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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태풍 하기비스가 오는 날

동경은 오늘 밤에 막강한 초대형 태풍 하기비스가 상륙한다고 한다. 긴장한 상태로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있다. 어제부터 재난 경보가 계속 오고 있다. 어제부터 고령자는 피난하라는 권고가 나왔다. 오늘도 오전에도 왔지만 오후에 들어서 주변 상황을 알리는 재난 경보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동경에 오래 살아도 이번처럼 재난 경보 문자가 오는 것도 처음 경험하고 있다. 

 

이번 주 동경에서는 주초부터 주말에는 태풍이 온다는 것이 화제였다. 지금 동경에는 럭비 월드컵이라는 축제가 열리고 있고 이틀 전에 일본인이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어둡고 침울하기 짝이 없다. 학생들에게 물었다. 소비세가 올라도 2%, 한국도 10%야, 다른 나라는 더 높은 곳도 있어. 뭐, 소비세 정도는 큰 게 아니야. 럭비 월드컵이라는 세계적인 축제가 열리고 노벨상도 받았다는데, 왜 이렇게 힘이 없니?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 일본이 어렵다고 해도 고령화니까, 너희들 취직은 걱정할 필요도 없는데, 대학생이면 큰 책임을 질 일도 없을 텐데, 왜 그래? 학생들이 하는 말이 "우리에게 좋은 소식은 없다. 앞으로 좋은 일이라는 게 없을 것 같다"라고 한다. 나는 속으로 놀랐다. 한국인 아줌마인 내게 지금 동경은 무시무시한 곳이다. 한국과 갈등으로 인해 '혐한'이 판을 치고 있다. 나이도 먹은 아줌마에게는 딱히 반가운 소식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나는 내가 처한 경우로 인해 일본에서 좋은 일은 없고 나쁜 일이나 없으면 좋은 걸로 알았더니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젊은 대학생들에게도 같은 느낌이라니,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기비스가 동경에 상륙하는 것은 토요일인 오늘 밤이라고 하는데, 동경에서는 며칠 전부터 토요일에는 전철이 다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안내가 있었다. 내일도 태풍 피해를 점검하고 난 후에 운행을 하니까, 운행을 시작하는 시간을 잘 모른다. 하기비스가 와도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주말에, 연휴라는 것이다. 평일 일하는 날이면 회사에 따라, 학교에 따라 쉬고 안 쉬고 해서 전철도 운행을 해야 하면 피해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우선, 전철부터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한 것으로 본다. 전철이 움직이지 않으면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제부터 대각선으로 비가 오기도 해서 학생 들도 수업에 집중을 못 했다. 4 교시 중에는 학생들 휴대폰에 재난 경보가 들어와서 교실이 시끄러웠다. 수업을 하다가 재난 경보를 듣고 뭔가 해야 되는 게 아닐까? 했더니, 사는 지역에 따라 재난 경보가 다르다고 수업을 계속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했더니 재난 경보가 계속 들어온다. 집중을 할 수가 없어 수업을 조금 일찍 마쳤다. 그랬더니 학생 한 명이 사색이 되어서 "저 집에 사이타마인데요. 부모님이 문자를 보냈는데 비가 많이 와서 집 앞 길이 수몰되었다고 합니다. 수업을 일찍 끝내줘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집에 갑니다." 허둥지둥 나갔다. 아니, 태풍이 오는 것은 분명히 내일 밤이라고 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너무 이른 것이 아니야? 사무실 직원들도 가까운 곳에서도 벌써 피난 권고가 나왔다고 한다. 5 교시에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의견을 들었다. 

 

사이타마 학생이 그런 말을 했다고 전했더니 학생들이 웅성 거린다. 여학생 한 명이 "저도 집이 사이타마인데요, 지난번 큰 태풍 때 집에 물이 잠겼다고 안절부절못하면서 "집에 연락을 해봐도 될까요? " 응, 해 봐. 다른 한 명은 자취하는 곳이 너무 오래된 집이라, 불안하다고 수업이 끝나면 도치기에 부모님이 계시는 곳으로 돌아간다고 수업을 일찍 끝내길 바란다. 다른 학생들과 의논해서 수업을 일찍 마치기로 했다. 어차피 수업을 해도 학생들이 불안해서 집중을 못 한다. 수업은 언제든지 할 수가 있다. 30 분도 안 하고 마쳤다. 학생들과 동료끼리도 인사말이 "태풍에 무사히 살아남아서 다음 주에 건강한 얼굴로 만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현실감이 없다. 동료들이 하기비스에 관한 정보를 확인하면 할수록 '무섭다'라고 한다.

 

어제저녁에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식료품을 많이 사려고 했다. 마트에 가서 봤더니 야채도 별로 없고 빵 종류는 하나도 없이 진열대가 텅텅 비었다. 같은 시간대에는 도시락이 반 값이 되어 있는데, 가격이 내려가지 않았다. 달걀도 비싼 가격인데도 많이 팔려서 남은 것이 적었다. 사람들이 주위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살 것이 별로 없어서 과자 두 봉지에 반찬을 조금 샀다. 집에 와서 검색을 했더니 내가 갔던 마트는 오늘도 오전에 만 문을 연다고 나왔다. 오늘 오전에 가려면 갈 수 있지만, 그냥 집에 있기로 했다.

 

오늘 일어나서 한 것은 영양밥을 많이 하고 국을 많이 끓였다. 영양밥은 반찬이 없어도 3 일 정도 먹을 만큼 했다. 혹시 전기가 끊기거나, 가스가 나오지 않아도 먹을 수가 있으며 물도 많이 준비했다. 국은 오늘 많이 먹어서 줄었다. 만약에 무슨 일이 생겨도 집에 있는 걸로 며칠 정도는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지난번 치바에 큰 피해를 끼친 태풍 피해가 복구되지 않는 치바가 다시 큰 태풍이 와서 힘들겠다고 걱정한다. 아직 정전이 복구되지도 않고 지붕에는 시트를 덮어놓은 상태인데, 이번 태풍으로 죄 없는 치바에 피해를 끼치면 어쩌나? 그동안 유지했던 농업이나 축산업을 태풍 피해로 인해 폐업한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봤다. 이렇게 자연재해로 인해 지역산업이 무너져 가고 있다. 정말로 화가 나는 것은 일본 정부 차원에서 이재민에 대한 구조와 피해 복구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다. 아까, 유튜브로 태풍 피해 상황을 생중계로 보는데 일본인들이 일본 정부는 국민이나 지역을 피해에서 구하는데 관심이 없다는 글이 올라온다. 이런 일본 정부의 태도는 국민에게 무력감과 허탈감을 안겨준다. 

 

지금 바깥에서는 바람이 쌩쌩 부는 소리가 들린다. 저녁 5시가 넘으면서 비바람이 강해지고 있는데 태풍이 상륙하기도 전에 비가 많이 와서 강물이 불어서 범람할지도 모른다는 문자가 계속 오고 있다. 나는 지대가 높은 곳 아파트 3층에 살고 있어서 강물이 불어도 걱정이 없지만, 주변 가까운 곳에도 강이 두 군데나 있어서 만약에 넘치게 된다면 피해를 입는다. 하기비스가 큰 피해는 주지 말고 지나가길 바란다. 

 

지금 지진으로 흔들린다. 막강한 태풍이 근접한데 지진까지 더블로 오면 곤란하다. 나는 유튜브로 시사타파 TV로 검찰 개혁 촛불집회 생중계를 봐야 한다. 유튜브를 보면서 서초동으로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사진은 가까운 곳에서 추수하는 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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