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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

'빈곤'이 보이는 동경

요즘 동경에서 느끼는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중고가 마트에서 쇼핑을 하면서 매주 같은 장소, 같은 시간대를 관찰하면서 사람이 없다는 큰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다른 마트에서 정기적으로 같은 시간대에 나타나는 사람들을 봐도 그렇다. 지금 일본 사회는 매스컴에서 보도하지 않는 수면하에서 커다란 변화가 있다. '빈곤'이라는 절망적인 수렁으로 더욱더 깊이 빠진 것 같다.

 

오늘 동경은 맑은 날씨였다. 어제도 맑고 따뜻한 날씨였다. 요즘 주말이 되면 버섯을 따러 다니느라고 바쁘게 지내고 있다. 버섯을 따는데 걸리는 시간과 집에서 버섯을 깨끗하게 손질하는 시간이 대충 비슷하게 걸린다. 그래서 버섯을 따는 것은 아주 기쁜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결점이 있다. 버섯은 시기에 맞춰서 따야 하는 것이라, 다른 일을 뒷전으로 밀고 버섯 따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어제도 운이 좋게 예쁘고 맛있는 귀한 버섯을 많이 땄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버섯을 따는 것도 거진 끝무렵인 것 같다.

 

버섯을 따러 다니느라고 겨울채비를 못 했다. 지난 주에 거실과 부엌 사이에 겨울에 하는 짧은 커튼을 달았다. 그것만으로도 바람을 막아줘서 포근하게 느껴진다. 오늘 대청소를 하고 거실에 카펫을 깔았다. 카펫을 까는 것은 큰 일이다. 구석구석 꼼꼼하게 청소를 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산더미 같은 자료와 컴퓨터 등을 올려놓은 책상으로 쓰는 큰 테이블을 들어 올려 카펫을 깔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 대단한 사업을 해냈다. 거실이 한결 따뜻해졌다. 창문도 청소하고 창문틀에 낀 먼지도 씻고 닦아내고 대청소를 했다. 너무 일을 열심히 많이 해서 쓰러질 정도였다. 

 

어제와 오늘도 담요를 빨고 세탁을 많이 했다. 아직 여름옷을 정리하지 못했지만 이불을 바꾸고 카펫을 깔았으니 한결 따뜻해진 환경에서 지내게 된다. 어제 겨울 이불을 꺼내서 잤더니 몸이 가뿐했다. 그동안 추웠던 모양이다. 창문도 맑아졌으니 주위가 예쁘게 물드는 풍경을 잘 볼 수 있다. 내가 사는 주변이 가장 예뻐지는 계절이 왔다. 오후에 가까운 곳으로 버섯도 볼 겸 나갔다가 버섯을 따고 주변을 한 바퀴 산책하고 왔다. 요 몇 년 사이에 베어낸 거목들이 있었던 자리가 비어서 그 나무가 있었던 걸 기억하는 나로서는 가슴에 휑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베어낸 나무 그루터기를 보면 병도 들지 않았는데 왜 베어내는지 알 수가 없다. 특히 주변 경관을 좌우하는 시그니처 같은 거목의 단풍나무가 없어진 자리는 쓸쓸하기 그지없다. 날이 갈수록 주변 환경도 나무를 너무 많이 베어내서 풍경마저도 피폐하고 빈곤해지고 있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가 그나마 오래 입었던 좋은 옷이 벗겨지고 초라한 행색이 드러나고 만다. 나로서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관리를 하고 있다. 

 

근래에 들어서 일본 사회, 동경에서 관찰하는 범위에서 보면 돌이킬 수 없는 '빈곤'의 수렁에 빠진 것 같다. 예를 들어 목요일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바로 역과 연결된 중고가 마트를 보면 오후 5시에 타임 세일을 한다. 그시간은 주부들이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귀가하면서 장을 보는 시간이다. 나는 이전에 타임 세일을 하는 줄도 몰랐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항상, 몇 년이나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마트에 들리다 타임 세일을 하는 것을 요번에 알았다. 타임 세일에서는 수량을 열 개 이하로 한정해서 싼 것은 3분 1 가격에서 조금 싼 것까지 각 코너에서 판다. 나도 햄이나 크로켓 같은 걸 산다. 요새 보면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 수보다 손님 수가 적다고 느낄 때가 꽤 있다. 그 마트는 유동인구가 많은 큰 역과 갈아타는 역과 바로 연결된 곳이라, 사람이 적을 수가 없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임 세일하는 물량이 적은데도 남을 정도로 손님이 적다. 지난주에 봤더니 전갱이 말린 것이 싸게 팔면 98 엔이었던 것이 128 엔이었다. 다른 것도 같은 비율로 가격이 올랐다. 생선만 오른 것인지 몰라도 30%나 가격이 올랐다. 

