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 NHK에 의하면 동경도의 코로나 19 신규 확진자는 29명으로 확진자 누계가 5,812명이 되었다. 사망자 누계는 321명으로 사망률 5.52%이다. 일본 전국에서 신규 확진자는 45명으로 요코하마항 크루즈선을 포함한 확진자 누계가 18,694명이 되었다. 사망자 누계는 969명으로 사망률 5.18%이다. 같은 날, 한국의 신규 확진자는 17명으로 내역을 보면 지역감염이 11명, 해외유입이 6명이다. 확진자 누계는 12,438명으로 사망자 누계가 280명으로 사망률 2.25%이다.
동경은 장마철이라서 거의 매일 비가 온다. 오늘도 안개와 같은 비가 계속 오는 날씨였다. 강의가 없는 날에도 집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항상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다. 어제 청소를 하면서 유리창을 닦아서 창밖의 느티나무와 다른 초록색 풍경이 더 눈에 침투하듯 들어온다. 가끔 밖을 바라보면서 눈을 쉬게 하지만, 계속 컴퓨터를 보고 있으면 목이 뻣뻣해진다. 요새 버섯이 나기 시작해서 주위에 버섯을 보러 나간다. 오늘도 새로 나온 버섯을 따다가 어제 만든 국수 국물에 넣고 먹었다. 나머지는 손질해서 냉동했다. 올해 첫 포르치니는 예상외로 가장 가까운 공원 시베리아 삼나무 근처에 있었다. 상태가 좋은 것은 하나밖에 없었지만 아주 기분이 좋았다. 포르치니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걸 알려줬기 때문이다. 장마철에 비가 많이 와서 고온다습하면 버섯들이 많이 나온다. 버섯 시즌의 시작이다. 작년 여름 일본이 한국에 수출규제라는 경제 전쟁을 시작한 이후에 버섯 따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혐한'과 또 다른 텐션이라서 그런 분위기에서 강의를 하고 사는 것이 너무 스트레스로 도망갈 곳이 필요했다. 우연히 버섯을 잘 아는 사람과 알게 돼서 배우면서 따기 시작했다.
지난주 아시아 사회론에서 한국 편에서 새로운 문화로 한국의 응원문화를 다뤘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21세기의 시작은 월드컵 축구 응원과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시민의 힘으로 막을 찢고 나왔다. 21세기 한국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적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월드컵 축구 응원을 통해서 한국이 지녔던 시민의 힘이라는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 발전해서 선진국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지만, 한국은 매우 성공적으로 발전한 케이스였다. 하지만, 항상 어딘가 모르는 열등감에 젖어 있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 시절부터 주입된 일본과 한국을 비교해서 조선, 한국이 열등하다는 정해진 답에 세뇌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과 다른 한국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토착 왜구 엘리트나 언론이 항상 한국을 비하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국은 한반도의 반쪽으로 반도라는 이름과는 달리 섬이 되어 70년이 되고 있다. 나도 한참 나이를 먹을 때까지 코리아는 하나인 줄 알고 있었다. 아는 호주 친구가 코리아를 복수형으로 불렀을 때, 깜짝 놀랐다. 하나밖에 없는데, 왜 복수형이지? 생각해보니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외국에 나가면 북쪽이냐, 남쪽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또 당황했다. 북쪽일 수가 없기 때문에 단지 그것만으로도 당황했다. 지금은 복수형 코리아에 익숙하고 어느 쪽이냐고 해도 여유 있게 받아넘긴다. 남쪽인데, 북쪽에는 가보질 못했다고. 남쪽 사람들은 자유롭게 많은 나라를 다니는데, 북쪽 사람들은 자유롭게 많은 나라를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이 남쪽보다 적을 것이라고 한다. 한반도의 다른 한쪽이 가깝고도 너무 멀어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꿈도 꿀 수가 없었다. 다른 한쪽이 없는 것처럼 반쪽짜리로 살고 있었다. 21세기에 들어서 중국에 가서 북한을 바라보고 한국이 섬이라는 걸, 원래는 연결이 돼야 하는 다른 한쪽과 연결이 되지 않은 비정상적인 상태에 묶여 있다는 걸 알았다.
반도는 반도로 살아왔기에 반도에 살았던 사람들 유전자에는 단절이 아닌 연결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감각이 있을 것으로 본다. 반도가 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말 그대로 반도가 되어야 한다. 반도가 가진 운명이기 때문이다. 섬으로 고립해서 70년 동안 다시 반도가 된다는 열망을 모으지 않았을까, 반도로 태어났으면 반도로 살아야지, 섬이 되면 안 된다.
이번 한국의 코로나 19에 대한 대응은 21세기의 한국다운 대응이라고 본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전적인 방식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인들의 DNA에 잠재했던 방식이기에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듯 안심해서 적응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열린 소통방식과 투명한 정보 공개와 시민의식이라는 자주적인 힘의 조화로 어려움을 헤쳐나갔다. 그런 걸 받쳐주고 리드할 수 있는 정부와 전문인력, 리더가 있었다. 반도로 살아왔던 성격이 반영된 형식이 아닐까. 열고 개방하는 걸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걸로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다시 발전하며 살아남는 길이다. 다행히도 시대가 한국이 추구하는 가치와 맞는다.
