인 서류를 다시 보내라고……로그인 하려니, 패스워드를 예약완료 화면에 나온 걸로 쓰란다. 예약완료 화면은 이미 지난 것이라, 표시가 안된다. 패스워드를 모를 경우가 나와 다시 로그인을 하란다. 요구하는 아이디가 뭔지, 그에 따라 패스워드도 달라져서 모르겠다. 여기서 30분 걸렸다. 시간만이 아니라, 짜증이 난다. 서비스센터에 전화해서 돌고 돌아 통화를 할 때는 이미 화가 났다. 그러나, 전화를 받는 사람에게 죄는 없다. 다시 본인확인 서류를 보내면, 언제 스마트폰이 오느냐고 물었더니 빠르면 16일이란다. 그 때는 내가 없다. 외국 갈 때 필요해서 주문했는데……그래서, 캔슬을 했다. 빨리 하려면 매장에 가란다. 대신, 오늘 캔슬했기 때문에 오늘은 가면 안된단다. 만약,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더라도 한 시간 이상 지나서 하란다. 멘붕이 왔다.

 

주로 동경에서 30년 이상 살았지만, 휴대폰 사기가 힘들다. 지금 쓰는 휴대폰도 호주에서 돌아와 새로 살 때, 골치가 아팠다. 같이 전화를 사러 간 당시에 소니뱅크에서 일하던 졸업생이 혀를 내둘렀다. 세상에 휴대폰을 사는게 뭐라고 이렇게 힘드냐고……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렇다. 그런 말을 한국 친구에게 말을 했더니, 벌컥 화를 낸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휴대폰을 사는 데 외국인 차별이 있느냐고?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그렇다. 일본의 외국인 차별은 전혀 상식적이 아니다. 내가 겪는 일, 사실 있는 그대로다.

 

내가 쓰는 휴대폰이 아주 불편하다. 그래서 가능하면 휴대폰을 안 쓰는 식으로 산다. 가끔 매장에 가서 전화기를 바꾸려고 문의하면 외계어 같이 이해가 되지 않는 설명을 한다. 포기다. 그렇게 8년을 썼다. 불편하기 짝이 없다. 내가 외국에 가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도 불편함이 없이 휴대폰을 사고 문제없이 사용한다. 신분이 분명한 사람이 전화기를 사서 돈을 내고 쓰는 것이 시스템인 것이다. 내 신분을 증명하는 것은 신분증이요, 지불하는 것은 신용카드다. 이걸로 끝이다. 일본에서 휴대폰을 사는데 ‘트라우마’가 있다.

 

휴대폰이 여러 대 있다. 자주 가는 한국과 호주, 일본 것이 있다. 전에는 중국에서 쓰는 것도 별도로 있었다.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바꾸라고 잔소리를 했다. 내가 생각해도 스마트폰으로 바꿔서 한대로 여기저기서 쓰는 것이 편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험으로 전화기 바꾸러 가는 것이 무서워서 못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내 사정을 말하면 걱정할 것이다. ‘이 언니가 미쳤나?’ 할지도 모른다. 친구는 내가 돈을 아끼느라고 안 사는 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돈을 아끼는 것도 아니고, 스마트폰을 못 살 정도로 생활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스마트폰을 못 살 정도면 해외여행도 못 다닌다. 전혀 다른 이유다.

 

그래서 목요일에 용기를 내서 주문했다. 주문하는 것도 아주 까다롭다. 적어도 30분은 걸린다. 그래도 매장에 가서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것보다 인터넷으로 귀찮은 것이 훨씬 낫다. 주문을 하고 결재해서 서류도 다 보내고, 아, 다행이다 싶었다. 드디어, 새 전화기 스마트폰이 온다고……. ‘트라우마’를 극복한다고……. 그러나, 세상은, 일본은 그렇게 녹녹한 곳이 아니었다. 4일이나 지나서 캔슬했다. 멘붕이다. 전화기를 바꾸는 것이 뭐라고 이렇게 스트레스에 어려운가? 범죄에 쓰려고 ‘대포폰’을 찾는 것도 아니다. 단지, 외국인이라서 그렇다. 다른 문제는 전혀 없다. 아, 짜증난다. 일본 친구에게 이 상황을 말해도 이해가 안될 것이다. 단지, 걱정할 것이다. ‘미쳤나?’ 하고……..’멘붕’이라는 말을 아주 잘 이해했다. 결국, 스마트폰을 사지 못 했다. 멘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