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일 제주도 사람들

재일 제주도 사람 2세의 생활사 (1)

2010/11/07 어느 재일 제주도 사람 2세의 생활사 (1)

 

1. 출생과 성장

나는 1943(소화18)년  동경 아라가와쿠 미카와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미카와시마는  아시다시피 제주도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입니다부모님도 제주도에서 동경에 와서 미카와시마에 살고 있을때 제가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제주도 도순리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11  혼자서 그야말로 신도 못신고 맨발로 아리랑호(근대환?)를 타고, 당시 오사카에 있던 형님을 의지해 일본에 건너왔다고 하더군요오사카에 내려서 형님을 만나니까 형님이 게다를 사서 신겨주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아버지가 일본에  무렵, 제주도 사람이 일본에 있는 가족이나 친척을 의지해서 오는 일은 드문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부모님 세대는 일본에서 살아가기 위해 힘든 일을 하면서아주 고생을 하지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아버지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었는데제가 성장 할 무렵에는 폐품수집고철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가 저의 집이 가장 가난하고 힘든 때로, 아버지 일을 돕느라고 학교에도 못 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어린아이였지만, 학교가는 것보다 부모님 일을 도와서 먹고살아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저는 소학교가 조선학교중학교는 일본학교에 다녔습니다새삼스럽게 자신이 학력부족을 변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교육의 기초과정이 되는 소학교중학교를 다니다말다를 반복했으니 공부하는 걸 좋아할  없었지요중학교에 들어가서축구팀을 만들고 싶었던 선생님과 만났습니다 선생님은 조선인은 무조건 축구를 잘 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조선인이라고  축구를  할리가 없잖습니까졸업이 가까울 무렵축구부가    시합을 했는데 10 몇 대 1보기에 딱할 정도로 무참하게 졌습니다 선생님이 "너는 운동을 좋아하니까, 운동을 할  있는 고쿠시칸으로 가라" 했습니다고쿠시칸에 시험 봐서 합격했지만조선인이라서 입학을 못한다고 해서 다른 고등학교에 갔습니다그러나 고등학교를 계속 다니지 않아 퇴학을 하고 맙니다.

사실, 그때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그때까지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인으로서 여러 가지 차별을 받아왔습니다그러나 교육의 장인 학교가 입학 차별을 한다는 것은  이상 조선인이 일본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그게 쇼크로 좌절해서  때는 불량소년이었던 적도 있습니다동시에 교육도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자기 자신 스스로가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데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일본인 친구가 온쥬쿠에 있는 해변가에 집을 빌려서 여름을 지내고 있었는데, 저한테 놀러 오라고 했습니다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먹는 것도 힘들 때라 그런데 놀러 갈 여유가 어디 있냐고 호통을 맞았습니다그렇다고 얌전히 있을 저도 아니라바다에 가고 싶어서밤중에 쌀을 퍼내어 싸가지고 전차는 무임승차를 해서 온쥬쿠에 갔습니다. 바닷속에 들어가 보니까 정말 멋있는 세계가 있더군요그야말로 소라와 전복이 많이 있는 보물산이었습니다. 저는 바다에서 소라와 전복을 많이 잡아서 부모님께 혼날 각오로 집에 돌아왔습니다막상 집에 오니 부모님은 제주도 사람이라 그런지 소라와 전복을 가져와서 인지야단을 치지 않았습니다. 2박 3일이었지만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물론바다를 좋아하게 된 건 말할 것도 없지요그건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 주었습니다.

학교에 관련된 얘기를 하자면저는 6남매 중 장남으로  밑에 여동생과는 20살 정도 나이차가 있습니다장남인 저에게는 ""학교 갈 시간이 있으면 일해라" 했는데 밑에 여동생에게는 음대에 들어가기 위해  아까운 줄 모르고 뒷바라지를 하더군요결국장남과 막내의 20년간에 우리 집 경제사정도 그만큼 좋아져 있었다는 거지요막내 여동생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해 가수를 하고 있습니다

경제상태와 인간의 정신상태는 어떤 의미에서 비례한다고 봅니다제가 태어나 성장할 무렵이 부모님께서도 제일 가난하고 힘든 때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부모님도 마음에 여유가 있을 턱도 없어서 저한테는 엄격했습니다. 물론 저도 말을 안 듣는 고집불통이었다는 점도 있지만아버지한테서 칭찬을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장남이어서 더욱 그랬는지엄격했습니다저도 지지 않고 부모님께 반발을 했고 한눈에 조선인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어머니와 같이 걷는 것도 싫어했습니다가능하다면 조선인이라는 걸 감추고 싶었지요지금 생각하면 돌아가신 부모님께 몹쓸 짓을 했습니다뒤돌아보니,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는 조선인으로서 여러 가지 차별을 받다 보니 인내력이 키워진 것 같네요.

저한테는 집안 사정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학력이 낮은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습니다넓은 세상에 나가면 나갈수록그것은  커져갑니다요즘은 컴플랙스가 있어서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동기가 되었고다른 사람 말을 듣는 겸허함을 가질 수 있었고약자의 마음을 이해하고지식이 없으니까 지혜를 쓰려고 노력해 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현재 제가 그래도 조금이나마 인간성을 키우게 된 건 학력 컴플랙스 덕분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부족하지 않은환경에서 자라고다른 사람들처럼 고학력을 가지고 있었다면그야말로 눈꼴셔 볼 수 없는 시건방진 놈이 되었는지도 모르지요인생에서 뭐가 도움이 될지 정말 모릅니다.

 

정말 인생이라는 게 뒤돌아보니  순간이었다고 느끼는 요즘이지만, 조금 있으면 저도 환갑입니다(2002 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