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의 성과
동경생활 2013/03/15 22:12 huiya
오늘 동경은 맑고 대체적으로 따뜻한 날씨였다.
내가 사는 곳은 아직도 외벽공사 중이라, 앞뒤가 비닐로 둘러싸여 바깥에서 안보이게 가려져있어 볕이 안들어온다. 창문도 못열고 베란다에 나갈 수도 없고 빨래를 해서 널 수도 없다. 답답한 것은 익숙해 졌지만, 햇볕이 안들어오는 건 정말로 싫다. 오늘도 집안은 어둡지만, 바깥은 밝았다.필드에서 열흘을 지내고 돌아온 건 이틀 전이였다. 이번 필드에서 안내를 한 분과 둘이서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는 이랬다.
열흘동안 그렇게 열심히 매일 같이 돌아다녔는데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었어.
조사(필드웍)라는 게 원래 그래요, 그래도 이번은 안내를 해주셔서 저는 거저 먹었죠. 이번에 알고 느낀걸 가져가서 보강을 좀 하고, 앞으로 뭘 할지 대강 아우트라인이 나왔으니까 다행이라고 봐야죠.
필드웍에 관한 성과는 대강 이정도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했던 필드를 안하는 사람이라, 필드를 전혀 읽을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이 했던 필드를 하면, 지금까지 올라온 성과를 토대로 계획을 세울 수가 있고 대충 밑그림을 그릴 수가 있다. 나는 그런게 없이 나가서, 현장에서 가닥을 잡아가고, 조사해온 자료에서 어떤 논문을 쓸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보통은 논문을 뭘 쓸지 정해서 나간다. 그래서 논문에 필요한 것만 조사를 해서 온다. 그러면, 논문을 쓰는게 아주 효율적이다. 나도 그 정도는 안다.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들이 했던 필드도 안하고, 새롭게 개척하는 사람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해야하고 조사해 온 것 중에 논문을 안쓴 것도 많다. 전혀 효율적으로 일을 하는 게 아니다. 간단히 말을 하자면, 가이드북을 읽거나, 지도를 가지고 여행을 하는 것과 가이드북이나 지도도 없이 여행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내 스타일은 여행이 끝난 다음에 가이드북을 쓰고 지도를 그려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처럼 안내인이 있는 경우도 처음이였다. 안내인이 있으면 몇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지만, 몇 단계를 거치는 사이에 얻을 걸 잃는 다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떠나는 날까지도 추운 겨울날이였다. 이튿날부터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더니, 봄날을 건너뛰어 여름날이 되기도 했다. 내가 봄을 가져왔다고 좋아해준다. 어떻게 내가 봄을 가져간다는 말인가, 어쩌다가 우연히도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내가 돌아오는 날까지 따뜻해서 갈 때 껴입고 간 옷을 벗어서 가방에 넣으니 가방이 넘쳤다. 뒷날이 되니 다시 겨울날씨로 돌아왔다.
내가 정말로 봄을 가져갔던 건가?
이번 필드에서 확실히 얻은 성과가 있다는 걸 오늘 낮에 옷을 사러가서 시착을 하다 알았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내 육체가 인간계를 완전히 이탈했다는 것이다. 열흘동안 밥을 먹고, 간식을 먹고 걷지도 않고 차만 타고 다녔다. 아침에 강아지를 데리고 30분 정도 산책을 하는 것도 처음 이틀 정도였다. 그리고, 말을 아주 많이 듣고 나도 많이 했다. 거기에다 모든 걸 보고 듣는 데 신경을 집중했다. 첫날 가자마자 부터 완전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뛰어다녔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이런저런 말을 하고 저녁을 초대해서 같이 먹고 손님을 보내고 집주인과 말을 하다가 결국 두시에 겨우 끝낼 수 있었다. 이튿날 오줌색이 좀 빨갛다. 이증상은 며칠동안 계속되었다. 이튿날도 많은 사람을 만났다, 조사와 전혀 상관이 없은 사람도 있었다. 어제 왔던 사람들이 저녁을 초대해서 거기가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진수성찬이 나온 저녁을 배가 터지지 않을 정도로 먹었다. 밤늦게까지 집주인과 말을 했다. 거의 상담을 하는 수준으로... 그 다음날은 전날 저녁에 만난 사람들이 아침에 차를 마시러 왔다. 차를 마시고 같이 나가서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끝날 무렵 두 날은 하루종일 끼니도 제대로 못먹고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나는 괜찮지만 안내하는 분이 약을 먹어야 했는 데 밥을 못먹어서 약도 제대로 못 먹었다는 것이다.
마지막날은 제주도사람들이 묻힌 산소에 갔었다. 두 군데가 좀 떨어져 있었다. 산소에 가지고 갈 꽃과 향을 가지고 나갔다. 그런데 여기저기 들렀다. 두 번째로 간 절에는 산소가 많아서 주지스님께 경위를 좀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주지스님은 잘 모르신다. 주지스님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인간관계로 제주도사람들을 받아들인 게 아닐까, 추측한단다. 나만 물어보는 것도 미안하니까, 예의상, 어디까지나 예의상, 궁금한 게 있으면 제가 필요한 것(문헌등)을 소개하겠다고 했더니,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이 본격적으로 계속된다. 내가 인터뷰하러 갔다가 인터뷰 받는 경우가 되어버렸다. 노트까지 적어가신다. 차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데, 놔주질 않는다. 겨우 빠져나왔다. 밤에는 이번에 만난 '보물상자'같은 할머니와 같이 잤다. 할머니와 이런저런 말을 하다보니 금방 한시가 넘는다. 그런데 할머니가 자는 데 숨소리가 안난다. 깜짝 놀라서 숨을 쉬는지 확인을 하다보니 잠도 못잤다. 돌아오는 길은 몸이 천근만근이다, 몸이 천근만근이라는 상태를 확실히 알았다. 집에 도착해서 먹지도 않고 일찌감치 목욕을 해서 잤다. 24시간을 자고나니 조금 정신이 났다. 외국을 몇 달 돌아다녀도 이렇게 피곤하진 않다...
내 육체가 인간계에 돌아오게 하루빨리 개조해야 한다. 가능할까?
그동안 한국에 관한 뉴스를 못읽었다. 내가 읽는 것은 인터넷으로 오마이뉴스와 한겨레신문이다. 오블, 극히 가까운 분 들 것만 읽을 수 있었다. 댓글은 못썼지만…
두 번째 성과는, 어제와 오늘 한국 정치에 관한 뉴스를 읽었는 데, 내가 전혀 이해를 못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이글을 쓰고 있으니, 적어도 글을 읽을 수는 있다. 오랫만에 바닷바람을 쐬서, 이거 뇌가 심각히 손상이 된게 아닐까 의심스럽다. 아니면, 열흘동안에 지적능력이 갑자기 저하되었는지, 혹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구계를 떠나서 다른 횡성으로 이사를 갔는지? 자못 궁금하다.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라, 인공적인 걸 싫어하지만, 인공적인 것이 자연과 '조화'하려는 ‘노력’을 재미있어 한다. 가능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런데, 그 게 전혀 현실적이지 않고, 이해를 못하면 관심을 끊는다. 이런 나무들도 현실을 받아들여 전봇대와 표지판과도 사이좋게 어울려 '조화'롭게 살려고 '노력'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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