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24 비현실적인 현실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눈이 펑펑 내렸다. 어제저녁에 서울에서 돌아왔을 때 느꼈던 추위가 동경의 추위가 아니라, 서울의 겨울추위였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한파가 몰려와 눈이 온다고 했다. 동경에는 일 년에 한 번 눈이 올까 말까 하는데, 11월에 눈이 오는 일은 없다. 아직, 단풍이 끝나지 않은 계절이다. 눈이 오다니, 비현실적이다.
아침에 일어나 어젯밤에 불려둔 현미를 넣고 밥을 지었다. 밥이 되는 동안 스트레칭을 하고, 일을 처리했다. 아침을 먹을 시간이 없다. 아침은 밥알을 몇 톨인가, 우물거리고 말았다. 도시락을 만들고 따뜻하게 옷을 입어서 나갔다. 가까운 역까지 가는 데도 눈이 쌓여서 길이 미끄러웠다. 사태가 심상치 않은 걸 안 것은 가까운 역에 갔을 때였다. 모노레일이 15분이나, 늦다. 모노레일을 타고, 다치카와에 갔다. 다치카와에서도 전철이 많이 밀리고 있었다. 늦은 전철을 타고 가다가 다시 갈아탔다. 전철이 가다가 도중에 멈추고 운행을 중지한다는 안내가 나온다.
선로에 나무가 쓰러져 운행을 중지해서 나무를 자른단다. 언제 운행이 재개될지 모른다. 우선, 2교시 강의는 물 건너갔다. 2교시에 지각할지도 모르니까, 도착하는 역에 택시를 대기시켜 달라고 학교에 부탁했지만, 눈이 와서 어렵단다. 내가 역에서 택시를 잡고 가려고 했더니, 그것도 안 되겠다. 가던 전철에서 마지막 종점에서 내렸다. 종점도 제멋대로 바뀌었다. 목적지까지 갈 수가 없다. 종점에서 내려서 그 역 대합실에서 기다렸다. 대합실에서는 오줌 지린내가 나고 홈레스 아저씨도 계시다. 좁은 대합실에 사람들이 빽빽이 서있는데, 바깥은 춥고 안은 역겨운 냄새로 죽겠다. 30분 이상을 기다려도 상황이 좋아질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거기는 전철이 30분에 하나 밖에 지나가지 않는다. 시간이 좀 지나면 한 시간에 한 대다. 이러다가 3교시에도 못 가겠다.
학교에 전화했다. 학생들이 3교시에 맞춰서 나올 것을 생각하면 빨리 결단을 내리는 것이 좋다. 추운 날씨에 고생해서 학교에 왔더니 휴강일 걸 생각하면 그렇다. 3교시도 휴강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 9시에 집을 나가서 눈이 내리는 추운 길가에서 4시간이나 헤매다 학교도 못 가고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일이 현실적이 아니다. 분명히 날씨가 미친 것이지, 내가 미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피해는 오로지 내 몫이다.
집에 와서 겨울용 커튼을 달고 난방을 켰다. 바깥은 아직도 단풍이 남아 있는데, 눈이 내렸다. 현실은 상상을 초월해서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다. 설사, 아직 겨울준비를 못 했다고 해도, 전혀 상관이 없다. 긴 패딩을 꺼내서 입고 나갔다. 그래도 추웠다. 여기가 서울인지, 동경인지 모르겠다. 11월인지, 1월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도 비현실적이다.
현실적으로 11월에 내린 눈은 아무리 비현실적이라고 해도 날씨가 따뜻하면 녹는다. 오늘 밤에 얼면 골치가 아프지만, 그래도 아직 겨울이 아닌 11월이라, 며칠 내로 녹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11월의 함박눈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진 않는다. 약간의 교통비와 시간과 노동이 희생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나 몰라라 하고 제 일을 안 하고 있다. 추운 겨울날 국민들이 길가에 내팽겨쳐 버려졌다. 고달픈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모자라,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후벼파고 있다. 고문이다.
거기를 지나서 국민들을 비바람치는 겨울바다로 내동댕이치는 것 같다. 세월호 아이들로 모자랐다는 말인가? 도대체 국민들을 얼마나 잡아먹겠다는 것인가? 그들에게 국민들을 잡아먹을 권리가 있다는 말인가? 현실이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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