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30 하네다 착륙
오늘 동경은 아침에 비가 오다가 흐린 전형적인 겨울 날씨였다. 다행히 기온은 그다지 낮지 않았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연말이 가까워서 필요한 물건을 사러 나갔었다. 오늘 사러 간 것은 예쁜 색 담요에, 화장실휴지, 쌀, 과일, 고구마 등 부피가 있고 무게도 있는 것들이었다. 나간 김에 쇼핑을 마치려고 무거운 물건을 들고 왔다. 비가 오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비가 와도 우산을 들 손이 부족했으니까.
마트에서 물가를 봤더니 야채 종류가 평소 가격의 두 배에서 다섯 배가 된다. 아무리 불경기라도 연말 대목이 아니랄까 봐,, 물가는 확실히 올라간다. 마트에서는 평소에 파는 물건에 명절용 특수를 노린 비싼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예를 들면 대게 같은 고가 상품에서 평소 때 보다 약간 비싼 명절용 상품들이 있었다.
실은 일주일 한국에 다녀왔다. 지지난주 금요일에 종강을 해서 토요일부터 일주일 친구와 같이 한국에서 지내고 왔다. 한국에서 편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무미건조하고 삭막한 동경으로 돌아왔다. 어제는 여행에서 돌아온 옷과 지지난주에 입었던 옷을 빨았다. 세탁기를 가득히 채운 빨래에 손빨래는 반밖에 못했지만, 세탁기에서는 끊임없이 빨래가 나왔고, 베란다를 가득 채웠다. 볕이 났지만, 겨울 날씨라서 빨래가 마르는 게 더디었다.
저녁에는 전날 하네다에서 부친 짐이 도착해서 집안이 삽시간에 김치 냄새로 가득 찼다. 빨래한 옷도 김치 냄새로 살짝 물들어 갈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김치가 있어서 갑자기 생활이 풍요로워진 것은 느낌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래서 오늘 쌀을 사러 갔다. 쌀은 산 것은 2년 만인가, 얼마 만인지 모를 정도로 쌀을 사지 않았었다. 평소에, 밥과 반찬을 먹는 생활이 아닌지라, 옛날 학생이 보내준 쌀을 두고두고 먹었다. 그런데, 김치가 있으면 밥이 없을 수 없는 법, 쌀 2키로와 잡곡을 샀다. 연말과 연시에 쌀과 김치가 있으면 밖에 나가지 않아도 어떻게 지낼 수 있겠지. 정말로 오랜만에 신김치가 있으니까, 김치전을 만들어도 되고, 김치를 지져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물론, 집안은 점점 김치 냄새가 충만해 가겠지만 말이다.
한국과 일본은 거리도 가깝고, 시차도 없고 계절의 차도 그다지 없는 편이다. 이번에는 겨울이라, 한국이 동경보다 훨씬 추웠지만 말이다. 한국에 다니면서 일본과의 차를 그다지 느끼지 않았었다. 한국은 한국이고, 동경은 동경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에서 지내면서 동경과의 확실한 차를 많이 느꼈다. 내가 보기에도 한국이 많이 피폐해져서 예전 같지 않지만, 현재 동경보다 훨씬 사람들이 살아가는 따뜻한 정이 있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따뜻한 정이 한국의 겨울 추위를 녹여주었다.
같이 갔던 친구는 처음으로 한국에 갔다. 한국이 아주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피곤하면 몸이 붓고 소화불량, 변비에 몸이 부풀어 오른다. 반대로, 친구는 점점 쫄아드는 것처럼 작아져 갔다. 친구에게 한국에서 쫄아들어서 없어질까 봐 겁이 났다니까, 한국에서 없어지고 싶었단다. 내가 납치범이 되니 곤란하지. 당신처럼 영양가 없는 사람을 납치해서 어디에 쓸라고, 쓸데도 없을 텐데… 괜한 사람 인생 망치지 말라고 했다.
친구가 하네다에 착륙하면서 굳어진 얼굴로 아주 우울해한다. “아름다운 나라” 일본에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면서 우울해한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 짐을 내리려고 옆에 있던 남자에게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일본 남자인 모양으로 짐을 꺼내는 걸 도와주기는커녕, 자기 머리에 짐이 떨어질까봐 피한다. 친구에게 말을 했더니, 일본 남자에게 기대를 하면 안 된다나, 자기도 일본 사람이면서… 어쨌든 우울하게 하네다에 착륙했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꿈같은 일주일을 지내고 우울하기 짝이 없는 동경으로 돌아왔다.
'동경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어가 왔다 (0) | 2019.12.27 |
---|---|
크리스마스날에 쇼핑 (0) | 2019.12.27 |
동네 일루미네이션 2 (0) | 2019.12.27 |
동네 일루미네이션 1 (0) | 2019.12.27 |
레미제라블을 봤다 (0) | 2019.12.27 |