 

화요일과 금요일은 강의가 많은 날이라, 돌아오는 시간이 늦는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역에서 가까운 마트에 도착하는 시간이 저녁 7시경이 된다. 일 층에서 야채와 과일을 둘러보고 살만한 것이 없으면 이 층으로 가서 빵과 달걀, 과자 등을 본다. 이 층에는 반찬과 도시락을 파는 매장이 크게 차지하고 있다. 나는 만들어서 파는 반찬이나 도시락을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아직 저녁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도시락이나 반찬이 '반액'이 된다. 그시간이 되기 전부터 사람들이 주위에서 '반액'이 되는 걸 기다리고 있다. 거기서 파는 도시락이 비싼 것도 정가 500엔이 안된다. 거기에 소비세가 붙어서 500 엔 넘지만 500엔이라고 보면 된다. '반액'은 250엔 이하가 된다는 의미로 가격이 싸다. 생선 초밥은 주의해서 보지 않아 가격을 모르겠다. 사람들이 많으니까, 나도 거기에 껴서 보게 된다. 가격이 싸니까, 부위기에 휩싸여 나도 사고 싶어 진다. 도시락을 산 적도 있지만, 사지 않는다. 집에서 만들지 않는 기름에 튀긴 반찬이나 생선구이를 살 때가 있다. 생선구이가 생선을 사는 것보다 가격이 싸다. '반액' 짜리 도시락과 반찬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생기가 없다. 일에 지친 독신 남성들과 여성이 있다. 집에서 취사를 하지 않아 취사 도구도 없을 것 같은 젊은 커플도 있고 가족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아예, '반액' 도시락으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왜냐하면, '반액'이 된 도시락을 대량으로 구매하니까. 학생에게 들은 적도 있다. '반액'이 된 도시락을 사다가 냉동해서 먹는다고 했다. 그것도 부지런해야 한다. '반액'이 된 도시락과 반찬을 사는 사람들은 피곤에 찌들거나 생활이 어려운 티가 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피부에서 윤기가 나지 않는다고 할까,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서 닮은 분위기가 풍긴다. '빈곤'이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복잡해진다. 

 

나는 주로 과일과 야채를 많이 사는 편이다. 과일도 항상 몇종류가 있어야 한다. 수입이 아닌 주로 국내산 제철 과일을 산다. 그런데, 과일값이 엄청 비싸다. '반액' 도시락 가격과 과일 하나 가격이 비슷할 정도로 느껴진다. 내가 비싼 과일을 종류별로 사고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새, 강의 내용과 관계없이 학생들에게 '건강한' 식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야채를 먹어야 한다고 했더니, 야채가 비싸다고 한다. '반액' 도시락에는 야채가 거의 들어 있지 않다. 지금 '빈곤'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건강한' 생활을 추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반액' 도시락이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로 보이지 않는다. 서민적인 마트의 '반액' 도시락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아프면 병원에는 갈 수가 있을지? 어쩌다가 동경 교외 샐러리맨들이 많이 산다는 동네의 저녁 시간 마트에서 '빈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을까? 사람들이 '빈곤'의 수렁 속으로 깊이 빠진 모양이다. 

 

사회를 관찰하는 사람이라서 다른 사람들이 무심하게 스치는 단면에서 많은 것을 읽어낸다. 결코, 알고 싶지 않았던 불편한 진실이 보인다.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에도 무심한 정치는 누구를 위한 것이며,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생사에 무관심한 정치가 '민주주의'이기나 한 것일까? 겨울 추위가 다가오는데, '빈곤'한 사람들에게는 추위가 더욱 시리고 아플 텐데, 그들을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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