일본은 21세기를 향해서 스스로를 닫으면서 섬의 폐쇄적인 성격이 강화되었다. 원래 섬은 폐쇄적인 공간이라는 것과 상반된 사방팔방으로 열린 공간이기도 하다. 일본은 바다를 통해서 많을 곳으로 진출/침략 할 수도 있고 해양문화가 아주 강한 곳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사방팔방으로 열린 쪽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폐쇄적인 쪽을 택했다. 폐쇄한다는 것은 일본의 전통적인 위기대응 방식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외국인 입국 금지로 폐쇄해서 원천봉쇄를 택한 것은 아주 일본다운 방식이다. 예를 들어 중국이 자체적으로 우한을 봉쇄하고 해외여행을 금지, 코로나 19를 통제하고 있다거나, 한국이 PCR 검사를 공격적으로 해서 일본보다 훨씬 안전하다거나 하는 논리적인 이유는 일본에서 아무런 힘이 없다. 일본에서는 위험하다, 어쨌든 문을 닫는 것이 안심이 된다. 문을 닫아서 문제가 들어오지 않게 원천 봉쇄했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안심감을 주기에 아주 유효한 방식이 된다. 외부에 노출하지 않고 자신들이 결속되어 안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위기를 대응하는 방식이다. 외부의 시선을 신경 쓰는 일본으로서는 문을 닫으면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으면 된다. 실제로 그런 걸로 위기를 합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경험을 공유한다는 일체감, 응축되는 것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아픔과 기억의 공유라고 할까. 일본은 국내에서 전쟁을 많이 한 나라다. 전쟁이 없었던 에도시대는 외부에 폐쇄적인 쇄국정책을 썼다. 아니, 일본은 기본적으로 쇄국으로 국내에서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일본은 폐쇄했던 에도시대에 평화롭고 문화적으로 힘을 축척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원래 폐쇄적인 성향이 잘 맞아서 자신들의 힘을 기를 수가 있었다. 독자적인 길을 택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고립되는 걸 선호한다.
코로나 19 사태에서 일본에서 가장 힘을 발휘한 것은 일본 사람들이 각자도생으로 '외출 자제'를 했기 때문이다. 일인 가구가 많고 삭막한 인간관계, 고립된 생활에 익숙한 점이 이번 국면에서는 장점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물리적 제한이 없다면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는 생활방식에 최적화되어 있다. 심리적으로 소외되고 고립된 사람들이 많다. 보통은 좋은 일이 아닌데 일본에서는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이번 코로나 19로 재택근무를 하니까, 자살이 줄었다고 한다. 학생들도 앞으로도 온라인 강의와 보통 강의에서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인간을 접하는 게 너무 피곤해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두렵다고 한다. 이런 감정은 일본에서 보편적으로 느끼는 일이다. 코로나 보다 주위 사람들 눈과 스트레스가 더 무섭다. 이런 사회적 압력은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측면도 있지만, 자숙 경찰처럼 폐쇄성이 극대화해서 외부에서 온 사람들에게 공격하는 걸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들에게 외부는 적이기에 외부를 향한 공격은 '정의'가 된다. 외부를 향한 공격은 자신들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이기에 거리낌이 없고 나중에 반성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외부는 좀 더 크게 보면 자신들이라서 자신을 공격하는 '자해'와 같다.
서구 열강의 자극에 의해서 일본을 개방하는 정책으로 명치시대를 열었다. 그를 주도한 세력은 현 아베 총리의 출신지인 야마구치, 초슈와 가고시마, 사쓰마의 젊은이였다. 일본이 꼭 개방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서구 열강의 압도적인 무력의 차를 보고 개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본은 개방해서 아시아에서 먼저 근대화를 하고 밖으로 진출/침략을 하는 명치시대로 들어선다. 일본이 외부로 진출한 것은 대부분 실패였다. 일본의 폐쇄성으로 성공할 수가 없다. 패전에서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을 통해서 일본이 부활을 하고 경제적으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였던 것이 80년대였다. 버블경기가 꺼지고 난 후는 경제발전 외에 다른 목표가 없기 때문에 정치와 사회가 보수적으로, 복고로 회귀하는 흐름으로 변했다. 21세기를 향해서 일본이 폐쇄적으로 간 것은 일본의 경기침체에 대한 위기대응 방식이었다. 일본의 폐쇄성을 한층 더 심화시킨 것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었다. 피해상황에 대처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본인이 뭉쳐서 헤쳐나간다는 식이었다. 문제를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은 과거를 보면 항상 은폐하고 정보를 조작했다. 문제를 드러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워지는 걸 기다리는 방식이다. 이번 코로나 19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을 택하고 있다. 많은 것을 조작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은폐해서 잠잠해지기를 기다린다. 지금까지 그렇게 대처해 왔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번 일을 통해서 봤더니, 아베 정권과 지지세력인 극우가 명치시대로 회귀한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에도시대로 회귀하는 것이 아닐까? 세계는 21세기인데, 명치시대나 에도시대로 회귀하려는 자체가 참 신기한 발상이다. 하지만, 일본이라면 시공간을 초월해서 가능할지도 모른다. 에도시대가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