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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학생

일본, 장학금은 빚? 투자?

6월 10일 NHK에 의하면 동경도의 코로나 19 신규 확진자는 18명으로 확진자 누계가 5,426명이 되었다. 사망자 누계는 311명으로 사망률 5.73%이다. 일본 전국의 신규 확진자는 38명으로 요코하마항 크루즈선을 포함한 확진자 누계가 18,018명이 되었다. 사망자 누계는 935명으로 사망률 5.19%이다. 같은 날, 한국의 신규 확진자는 50명으로 7명이 해외유입, 43명이 지역감염이다. 

 

오늘 아침에 한 과목 온라인 강의를 했다. '빈곤'에 관해서 3주에 걸쳐서 끈질기게 질문을 하는 학생이 한 명 있다. 감상과 질문이 섞인 것이었는데, 내용이 이렇다. 내가 그래도 동경에서 사립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것은 대학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좋은 입장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하다고도 했다. 그 날 강의에 대한 과제에서 자기 친구의 경우를 소개하면서 내가 했던 말에 대한 반론을 제시했다. 동경에서 사립대학에 다니고 있지만 장학금을 빌려서 다니고 있어서 꼭 좋은 입장이라고 할 수가 없다. 장학금은 알다시피 '빚'이다. 이런 경우는 '빈곤'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질문이었다. 피드백을 할 때, '빈곤'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도 '좋은 편'이 된다고 했다. 다시, 내가 '좋은 편'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느냐고 한다.

 

예를 들면 장학금을 빌리고 있는 친구는 '상대적 빈곤'에 속하지 않느냐고 한다. 오늘 피드백에서 장학금을 빌려서라도 대학에 들어온 '의욕'과 행동, 대학을 졸업하면 상대적으로 '좋은 편'에 속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고졸과 대졸의 평생 임금차가 아주 크다. 사실,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기보다 대학이라도 졸업하지 않으면 평생 먹고 살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진학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대학 입학은 장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고졸과 대졸 임금이 확실히 차가 나서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장학금에 대해서도 여러 종류가 있고 해석도 다르다. 내 입장에서는 대학에 들어온 학생이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을 쌓길 바란다. 대학에서 앞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실력을 쌓을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장학금은 갚아야 할 '빚'인 것은 틀림이 없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적극적인 해석을 하면 어떨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저 막연히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대학에서 박사과정까지 다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 갚는 것이 아니었지만, 장학금을 받았다. 나중에는 연구원이 되어서 월급과 연구비도 받았다. 그렇다고 내가 했으니 너도 할 수 있어라는 의미는 아니다. 나와 그 학생이 다르고 내가 했던 시대와 지금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지금 학생들이 돈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것도 질문이 들어온다. 여러분은 대학에 이미 큰돈을 지불했다. 돈을 냈으면 자신이 손해보지 않게 대학에서 적어도 본전을 뽑아야 한다. 열심히 하면 자신의 실력이라는 재산을 만들어서 불려 나갈 수도 있다. 같은 강의를 듣는 학생 중에서도 아깝게 강의도 듣지 않고 허송세월을 보내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눈에 불을 켜고 강의를 듣고 공부해서 자신이 가진 잠재력과 연결시켜 발전, 확실히 능력을 개발하면서 매주마다 눈에 보이게 성장하는 학생이 있다. 그런 학생은 확실히 재산증식을 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에 사회에 나가서 앞으로 인생 살아가는데 걱정이 없다고 본다. 우선, 눈 앞에 놓인 것에 최선을 다하는 걸로 자신의 파이를 키워나가야 한다. 

 

장학금은 '빚'이 아니냐고 한다. '빚'인 것은 맞지만, '빚'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에서 일본 정부가 한 사람당 10만 엔씩 급부금을 준다. 이 것도 국가의 '빚'이다. 일본은 부채가 가장 많은 나라 이기도하다. 그렇다면 국가의 '빚'을 늘리지 않기 위해 국민에게 급부금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힘든 입장 사람들이 기댈 곳이 없어서 완전히 다시 일어서지 못할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전체적으로 힘들어지면 사람들이 소비를 줄여서 경제적으로는 더욱더 활성화되지 않아서 전체적인 파이가 쪼그라들게 된다. 국민들이 수입을 얻고 소비해야 경제가 돌아간다. 급부금을 받아서 소비를 하면 경제가 활성화하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급부금을 배부하는 것이다. '빚'이지만 돌고 돌아서 더 큰 '빚'을 만들지 않게 전체적인 파이가 쪼그라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경제가 돌아가는 윤활유 역할로 '빚'이라도 필요한 재정지출인 것이다. 그 학생의 경우도 장학금을 갚아야 하는 '빚'으로만 보지 말고 자신이 더 좋은 위치로 가기 위한 '투자'로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장학금을 빌려야 한다는 것은 장학금을 빌려도 되지 않는 학생보다 '빈곤'한 것이 아니냐고 한다. 그래서 '빈곤'하다고 할 수 있다고 물고 늘어진다. 물론, 장학금을 빌리지 않아도 되는 학생보다 더 부담이 크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의욕이 있다는 자체와 행동을 하고 있는 걸로 봐서 '빈곤'하지 않다.

 

'상대적 빈곤'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의욕' 저하나,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많은 기회에 참가하는 걸 포기해서 '빈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심리상태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스스로 뭔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우를 우려한다. 나는 학생에게 '힘내라'라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서 '빈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설사 '상대적 빈곤'이라고 생각해도 그런 학생들도 있는 강의에서 학생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빈곤'하다는 말을 들은 학생이 상처를 받기도 하고, 자신이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데 선생이라는 인간에게 너는 '빈곤'하다는 말을 들으면 부정하기가 어려워진다. 나는 앞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 가야 하기에 학생들이 터프해지길 바라지만, 모든 학생들이 터프한 것은 아니다. 

 

어중간하게 끝났지만,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 질문을 한 학생은 답을 정해놓고 그 답을 내 입으로 말해주길 원하는 걸까? 만약에 그 답이 장학금을 빌려서 대학에 다니는 학생을 '빈곤'하다는 것이라면, 나는 '빈곤'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형편이 어렵다고 해도 '빈곤'한 것은 아니다. 설사, '빈곤'한 입장인 걸 알아도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보통 교실이라면 그 학생을 볼 수가 있다. 온라인에서는 그 학생을 볼 수가 없어서 내가 하는 발언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어린 학생들에게 가능하면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지 아무리 현실이라고 해도 '빈곤'하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상황이 '빈곤'이기 때문에 무서운 말이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많은 가능성을 열어 놓고 씩씩하게 살기를 바란다. 장학금을 빌려서 대학에 진학했다니 얼마나 용기 있는 도전인가? 부디 그 용기가 꺾이지 않고 지속되어 좋은 성과를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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